고급 택시

VIP를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린다

by청순일기

29군데나 이력서를 보냈는데 단 한 곳에서도 연락이 없다니...

퇴직 후의 준비를 누구보다 열심히 했던 남편은 티내지 않았지만 많이 휘청거렸을 터였다.

은근히 조바심을 내고 있던 즈음, 이력서를 보낸 회사 중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택시 회사였다. 일반 택시가 아니고, 고급 택시를 운행하는 일이었다.

그런 일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고급 택시 운행이란 서울 시내의 5성급 호텔에서 외국인 VIP 손님들을 공항으로, 혹은 공항에서 호텔로 모시고 다니는 일이다. 때로는 하루 종일 한 사람의 VIP를 태우고 그의 일정대로 다니기도 한다.

기사는 검은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번쩍이는 구두를 신어야 했다.

그들이 운전하는 차는 제일 좋은 국산차인 제네시스90이나 BMW, 벤츠의 상위 차종이다.

남편은 검은 정장을 새로 한벌 장만했다.


항공사에서 근무했다는 이력이 도움이 됐으리라. 일단 외국어가 가능했고, 서비스가 몸에 익었으니 말이다.

강남의 5성급 호텔이 베이스 캠프인 그 회사에 가서 기본적인 영어와 일어 테스트를 마친 뒤, 남편은 드디어 취업이 되었다. 남편에게는 검은색 제네시스 90이 배당되었다.


회사에 다닐때 일본인 VIP의전을 많이 해본 남편에게 호텔의 VIP들을 모시는 일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시간이 돈인 사업가들은 차에 타면 뒷좌석에 앉아 일을 한다고 하였다. 노트북을 펼치거나 전화로 BUSINESS를 한단다. 인천 공항에서부터 호텔까지의 긴 거리를 말없이, 최대한 진동 없이 빠르게 운전을 해야했다.

원래 운전을 얌전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차가 멈출때 언제 멈추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히 운전해야 한다고 나에게도 가르쳐주곤 했다. VIP중에는 잘 타고 왔다며 내리면서 팁을 주기도 하고, GOOD JOB!이라며 악수를 하고 가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몸이 고됐다.

새벽에 4~5시에 뜨는 비행기에 타는 손님을 모시는 경우, 집이 있는 일산에서 새벽 2시경 떠나 강남의 호텔에 가서 손님을 태우고 인천 공항으로 가야했다. 거의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밤 늦게 도착하는 비행기에서 내린 손님이 있는 날은, 태우고 호텔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새벽이 되는데 다음날 근무때문에 또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서울에서 국제적인 행사라도 열리면 고급택시는 살인적인 스케쥴을 소화해야 했다.

점점 피곤이 쌓여갔다.

그리고 VIP의전 차량이 호텔로부터 받는 돈은 액수가 꽤 되지만, 막상 기사가 받는 월급은 형편없었다.

박한 월급에 힘든 일이었지만 고급 택시의 기사들은 대부분 연배가 있는 사람들이었고, 하겠다는 사람도 많았단다.

나이든 사람들에게 그만큼 일자리가 귀하다는 말이다.


어느 날, 인천공항 고속도로 위에서 운전 중 깜박 잠이 들었다가 놀라 깬 적이 있었단다. 옆에 차들이 쌩쌩 달리는 길 위에서, 아차 하는 순간에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 이건 아니구나 싶어서 그만두기로 하였다. 석 달 만이었다.




졸리운 눈을 부릅뜨고 핸들을 잡고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남편과 같이 새벽길에 고급택시를 운전하는 사람, 밤을 세워 트럭을 몰고 가는 사람, 사고 차량을 견인하러 달려가는 렉커차 기사들, 취객을 뒤에 태우고 가는 대리 운전 기사들, 세상의 많은 가장들이 눈물겨운 사투를 벌인다.

은퇴자인 남편은 일이 위험하다 생각하여 그만두었지만, 동료중에는 몇시간 밖에 못자면서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 더 많이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이일 저일에서 실패를 거듭하고, 아직 아이들에게 들어갈 돈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항공사에서 일할 때, 나와 동년배의 남자직원이 정년을 몇년 앞둔 나이에 부서이동을 하게 되었다. 그는 공항에서 승객을 대하던 매니져였는데, 사무실에 앉아 전화만 받는 예약과 일을 하게 되었다. 60이 가까운 나이에 새로운 업무 지식을 익혀야했다. 심란해하는 그에게 어줍쟎은 위로의 말을 건네었는데, 그가 말하였다.

'걱정하지 마, 잘 할 수 있어. 나는 아버지쟎아.'

코 끝이 찡해왔다.


험하고 박한 일자리도 감수할 수 밖에 없는 많은 가장들이 있다. 삶의 구비구비를 힘들지 않게 걸어가는 사람이 있을까? 넘어지고, 앞이 안보이는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때는 나만 힘든 줄 알았다. 하지만, 누구나의 인생도 쉽지 않다는 것을 세월을 겪으며 알겠다. 모두 나름의 무게를 지고 있었다. 비틀거리기도, 넘어지기도 하지만 일어서서 다시 걸어가는 길이 삶이었다.


'오늘도 수고했어요.'

수고하는 가장들에게 말해주어야 한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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