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어머니, 저 정말...

by마봉

《세라비: 장하다 라를르의 딸》은 장편 소설입니다.

◆ 캐릭터 소개

◆ 처음 오신 분은 1화부터 읽어 주세요.


게로스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의식이 없는 몸 안에 갇혀 있었으나 가끔씩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밖으로 나와 그의 몸 주변을 떠돌았다.


‘아, 내가 죽었구나.’


그는 침대 천장과 벽난로와 창문을 바라보았다. 죽었다면 저 창문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그러나 시도해 보니 그는 몸에서 멀리 떨어질 수가 없었다. 아직은 죽지 않았나 보네,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곳은 발렌도르 대공저의 방이었다. 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자신인 줄 몰랐다. 그가 알고 있는 자신의 모습과 몰라볼 정도로 달라진 사람이 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세라비가 옆에 앉아서 그 손을 잡고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 결국 아버지처럼 되었네.’


끔찍한 모습으로 병상에 누워있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그는 생각했다. 그의 기억 속의 어머니도 저렇게 침대 곁에 앉아서 아버지의 손을 잡아주고 있었다. ‘어머니도 아버지 많이 사랑하셨구나.’하고 그는 생각했다.


세라비는 그의 손을 잡고 있었지만, 울고 있지는 않았다. 슬퍼 보이지도 않았다. 세라비는 그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온갖 쓸데없는 얘기들을 하는 것 같았다. 목소리가 하도 나직해서 잘 들리지 않아 게로스는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세라비는 그의 메마른 손을 붙잡고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직은 봐줄만하니까 어서 돌아와…”


그는 웃을 수 없는 상태일 텐데도 이 말에 진짜로 웃고 말았다.


게로스는 얼굴 가져가면 안 된다고 신들에게 덤벼들던 세라비의 모습을 떠올렸다. 조금 더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내 얼굴.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 그의 미래는 아버지와 똑같았다. 어머니가 저주를 풀어주어도 마찬가지였다. 게로스는 신들이 보여주었던 환영을 떠올렸다. 초상화 속에서나 보던 어머니가 피를 토하던 장면을 생각하며 그는 슬프게 중얼거렸다. 어머니,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저주를 풀어주셨는데, 또 잃어버리고 말았어요. 저주를 풀어주신 줄 알았더라면 평생 그렇게 제 얼굴을 싫어하진 않았을 텐데요.


하지만 전 정말 무서웠어요. 아버지처럼 될까 봐 무서워서 밤마다 울었지만, 어쩔 수 없어서 그냥 살아왔어요. 엄마가 올랐어야 할 왕좌에 제가 대신 오른 그날 이후, 저를 시험하는 신하들과 귀족들을 구슬리고 손에 피를 묻혀가며, 저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신하들에게 독약을 들려 첩자로 보내면서 어떻게든 버텨왔어요. 저 정말… 외로웠어요.


그러나 지금 병상에 누워 시든 꽃처럼 죽어가는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카리아에서 온 이상한 여자가 마른 나뭇가지 같은 그의 손을 잡고 곁을 지키고 있었다. 동네 뒷산으로 도망친 염소를 쫓아간 얘기 따위나 하면서.

영혼 게로스 OTS.png게로스가 침대 위에 누운 자신의 모습과 그 옆을 지키는 세라비를 바라보고 있다. ⓒ Mabon / AI

◆ Illustrations by Mabon de Forêt(AI-assis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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