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골이 오싹하다는 말 3

by사피엔




여유와 품위 같은 것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나는 오늘도 맥주를 앞에 두고 그 생각에 잠긴다.



5월 5일. 그 밤의 인간들에게도 한때는 순수한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처음 만난 호텔 직원에게 자기 삶의 피로를 밀어 넣는 중년 남자가 되기 전,

상황과 맥락 파악보다 직원에게 바카라임 전가 부터하는 관리자가 되기 전,

그리고 나역시 누군가의 말투 하나에 인간 전체를 혐오하게 되기 전.



삶은 사람을 조금씩 거칠게 만든다.



처음엔 상처였을 뿐인 것들이 나중에는 '태도'라는 굳은 살이 되고,

오래 참아온 모멸은 어느새 사람의 나이테가 된다.



그날 프런트에는 피곤에 찌든 인간들이 그렇게 서 있었다.



화를 제어하지 못하는 고객, 권위로 직원을 누르려는 관리자, 억지로 표정을 붙들고 서 있던 나.



우리는 모두 자기 삶에 닳아 있었다.



만약 내가 밤마다, 소맥 안주로 오징어나 뜯으며 하루하루를 삼키는 사람이 아니라,

프랑스 이탈리아를 떠돌며 예술로 결핍을 승화하는 사람이었다면.



만약 내 삶에 조금 더 많은 여유와 아름다움이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그날의 모욕을 지금처럼 오래 붙들고 있었을까.



사람은 결국,

자기 결핍의 크기만큼 상처받는 건 아닐까.



나는 소주 뚜껑을 덮고 두 번째 캔맥을 트며 그런 생각을 한다.



체크아웃 하루 전날 밤이었다.

316호 고객이 내게 다가왔다. 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역시 미소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첫 날, 제가 너무 무례했죠?"

"저도 죄송했습니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중년 남자의 손이 먼저 빠져나갈 때까지 나는 그 손을 놓지 못했다. 긴장 끝의 이완. 인간 대 인간의 체온이 따뜻했다.



하지만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시말서라는 걸 쓰게 됐다.

고객 응대에 감정을 드러낸 직원에게 새로 온 지배인은 "한달 지켜보겠다"는 엄포를 놓았고

이후, 회사는 자기 말을 기준으로 판단하게 될 거라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저도 지켜보겠습니다. 지배인님이 존경받는 관리자이길 기대하면서요."

내가 웃으며 말하자 지배인의 표정이 또 굳었다.



"등골이 오싹하네요. 수경씨랑은 대화가 안 돼. 어디서 지금! 내가 훈계하는데…. "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잠시 멍해졌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반항이라기보다, 관리자의 권위가 누군가를 함부로 누르기 위한 것이 아니길 바란다는 뜻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통제하기 전에 먼저 보호하고, 함부로 판단하기 전에 상황을 함께 견디는 사람. 그러나 그 짧은 문장은 그의 귀에 정면 도전처럼 들린 모양이었다.



사람은 듣고 싶은 방식으로만 타인을 이해하기도 한다는 걸, 내가 잠시 망각했다. 설명할수록 더 고립되는 기분이었다.



시말서를 쓰는 동안 나는 서울로 간 이전 지배인을 철없는 아이처럼 떠올렸다. 그리고 그때 마침,

이 섬에 오기 전 그만둔 도시의 학원으로부터 장문의 문자를 받았다.



"다시 와 주세요."



그 문장은 내게 마치 정서적 구원처럼 느껴졌다.



감정 충돌의 순간만으로 사람 전체를 규정하는 사람. 상처와 마찰이 있었어도 사람 전체를 기억하고 남겨두는 사람.

그 간극 사이에서 오래된 그리움인듯, 서러움 같은 것들이 천천히 밀려왔다.




오늘 밤 나는 잠깐, 사람을 너무 오래 미워하지는 말자고 생각한다.

삶이 쓰릴지언정.




그냥 인간 하나.

그리고 모든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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