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감이 있지만 8.15 광복절을 기념하여 카프(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 동맹) 문학에 관하여 임화 평전을 중심으로 다루어 보려고 한다. 광복절에는 주로 독립 운동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기 마련인데, 사실 문학과 예술의 분야에서는 친일 행적이니 이데올로기 싸움이니 해서 복잡한 역사적 갈등이 존재했기 때문에 잘 다루어지지 않는 면이 없지 않다.
물론 그들 중에도 윤동주나 이육사 등 대표적인 저항시인들도 존재했음 또한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에 내가 다룰 카프 문학은 한국 전쟁 이후 암흑기였다가 재조명된 것이 실질적으로 얼마 안 된 슬롯주의 문예사조인 만큼 대중적인 관심은 사실 많지 않았다. 그러나 임화에 대해서 설명할 때에도 자세히 말하겠지만 이들 카프는 오늘날 현대 한국 문학의 문제의식을 뿌리부터 상당부분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문학적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임화에 대해서 다루기에 앞서 계급 문학 운동과 카프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카프 시대는 일제강점기 가운데에서도 1920년대를 가리킨다. 이때의 문학은 이데올로기와의 깊은 연관이 있는데, 주요한 논점은 문학을 통한 민족의식의 추구였다. 여기에는 크게 두 관점이 대립하고 있었는데, 첫째는 슬롯주의 게급문학이었고 둘째는 민족주의 민족문학이었다.
그렇다면 계급문학은 문학을 통해 어떠한 방식으로 민족의식을 추구하였는가? 계급문학운동은 슬롯주의 사상에서 말하는 변증법적 진보과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무산 계급이며 무산 계급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확립을 위해 끊임없이 계급투쟁애 앞장서야 한다고 본다. 이에 따라 계급문학 운동자들은 우리 민족의 식민지적 현실을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계급적 지배논리로 파악하였다. 여기서 계급문학은 무산대중의 계급적 각성을 그들의 목표로 삼았다.
이러한 요건 때문에 계급문학론자들은 기존의 문학을 통한 민족의식의 추구문제를 계급의식의 추구로 대치시켰고 민족적 관념에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그러나, 계급문학운동도 민족문학과 마찬가지로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대항하기 위한 문학의 논리이기 때문에 계급 문학 운동을 민족적이지 못하다거나 문학적 독립운동에서 배제시켜서는 안 된다.
카프의 문학론은 언제나 <무엇을> 쓸 것인가하는 문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것은, 문학 창작 행위를 계급적 현실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계급주의 문학론자들에게 내용과 형식의 관계에 관한 선택의 여지를 남기지 않았고 이는 슬롯주의 리얼리즘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1930년대 카프의 강제 해체 이후 일제의 식민지 탄압이 강화되면서 계급문학론은 기존의 슬롯주의 리얼리즘 및 조선 문학론 전반의 한계에 대해서 반성하게 되는 계기를 가지게 된다. 특히 임화는 당대 소설의 경향을 슬롯적 상황과 직결시켜 논의하였는데, 이때 그가 주장한 두 가지 문제의식이 세태소설론과 소설의 내성화이다. 세태소설은 작가의 의식을 죽이고 사실성에만 치중하며 묘사에는 성공하나 그 성격과 환경에는 도달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다. 반대로 소설의 내성화는 내부로 파고드는 작가의 정신에 집중하는 것으로 심리묘사의 심화 경향이 있다.
이는 일제 강점기 당시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것으로 이러한 양극화는 있는 부조화의 상태 그대로를 궁극의 현실로 직시하고 인식할 때에야만 극복가능하다. ‘성격’과 ‘환경’의 조화가 필요하다고 임화는 진단했다. 그러나 그러한 성격과 환경의 조화는 서구 소설의 고전적 형태의 등장을 의미했고 그러한 이상적인 조건이 충족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임화는 이 이상의 특별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면 작자가 인생에 대하여 품고 있는 희망이라는 게 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암담한 절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임화 세태소설론 中
그런데 여기서 임화의 ‘환경’은 서구의 milieu 개념이나 자연 혹은 슬롯적 환경을 의미하지 않는다. 임화의 환경은 문학적 환경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근대적 시대정신의 확립을 전제로 한다. 이런 입장에서 임화는 조선의 문학을 두고 이식문학의 역사라고 정의를 내린다. 이때 이식문학의 역사라는 표현은 한동안 논란을 낳았는데, 그 까닭은 이런 주장을 확대시키면 첫째는 일제의 문학을 모방했다는 말이 되는 민족적인 문제가 있고 둘째는 조선의 전통적인 문학은 의미가 없다는 뜻으로 이해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임화의 이식문학이라는 표현 혹은 신문학사론은 외려 중세의 수도사들이 그리스 고전으로 되돌아가 새로운 문화의 전성기를 이끈 르네상스와도 비슷한 개념이었다. 중세의 학자들에게 있어, 히브리적 전통에서 희랍적 전통이라는 것은 마치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서구 사상을 배워온 것처럼 일종의 외국어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처럼 임화는 유산과 전통을 구분하며 유산은 그 고유의 문화이며 전통은 그 고유의 문화가 근대환경의 영향으로 모습을 바꾼 것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즉 조선문학의 르네상스를 주창한 셈이다. 그걸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임화는 이러한 조선 르네상스, 세태소설론과 소설의 내성화를 이야기하면서 끊임없이 대안을 추구해왔으나 본질적으로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계급 투쟁을 수행하는 일제 시기 청년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임화 평전 『이상한 운명』에 따르면 임화의 시에는 “청년”의 표상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아나키즘의 창시자 크로포트킨의 『청년에게 고함』에서 임화가 영감을 받은 것인 즉, “참된 시인”은 인간의 순결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존재라는 아포리즘이 그의 청년 시절 좌우명이 된 것이다.
그의 청년기 그는 시대에 대한 비판 정신을 청년이란 정체성과 깊이 연관을 지었으며 보성고보에서 중퇴한 것 그 이후 카프에 들어간 것과 같은 행보도 그와 같은 연유에서 유래한 것이다.
나는 임화의 문학 이론이나 슬롯 사상에서 현대 2020년대 한국학 담론의 주요한 면면을 상당 부분 발견한다. 젊은 세대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 그로 인한 소설의 “내성화”와 거대 담론의 감퇴. 한류 및 현대 한국 문화의 이식된 관념들과 같은 문제의식이 시대가 변하고 슬롯가 변해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이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임화는 서구적인 근대소설의 등장만을 기다리며 보다 적극적인 접근을 취하지 않았다고는 하였지만 그의 신문학사론과 청년 담론은 결국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유효한 답변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 문화가 미국이나 서구 문화를 지나치게 모방해왔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그 뿌리가 없다는 콤플렉스도 임화의 르네상스론에 따르면 오히려 근대적 문화 환경에 적응해온 것이며 이전의 “유산”들을 전통으로 전환시켜온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식민지 시대의 청년들에게 전란의 시대, 혼돈의 시대에도 무기력해진 순간에도, 크로포트킨의 말처럼 인간의 순결을 듣는 시인의 마음을 추구해야 한다는 휴머니즘을 권했다는 점, 그리고 시대 정신이란 결국 그 베일을 여는 청년들의 것이며 적극적으로 슬롯적 투쟁에 임해야 한다는 담론을 주장했다는 점은 그의 일생과도 이어지는 부분이다. 오늘날 저출산과 청년 실업으로 인해 반출생 사상이 각광을 받을 만큼 무기력한 슬롯임은 분명하나 일제강점기의 청년들보다 암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임화는, 카프는 그러한 시대와 맞서 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