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축제-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과 시대정신>

bywinterfyellb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은 <네차예프> 사건에서 출벌하였다. 당시 실존인물인 네차예프는 악명 높은 니힐리스트였다. 1860년대 러시아에서 니힐리스트라고 한다면 모든 사상, 모든 의미, 모든 도덕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급진주의자를 의미했다. 네차예프의 사상은 한마디로 테러였다. 그가 아는 과학은 오로지 하나, <파괴의 과학>이며 그의 유일한 목표는 <인정사정 없는 파괴>이다.


1869년 네차예프는 어느 농업학교에 비밀결사를 조직했다. 이 학교 학생 이바노프는 슬롯 변혁을 꿈꾸며 조직에 참여했지만 곧 네차예프의 리더십에 의문을 품고 탈퇴했다. 이에 분노한 네차예프는 이바노프가 조직을 밀고할 것이라는 헛소문을 퍼뜨려 조직원들을 선동하여 이바노프를 살해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네차예프를 가지고 가벼운 정치소설을 쓰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용이 깊어져 결국 정치적인 의미 이상의 인간 본성을 천착하는 『악령』이라는 작품을 쓰게 된다.


작중 등장하는 어느 지방 작은 도시의 니힐리스트 그룹의 교활한 범죄자 표트르는 내차예프를 인간의 권력의지를 극한으로 증폭시킨 모습으로 재탄생시켰다. 표트르는 이 그룹이 저지르는 모든 범죄를 기획, 사주, 실행하는 행동대장이 되고 나중에 그의 전모가 맑혀지자 해외로 도주한다. 여기서 표트르의 전략은 인간 실존의 도덕적 기반을 철저히 붕괴시키는 것이며 그러한 도덕의 폐허 위에 자신이 왕으로 등극하려 한다.


이처럼 표트르라는 인물에만 집중하면 『악령』은 니힐리즘 비판과 전체주의에 대한 경고가 주된 내용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니힐리즘뿐만 아니라 스테판 뜨로피모비치로 대표되는 서구 자유주의나 가톨릭 교회, 탈세속화된 세상의 본질을 비판한다.


먼저 도스토예프스키의 중심된 질문 “인간이란 무엇인가?”는 19세기 주요한 사상들의 분계선이었다. 그는 이 작품에서처럼, 니체가 그려낸 차라투스트라와 인간 몰락의 메시지, 그리고 초인을 향한 무시무시한 열망을 읽어내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한편으로 지헤롭고 똑똑한 자들, 경건하고 의로운 자들을 대표한다는 부르주아들, 교회들이 슬롯의 약자에 대한 관용을 잃어버린 허위의식을 비판한다.


그는 니힐리스트든지 부르주아 및 교회이든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악령을 본다. 인간의 문화와 슬롯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높은 성벽과 첨탑에서 바벨탑의 정체를 예견한다. 그 바벨탐은 신에 맞서 스스로 신이 되려 함이다. 이것이 비유적으로 잘 드러나있는 것이 『악령』서두에 나오는 스테판 뜨로피모비치의 서사시이다.


무대는 여성들의 합창, 남성들의 합창, 무슨 힘들의 합창, 아직 살아본 적은 없지만 매우 살고 싶어하는 이들의 합창으로 시작된다. 대부분은 무엇에 대한 저주였다. 그러나 무대가 갑자기 변하고 심지어 벌레들도 노래를 부르고 무슨 성스러운 라틴어를 웅얼대는 거북이가 등장하고 하다못해 생물조차 아닌 광물마저도 뭔가 노래를 부르는 <생의 축제>가 시작된다. 그러자 갑자기 차마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청년이 검은 말을 타고 달려오고 그 뒤로 끔찍하게 많은 온갖 민족들이 뒤따른다. 청년은 죽음을 구현하고 모든 민족들은 죽음을 갈망한다.


여기서 바로 이 검은 말을 탄 청년이 초인이며 니체이고 그가 구현하는 것이 도덕과 신념의 죽음이며 모든 민족들이 그 길을 따라간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러한 광기가 일어나기 전에 있었던 <생의 축제>는 이와는 정반대로 고귀한 함의를 지니고 있었다. 어째서 이처럼 급격하게 서사시의 내용이 바뀐 걸까?


이때 우리는 여성과 남성, ‘힘’들,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저주를 노래하는 장면이 무대의 첫 장면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즉 이들은 불행한 사람들이다. 서로가 서로를 저주한다. 그러다가 어떠한 고귀한 사상이든 종교이든 그 무엇인가 믿거나 따를만한 것을 찾는다고해도 인간은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니힐리스트나 부르주아가 그러했듯이 이들은 “검은 말을 탄 청년”이 되거나 아니면 그를 쫓기를 원한다.


이러한 상황이 실제로 발생하여 니힐리즘 청년과 스테판이 만났을 때, 스테판은 때늦은 변명을 한다. ‘우리 시대가 다시 도래하여 작금의 모든 것을 다시금 튼튼한 길로 향하게 만들 거요.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소?” 그러나 스테판은 사실 자신들이 니힐리스트들의 초석을 깔아놓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작중 니힐리스트 조직 내부에서 살해당하는 샤또프가 스타브로킨과 대화하며 자신의 사상을 읽어주는 장면을 보면 이 의미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성과 과학은 언제나 민족들의 삶에서 언제나, 지금도, 창세기에도 오로지 부차적이고 보조적인 의무만을 수행해왔다. 민족들은 명령하고 지배하는 어떤 힘에 의하여 대열을 정비해서 움직이지만, 그것의 기원은 알려지지도 설명되지도 않았다. 이 힘은 끝에까지 이르려는 채울 길 없는 소망의 힘이며, 동시에 그 끝을 부정하는 힘이다.(…) 나는 그것을 다른 무엇보다도, 더 간단하게 <신의 추구>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는 모든 이데올로기는 종교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는 유형론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신의 추구, 무엇이든 우리를 이끌어줄 구심점을 원했다. 그러나 인류가 점차로 스스로가 진보한다고 느끼자, 자기 자신이 신이 되려고 했다. 그러나 오직 역사 속에서 현대인이 배운 점은 인간은 결코 신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차라리 신 따위는 존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개념이라고 생각들 하는 모양이다. 채울 길 없는 힘은 이제 고갈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목적론 없는 역사란 무엇인가?


그렇게 모두가 절벽 아래로 떨어질 떄 우리는 비로소 이 바카라의 메타포인 성경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예수가 악령을 쫓아내 돼지 떼에 가두어 물 속에 빠뜨려버린 일화 말이다. 그것이 우리가 그토록 부르짖는 “시대정신”이라고 도스토예프스키는 경고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도 그러한 “축제”는 등장한다. 어느 무도회, 그것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추잡하게 서로 비웃고 싸우고 치정놀이를 하는 그런 축제다. 그리고 그것의 절정에 달했을 떄 폭탄이 터지고 화재가 나자 외치는 말. “전부 다 방화다! 이건 허무주의다! 만약 무엇인가가 불타오른다면 이건 허무주의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추잡하게 서로 비웃고 싸우며 물신주의에 빠져 있다. 앞을 주시하지 못하고 뒤를 복기하지 못한다. 오롯이 순간에 집중하기에도 바쁜 세상이다. 그러나 고통받은 자들의 울음은 예나 지금이나 계속해서 울려퍼지고 있다.


사랑의 빈곤이야말로 채울 길 없는 힘이 아니고 무엇이랴! 러시아의 문학 비평가 바흐친은 축제와 축제화라는 개념을 통해서 진정한 <생의 축제>라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찰했다. 축제는 고전주의 미학과 대조를 이루는 기괴성과 연결되어 있다. 고전주의 미학은 숨쉴 틈없이 완벽하게 진공인 상태라면 그로테스크 미학은 실제보다 더 큰 형태에서 구멍과 돌출을 강조하며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이러한 기괴성의 미학은 시민의 자유에 대한 바흐친의 개념을 분명히 하는데, 진정한 의미의 자유로운 발언은 오직 축제의 축제화한 발화일 뿐이다. 특히 역사의 어떤 시점에서 축제는 삶의 비공식적인 측면에 놓여있다. 즉, 현세의 이기적인 이해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바흐친의 말처럼 나 또한 <생의 축제>란 카니발처럼 난잡한 쾌락이 아니라 숨을 쉴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살아있음의 살아있음을 느끼는 과정이다. 생존과 경쟁의 치열함 속에서 살아가는 한국의 청년들에게 있어서 내가 그동안 계속해서 해왔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선언할 내용이기도 하다.


<생의 축제>는 『악령』에 나오는 것처럼 <신의 추구>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외려 그 반대이다. 인간이란 불완전한 존재, 나약한 존재임을 깨닫고 그러하기에 서로와의 대화를 촉구하며 자신이 고독한만큼 타인도 고독하기에 자신이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순례의 길”이다. 그 길에서 그 사람은 혼자가 아니다.


『생의 축제』

1.
생의 축제- 그것은
죽음의 장례식이며
피와 피부의 결혼이며
진리와 영의 결합이다
살아있음을 느끼려면
망자들의 절벽, 그 반대편으로
건너가야 한다
2.
창조적 파괴는 존재하지 않는다
파괴는 파괴일 뿐
창조는 오직 내적인 대화에서부터 온다
영의 부름이 목소리로 현현할 때
창세가 시작되었다
3.
정녕 이 시대는 표징과
예언자를 찾지조차 않는다
어리석은 자는 믿지 않고
지혜로운 자는 박해받기
때문이다.
4.
그러니 물에서부터,
태초의 물가에서부터
다시 세례를 받으리라
듣으려고도 보려고도 하지
않으려는 이들 앞에
불타는 떨기 나무에 펜 촉을 적셔쓰리라
5.
“’있는 나'이신 분께서
그대들을 태중에서부터 안배하셨노라.
이 시대의 진창을 부수고 나올
자기 자신과 형제들의 해방자로
삼으셨노라.”
6.
수많은 이름없는 얼굴들 가운데서
그대 자신을 찾으라!
떠나기에 앞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근심하지 마라
무엇을 잃을지도 두려워마라
젋음이 벌써부터 상실을 걱정하면
희망의 잉태는 누가 하리오?
7.
광장이 전쟁터가 되지 않도록
촛불이 화염병이 되지 않도록
그 가운데에 오직 한 송이
횃불만이 모두의 심장이 되도록
이방인의 목소리에 경청해라
그의 외로움을 가엾이 여겨라
그의 연인이자 스승이 되어라
그렇게 걸어간 길은 순례가 될 터이니
광장은 성스러운 도성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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