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나는 그렇게 함께 했다
그때 나는 백화점에 혼자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옷이 필요했던 건 아니었다.
계절이 바뀌는 속도를 몸이 먼저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유리문을 지나자마자 공기가 달라졌다.
너무 밝아서 오히려 사물의 경계가 흐려지는 곳이었다.
옷들은 조용히 걸려 있었고, 나는 그 사이를 천천히 지나갔다.
자켓 하나를 꺼냈다가 다시 걸었다.
셔츠를 펼쳤다가, 접어서 제자리에 넣었다.
거울 앞에 서면 잠깐씩 다른 사람이 서 있었다.
그런데 어느 쪽도 끝까지 남아 있지는 않았다.
그때 나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고르지 못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을 때,
아무것도 들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아내와 맥주를 마신 날이 있었다.
그날 아내는 머리카락을 계속 만지고 있었다.
“미용실 갔는데 계속 망설였어.”
짧게 자를까, 그냥 둘까.
말은 그렇게 흘러나왔는데, 결정없이 앞머리만 자르고 나왔다고 한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다 똑같아.”
아내가 나를 잠깐 보았다.
“예전엔 당신이 바로 말해줬는데.
짧아.
이게 나아."
그 말이 어떤 기준처럼 보여지는 시간이 있었다.
아내는 잔을 돌리며 머리끝을 다시 잡았다 놓았다.
대신 맥주 거품이 천천히 줄어들고 있었다.
둘이 당구장이 가기로 했다.
친구들과 앉아 있던 테이블,
늘 비슷한 자리, 비슷한 시간.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시간은 서로에게서 빠져나갔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 늦게 끝나는 일, 집으로 먼저 돌아가는 저녁들.
“한 번 보자”는 말은 계속 남았지만,
어디에도 착지하지 못한 채 떠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아내를 데리고 당구장에 갔다.
처음에는 그냥 따라온 것이었다.
큐대를 잡는 손이 잠깐 멈췄다.
“이거 이렇게 하는 거 맞아?”
공은 계속 옆으로 흘렀다.
맞지 않고, 맞을 듯하다가 비껴갔다.
“여기서 각을 이렇게 보면 돼.”
내가 말하는 동안, 내가 언제부터 이런 말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공 하나가 들어갔다.
아내는 그 자리를 오래 보았다.
말은 없었지만, 그 이후로 몇 번 더 쳤다.
들어가는 것도 있었고, 비껴가는 것도 있었다.
그래도 너무나 재미있었다
당구장안에 짜장면을 먹던 날이 있었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고,
젓가락이 그 위를 천천히 지나갔다.
밖에서는 차가 지나갔다.
아내가 말했다.
“이게 당구장안에서 먹는 짜장면 맛이구나.”
나는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영장도 함께했다.
아내는 잠깐 물속에서 멈췄다.
“무섭다.”
처음에는 몸이 잘 나아가지 않았다.
팔을 뻗어도 물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몇 번 반복된 뒤에야
조금씩 앞으로 이동했다.
아내는 물 위에 잠깐 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내에게 여기서 살려면 힘을빼고 팔을 저어야해
냉정히 말했다
아내는 말한대로 힘을 빼고 팔을 저었고
앞으로 나아갔다
나올 때 수건이 물기를 가져갔다.
아내는 젖은 머리를 손으로 눌렀다.
“오늘 좀 많이 했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들은 특별한 일이 일어난 날들이 아니었다.
생활이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흘러가던 시간이었다.
사람들이 바뀐 것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기준이 바뀌고 있었던 시간.
그걸 그때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