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사랑이 흐르던 시간

7화 나는 이미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다

by송현준

그날,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소개팅으로 만난 사람이었다.

간호사라는 말에 으레 떠올리던 얇은 선입견이 있었다.

차분하고, 단정하며,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을 것 같은 사람.

그러나 실제로 만난 그녀, 나의 아내는 전혀 달랐다.

푸른하늘 아래 유명하진 않지만 따스함이 가득한 파스타 집이었다.

입가에 소스가 묻어 있었지만, 그녀는 닦지 않았다.

그저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저 별명이 오리예요.”


설명이 붙지 않는 말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말을 온전히 이해했다.

그녀가 나에게 처음 건넨 말은 따로 있었다.


“생각보다 크시네요.”


내 키는 175cm, 그 앞에 앉은 아내의 키는 168cm. 다행이었다.

그 차이가 그날따라 유난히 또렷하게 느껴졌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신 뒤, 우리는 함께 길을 걸었다.

길 건너편에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보였다.

서른한 가지 맛을 파는 그 가게를 발견하고, 나는 별생각 없이 물었다.

“어떤 아이스크림 좋아해요?”

아내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수박바요.”

나는 속으로 ‘나는 돼지바인데’ 하고 생각하며 웃었다.

저 많은 아이스크림을 두고 수박바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어쩌면 나는 그 순간부터 그 사람을 좋아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아내가 병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주었다.

“오늘 암 병동이 정말 바빴어. 특히 61병동은….

” 61병동. 그 단어가 내 귀에 박혔다.

잊을 수 없는 숫자였다.

“잠깐만, 6층? 혹시… 혈액종양내과이었는데?” 내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아내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음… 거기 혈액종양내과 조혈모세포 이식실? 왜?”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의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오래 머물렀던 병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정확한 자리였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은 아닐까.

나는 그 순간, 처음으로 그렇게 확신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외식이 줄고, 마트에 가는 날이 많아졌다.

장을 보고 돌아오면 각자 봉투를 들고 집으로 올라왔다.

냉장고에 물건을 넣고, 세탁기를 돌리고, 밀린 분리수거를 하고, 주말이면 청소기를 돌렸다.

식비를 줄여보자고 말한 적도 있었지만, 생각만큼 잘 되지는 않았다.

대신 우리는 서로의 다른 점을 조금씩 알아갔다.


나는 대충 넘어가는 편이었고, 아내는 한 번 더 확인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설거지를 쌓아두는 편이었지만, 아내는 식사 후 바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나는 미루는 편이었고, 아내는 바로 실행하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고치려고 하기보다 인정하는 법을 먼저 배웠다.

사랑은 생각보다 생활에 가까웠다.

같이 장을 보고, 같이 냉장고를 정리하고, 오늘 저녁은 뭘 먹을지 고민하는 일.

그렇게 하루를 나누어 쓰며 살았다. 사랑과 전우애의 중간쯤 되는 마음으로.


어느 날, 냉장고 문을 열었다.

잊고 있던 수박바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내가 좋아하는 돼지바도 함께였다.

나는 아내를 불렀고, 우리는 말없이 수박바를 나누어 먹었다.

달콤하고 시원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지는 순간, 스쳐 지나가는 기억.

서른한 가지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수박바를 좋아한다고 말하던 그녀의 해맑은 얼굴.

그리고 그 옆에서 돼지바를 떠올리던 나의 모습.

그 순간의 나는 알지 못했지만,

어쩌면 그때부터 우리의 소소한 행복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서른한 가지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수박바를 좋아한다고 말하던 그 사람을, 나는 꽤 일찍부터 좋아했던 것 같다고.


그날, 나는 이미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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