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드디어 너를 만났다
성탄절 아침,
식탁 위에 놓인 테스트기의 그 희미한 흔적은 온종일 우리의 시선을 붙잡아 두었다.
햇빛의 방향을 바꾸어 보아도,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떠 보아도 그 자리에 가느다란 실금처럼 남아 있었다.
그것은 선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어떤 간절한 염원이 남긴 투명한 자국 같았다.
나와 아내는 그 작은 플라스틱 막대를 사이에 두고 낮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큰 숨을 내쉬면 그 연약한 빛이 날아가 버릴까 봐,
우리는 기뻐하는 법조차 잊은 사람들처럼 조심스럽게 서로의 눈빛만 살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다시 확인한 창가에서
우리는 마침내 그것이 착각이 아닌 '진짜 선'이라는 것을 마주했다.
어제보다 아주 조금,
정말 아주 조금 더 붉은 기운을 띤 채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선명한 두 줄이었다.
그 선을 바라보는 순간, 가슴 한구석이 묵직하게 차올랐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의 태명을 정했다.
성탄절 아침에 선물처럼 찾아온 임신 소식이었기에,
망설임 없이 '성탄이'라고 지었다.
어둠이 가장 길고 깊은 겨울의 한복판에서,
가장 빛나는 날에 찾아와 준 아이. "성탄아." 아내의 작은 입술 사이로 처음 태명이 흘러나왔을 때,
방 안의 공기가 미세하게 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의 환자복 냄새가 깃든 차가운 병실 안,
간간이 들려오는 기계음 소리를 백색소음 삼아
간이침대에 엎드려 공무원 시험 바카라을 넘기던
그 외롭고 위태롭던 밤들이 스쳐 지나갔다.
언제 꺼질지 모르는 엄마의 시간 곁에서 바카라장을 넘기던 나의 서글픈 간절함,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뒤 마주했던 무미건조한 서류들까지.
내 삶을 지나간 그 수많은 거칠고 무거웠던 시간들이
이 작은 두 줄의 선을 만나기 위한 긴 우회로였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무뚝뚝하게 멀리서 나를 바라보시던 아버지의 굽은 등 뒤로 흐르던 침묵의 무게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았다.
삶이라는 가혹한 지도 위에서 늘 길을 잃고 헤매던 나에게,
마침내 흔들리지 않는 단 하나의 좌표가 찍힌 기분이었다.
그러나 기적은 완성인 줄 알았으나,
실은 더 깊은 인내를 요구하는 새로운 여정의 시작이었다.
아기집을 보고 심장 소리를 들으면 모든 불안이 씻겨 내려갈 줄 알았는데,
매달 찾아오는 병원 일정은 우리를 또 다른 시험대 위에 올려놓았다.
주수대로 피검사 수치가 제대로 오르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부터,
정밀 초음파 모니터를 바라보는 일까지
진료실 문을 열 때마다 숨이 턱 막혔다.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을 때면 나와 아내는 늘 말없이 손을 꼭 잡았다.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위로는 오직 그 손바닥의 온기뿐이었다.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의 크기는, 정확히 이 아이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의 크기와 같았다.
16주 차가 되던 날,
우리는 정밀검사 결과지에서 '다운증후군 고위험군'이라는 날카로운 단어를 마주했다.
의사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심장이 땅속 깊은 곳으로 툭,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진료실을 나오는데 겨울의 복도 바람이 유난히 차가웠고
온몸이 얼어붙어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18주 차에 양수천자 검사를 예약하고 돌아온 날부터,
우리 집의 시간은 서글플 정도로 느리게 흘렀다.
아내는 며칠 밤을 눈도 감지 못한 채 거실 스탠드 불빛 아래 앉아 있었다.
흑백의 초음파 사진을 손끝으로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괜찮을 거라고,
아무 일 없을 거라고 가만히 가만히 속삭였다.
나 역시 출근길 운전대를 잡고 신호등 앞에 멈춰 설 때마다,
차창 너머 시린 하늘을 올려다보며 수백 번을 기도했다.
제발 우리 아이에게 아무 일 없기를, 지켜달라고.
다행히 2주 뒤에 전해 들은 검사 결과는 정상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와 아내가 함께 내쉰 깊은 숨 속에서,
그동안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돌덩이가 씻겨 내려갔다.
불안과 조심스러움으로 가득했던 계절이 지나고,
아내의 배가 하루하루 둥글고 다정하게 부풀어 올랐다.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기쁨을,
진짜 사랑을,
그리고 희망의 무게를 배워가고 있었다.
늦어진 출산휴가 날짜에 맞추어,
우리는 의사 선생님의 권유대로 제왕절개 수술을 하기로 했다.
달력을 식탁 위에 펼쳐놓고 나와 아내는 기분 좋은 고민에 빠졌다.
'가을에 태어난 분위기 있는 여자아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늑한 풍경을 그리며,
수술 날짜를 9월 1일로 정했다.
하지만 아이는 우리 생각보다 성격이 조금 급했던 모양이다.
달력이 아직 8월 28일에 머물러 있던 깊은 밤,
아이는 예고도 없이 세상의 문을 두드렸다.
그날 저녁만 해도 우리는 참 평온했다.
출산하면 한동안 매운 것도,
구운 고기도 못 먹을 테니
마지막 만찬으로 곱창전골이나 소고기를 먹으러 가자며
거창한 맛집 리스트를 짜놓았었다.
하지만 막상 밤이 되자 몸이 무거워져
그냥 집 앞 햄버거로 대충 한 끼를 때웠다.
오늘 하루만큼은 아무 생각 하지 말고 푹 쉬자고,
서로를 바라보며 편안하게 웃었더랬다.
밤 10시가 조금 넘었을 때,
아내는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어
유튜브로 출산 가방 싸는 법과 수술 후기 브이로그를 보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흘러나오는 쾌활한 배경음악을 들으며,
병실에서 쓸 물건들을 하나씩 가방에 다시 채워 넣는
아내의 둥근 뒷모습을 바라보던 참이었다.
"성탄이 아빠, 배가 아파…… 이슬이 비친 것 같아."
어둠이 내려앉은 방 안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잠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미리 현관 앞에 놔두었던 캐리어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자동차 트렁크에 가방을 실으며 8월의 밤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아,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귓가에 선명하게 들렸다.
다시 집으로 들어와 아내에게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병원 가면 수술하고 한동안 머리 못 감으니까, 얼른 감고 나오자."
그 긴박한 와중에 그런 현실적인 말이 튀어나온 것이 지금 생각하면 조금 우습지만,
그땐 그게 우리가 부릴 수 있는 최선의 의연함이자 침착함이었다.
아내가 욕실에서 머리를 감는 동안,
나는 거실에 서서 거울 속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처음으로 누군가의 부모가 되는 길은 이토록 예고가 없고,
서툴고, 엉성하다.
달력의 날짜도 맞추지 못했고 근사한 마지막 만찬도 먹지 못했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완벽하게 준비된 부모는 없을지 몰라도,
이 아이를 세상 누구보다 깊이 사랑할 자신만큼은 차고 넘쳤으니까.
강물은 어제의 경계를 지우며 흐르듯,
내 삶의 모든 방황과 슬픔은 아이라는 거대한 강물 속으로 기꺼이 녹아들고 있었다.
시동을 걸자 차창 밖으로 가을밤 불빛들이 길게 흘러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