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이라는 탈 — 좋아서 한다는 말의 함정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말이, 나를 태우는 장작이 될 때

by쉼표JEONGSEON


"이 일이 좋아서 하는 거예요."


이 말을 할 때 나는 조금 뿌듯하다. 돈 때문이 아니라 좋아서 한다니, 얼마나 순수한가. 얼마나 나다운가. 그래서 밤을 새워도 괜찮고, 대가가 적어도 참을 만하고, 몸이 부서져도 "좋아서 하는 일인데 뭐" 하고 넘긴다. 나는 열정이 있는 사람이니까. 열정이 있는 사람은 이 정도 힘든 건 견디는 거니까.


바로 그 "좋아서 하는데 뭐"가, 이 글이 해부대에 올리려는 것이다.


열정이라는 탈은 가장 빛나 보이는 탈이다. 이 탈을 쓴 사람은 눈이 반짝이고, 지치지 않고, 아름다워 보인다. 그런데 이 탈에는 아무도 잘 못 보는 함정이 하나 있다. 그것은 모든 착취를 정당한 것으로 바꿔버리는 마법이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말 앞에서는, 부당한 대가도, 무리한 요구도, 자기 파괴적인 소진도 전부 괜찮은 것이 된다. 좋아서 하는 건데 누굴 탓하겠는가. 그렇게 열정은, 나를 태우는 장작에 붙이는 가장 그럴듯한 이름이 된다.


"좋아하니까 괜찮다"는 마법의 정체


세상은 이 마법을 아주 잘 안다.


"너 이거 좋아하잖아." 이 한마디면 정당한 대가를 깎을 수 있다. "열정 있는 친구를 찾습니다"라는 말로 낮은 임금을 포장할 수 있다. 좋아서 하는 사람에게는 돈 얘기를 꺼내는 게 오히려 속물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렇게 열정은 착취의 가장 우아한 도구가 된다. 채찍을 들 필요가 없다. "너 이거 좋아하잖아" 한마디면 사람이 스스로 달리니까.


그런데 더 무서운 건, 남이 이 마법을 걸기 전에 내가 나에게 먼저 건다는 것이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밤을 새우고, 아무도 안 시켰는데 몸을 갈아 넣고, 그러면서 "이건 착취가 아니야, 내가 좋아서 하는 거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좋아한다는 그 감정 하나가, 나 자신을 소진시키는 모든 행위에 면죄부를 준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헷갈린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과, 그것을 위해 나를 파괴해도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려면 오히려 나를 아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반대로 한다. 좋아하니까 더 갈아 넣고, 좋아하니까 더 참고, 그러다 정작 그 좋아하던 마음까지 다 태워버린다. 열정으로 시작한 일이 열정을 소진시켜 끝난다. 좋아서 시작했다가, 좋아하는 마음을 잃고서야 멈추는 것이다.


다 타버린 성냥의 말


오늘 해부대 위에 올린 것은 다 타버린 성냥 한 개비다.


재떨이를 비우다가, 까맣게 탄 성냥 하나가 눈에 걸렸다. 버리려는 순간, 그것이 말을 걸어오는 상상을 했다. 한순간 확 타올라 화려하게 빛을 내고, 이제는 까맣게 재가 되어 몸이 반으로 굽어버린 그 성냥이.


"나, 참 화려하게 탔지?"


성냥의 목소리는 재처럼 부스러졌다.


"불이 붙는 순간, 다들 나를 봤어. 얼마나 밝고 뜨겁게 타는지. 나도 그때가 좋았어. 나는 원래 이렇게 타라고 태어난 거니까, 좋아서 활활 탔지. 근데 봐라. 그 화려한 순간이 몇 초였게? 나는 나를 아끼는 법을 몰랐어. 좋아서 탄다는 게, 나를 다 태워도 된다는 뜻인 줄 알았거든.


너도 그래. 너는 좋아서 활활 타고 있다고 뿌듯해하지. 근데 성냥은 두 번 못 타. 한 번 다 타버리면 그냥 재야. 아무리 좋아하던 일도, 너를 다 태우고 나면 다시는 못 해. 그 좋아하던 마음까지 재가 되니까.


진짜 오래 타는 건 뭔지 알아? 촛불이야. 촛불은 자기 몸을 천천히 녹이면서, 심지를 아끼면서 타. 좋아하는 걸 오래 하고 싶으면, 나처럼 확 타지 말고 촛불처럼 타. 좋아서 하는 일일수록, 너를 다 던지지 마라. 다 던지면, 그 좋아하는 마음이 제일 먼저 타버려."


성냥의 말은 가벼웠지만, 타는 냄새는 오래 남았다. 나는 그동안 내 열정이 순수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나는 순수한 게 아니라, 나를 아낄 줄 몰랐던 것이다. 좋아한다는 감정을 나를 다 태워도 된다는 허락으로 착각하고, 그 좋아하던 마음까지 재가되도록 활활 타고 있었을 뿐이다.


열정을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불을 끄라는 게 아니다. 미지근하게, 아무것도 좋아하지 말고 적당히만 하며 살라는 게 아니다. 좋아하는 게 없는 삶은 그 자체로 또 다른 재다.


내가 하려는 말은, 좋아하는 것과 자기 파괴를 구분하라는 것이다. 진짜 열정은 자기를 아낀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 멀리 하고 싶어서 자기 몸과 마음을 챙긴다. 반면 가짜 열정은 자기를 태운다. "좋아서 하는 건데 뭐"라며 대가도, 휴식도, 한계도 다 무시하다가, 결국 좋아하던 그것까지 태워 없앤다. 나를 태워서 하는 일은 오래갈 수 없다. 장작은 언젠가 떨어지니까.


그러니 "이거 좋아서 하는 거예요"라는 말이 입에서 나올 때, 딱 한 번만 물어보라. 나는 지금 이 일을 사랑하는 건가, 아니면 이 일을 핑계로 나를 학대하는 건가. 이 열정은 나를 살리는 불인가, 아니면 나를 다 태워버릴 불인가. 나는 촛불처럼 타고 있는가, 아니면 성냥처럼 한 번 확 타고 재가 되려 하는가.


좋아하는 마음은 귀하다. 그러니 그것을 한 번에 태워 없애지 말고, 오래 탈 수 있게 아껴라. 좋아하는 일을 위해 가장 먼저 지켜야 할 것은, 그 일이 아니라 그 일을 좋아하는 당신이다.


쉼표의 엉뚱한 질문


오늘 당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하며 넘긴 그 밤샘과 무리는, 정말 사랑이었는가. 아니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태우는 걸 허락한 것이었는가.


당신은 지금 촛불처럼 오래 타고 있는가. 아니면 성냥처럼 화려하게 한 번 타오른 뒤, 좋아하던 마음까지 재가 되어 가고 있는가.


— 쉼표 JEONG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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