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라는 탈 —
무뎌짐을 성숙이라 부르며

아무것도 느끼지 않게 된 것을, 우리는 철들었다고 부른다

by쉼표JEONGSEON


언제부턴가 웬만한 일에 무덤덤해졌다.


예전 같으면 설렜을 일에 심장이 잠잠하고, 상처받았을 말에도 그냥 어깨를 으쓱한다. 누가 무례하게 굴어도 "그러려니" 하고, 좋은 소식에도 "뭐, 그럴 수 있지" 한다. 나는 이걸 성장이라고 여겼다. 예전의 나는 너무 예민했고, 사소한 일에 울고 웃느라 피곤했으니까. 이제 나는 어떤 일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어른이 되었다.


바로 그 무덤덤함이, 이 글이 해부대에 올리려는 것이다.


어른이라는 탈은 가장 의젓해 보이는 탈이다. 이 탈을 쓰면 아무도 나를 유치하다고 하지 않는다. 흔들리지 않고, 기대하지 않고, 다치지 않는 사람. 그런데 우리는 한 가지를 헷갈리고 있다. 상처받지 않게 된 것과, 아무것도 느끼지 않게 된 것은 다르다. 성숙은 감정을 잘 다루게 되는 것이지, 감정을 꺼버리는 게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불을 끈 것을 두고, 불을 다스리게 됐다고 착각한다.



무뎌짐은 성숙이 아니라 마취다


진짜 성숙한 사람은 여전히 느낀다.


그는 기쁠 때 기뻐하고, 억울할 때 억울해하고, 아름다운 것 앞에서 여전히 마음이 움직인다. 다만 그 감정에 휩쓸려 무너지지 않을 뿐이다. 느끼되 지배당하지 않는 것, 그게 성숙이다. 감정의 볼륨을 0으로 줄이는 게 아니라,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것.


그런데 우리가 '어른스럽다'며 자랑하는 무뎌짐은 대개 이것과 다르다. 그것은 성숙이 아니라 마취다. 너무 많이 다쳐서, 이제는 아픈 게 무서워서, 감각 자체를 꺼버린 것이다. 설레지 않기로 한 건 실망하기 싫어 서고, 기대하지 않기로 한 건 배신당하기 싫어서다. 무감각은 상처를 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동시에 살아 있음을 피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문제는, 마취는 나쁜 감각만 골라서 끄지 못한다는 것이다. 슬픔을 못 느끼게 되면 기쁨도 못 느낀다. 상처에 무뎌지면 감동에도 무뎌진다. 아픈 걸 안 느끼려고 마음을 마취시킨 대가로, 우리는 벅찬 것, 설레는 것, 눈물 나게 좋은 것까지 함께 잃는다. 그리고 그 텅 빈 무감각을 "어른이 되어 초연해졌다"라고 포장한다. 사실은 그냥 마음이 굳어 가고 있을 뿐인데.



녹슨 자물쇠의 고백


오늘 해부대 위에 올린 것은 열쇠 곁에 놓인 녹슨 자물쇠 하나다.


창고 구석, 낡은 궤짝에 걸린 자물쇠였다. 열쇠를 꽂고 아무리 힘을 줘도 꿈쩍하지 않았다. 하도 오래 잠가둬서 녹이 붉게 슬어버린 그 자물쇠가, 그 순간 말을 걸어오는 상상을 했다.


"나, 원래 여닫으라고 만들어진 물건이야."


자물쇠의 목소리는 녹처럼 뻑뻑했다.


"잠그는 것도 내 일이지만, 여는 것도 내 일이었어. 그런데 너는 나를 잠그기만 했지. 다칠까 봐, 뭐가 들어올까 봐, 한 번 잠근 뒤로 다시는 안 열었어. 그렇게 몇 년을 두니까 어떻게 됐게? 나는 이제 열고 싶어도 못 열어. 녹이 다 슬어서 굳어버렸거든.


너는 나를 보고 '단단하다'라고 하더라. 아무것도 못 들어오니 안전하다고. 근데 그거 아냐? 나는 단단해진 게 아니라 그냥 고장 난 거야. 잠긴 채로 굳은 거랑, 스스로 잠글지 열지 정하는 거랑은 완전히 다른 거야.


앞의 건 죽은 거고, 뒤의 건 산 거지.


너도 딱 나야. 마음을 하도 안 열어서, 이제 열고 싶어도 안 열리는 거. 그걸 초연하다고, 어른스럽다고 하지 마. 너는 초연한 게 아니라, 녹슨 거야. 무뎌진 걸 성숙이라 부르지 마라. 그건 그냥, 네 마음에 슨 녹이야."


자물쇠의 고백은 짧았지만, 손에 밴 쇳내처럼 오래 남았다. 나는 그동안 내가 단단해졌다고 믿었다. 그런데 나는 단단해진 게 아니라, 굳어 있었다. 다치기 싫어 마음을 잠갔고, 잠긴 채로 세월이 흘러 녹이 슬었고, 이제는 열 수조차 없게 된 그 상태를 — 나는 성숙이라 불러왔다.



다시 예민해지라는 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사춘기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다. 사소한 일에 다 흔들리고 감정에 휘둘리며 살라는 게 아니다. 그건 미성숙이지 생기가 아니다.


내가 하려는 말은, 무감각을 성숙과 헷갈리지 말라는 것이다. 진짜 어른은 감정을 죽인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지닌 채로 살아가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여전히 설레고 여전히 아파하지만, 그것에 잡아먹히지 않는 사람. 마음을 잠글 줄도 열 줄도 아는 사람. 늘 잠겨만 있는 자물쇠는 튼튼한 게 아니라 고장 난 것이다.


그러니 무언가에 무덤덤해진 자신을 발견할 때, 딱 한 번만 물어보라. 나는 이 감정을 잘 다스리게 된 건가, 아니면 다치기 싫어서 아예 꺼버린 건가. 이 초연함은 성숙의 여유인가, 아니면 마음에 슨 녹인가. 나는 감정의 주인이 된 건가, 아니면 감정을 잠가둔 채 열쇠를 잃어버린 건가.


무뎌진 마음은 편하다. 아무것도 아프지 않으니까. 하지만 아무것도 아프지 않은 마음은, 아무것도 벅차지 않은 마음이기도 하다. 그건 어른이 된 게 아니라, 조금씩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쉼표의 엉뚱한 질문

오늘 당신이 "뭐, 그럴 수 있지" 하고 넘긴 그 일은, 정말 초연해서였는가. 아니면 마음을 쓰는 게 무섭고 피곤해서, 감각을 미리 꺼둔 것이었는가.


당신 마음의 자물쇠는 지금 당신 뜻대로 여닫히는가. 아니면 하도 오래 잠가둬서, 이제는 열고 싶어도 열리지 않을 만큼 녹이 슬어버렸는가.



— 쉼표 JEONG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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