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이라는 탈이 금지한 슬픔

"좋게 생각해"라는 말이 당신의 진짜 마음을 매장할 때

by쉼표JEONGSEON


"괜찮아. 다 잘될 거야. 긍정적으로 생각해."


이 말을 들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더 막막해진다. 분명 위로하는 말인데, 위로받은 것 같지가 않다. 오히려 입이 막힌다. 내 안에 아직 안 괜찮은 것이 잔뜩 있는데, "괜찮아"라는 말 앞에서 그것들을 꺼낼 자리가 사라진다. 나는 서둘러 표정을 고친다. "응, 맞아. 좋게 생각해야지." 그렇게 웃는 얼굴을 만들어 붙인다.

그 웃는 얼굴이, 이 글이 벗기려는 탈이다.

긍정이라는 탈은 가장 착해 보이는 탈이다. 밝고, 따뜻하고,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이 탈은 남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가장 잔인하다. 이 탈을 쓰는 순간, 내 안의 슬픔과 분노와 두려움은 "부정적인 것"이라는 딱지가 붙어 지하실로 끌려 내려간다. 없어지는 게 아니다. 그냥 안 보이는 곳에 갇힐 뿐이다.


감정에는 죄가 없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감정을 둘로 나눠 재판하기 시작했다.

기쁨·감사·희망은 '좋은 감정'. 슬픔·분노·불안은 '나쁜 감정'. 좋은 감정은 표현해도 되지만, 나쁜 감정은 빨리 처리하거나 숨겨야 한다. 우울하다고 하면 "그럴수록 밝게 살아야지" 하고, 화가 난다고 하면 "그렇게 부정적으로 굴지 마" 한다. 그렇게 우리는 자기감정의 절반을 범죄자 취급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감정에는 죄가 없다. 슬픔은 무언가를 잃었다는 정직한 신호이고, 분노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정확한 경보다. 불안은 위험을 미리 감지하는 오래된 파수꾼이다. 이것들을 "부정적"이라며 입 막아버리는 건, 집 안에서 울리는 화재경보를 시끄럽다고 꺼버리는 것과 같다. 경보를 껐다고 불이 꺼지지는 않는다.

강요된 긍정이 무서운 건, 그것이 위로의 얼굴을 하고 있어서다. "좋게 생각해"라는 말은 다정해 보이지만, 실은 "네 슬픔은 여기서 그만 접으라"는 명령이다. 슬퍼할 권리를 빼앗긴 사람은, 슬픔 위에 웃음을 덧칠하는 법만 배운다. 그리고 그 덧칠이 두꺼워질수록, 자기가 진짜로 무엇을 느끼는지조차 모르게 된다.


말라죽은 화분의 고백

오늘 해부대 위에 올린 것은 말라죽은 화분 하나다.

하루는 창가에서 잎이 다 마른 화분을 버리려다, 그것이 말을 걸어오는 상상을 했다. 내가 매일 볕이 잘 드는 창가로 옮겨주며 "그래, 밝은 데 있어야 잘 크지" 하고 뿌듯해하던, 그러나 끝내 말라버린 그 화분이.

"너, 나한테 볕은 실컷 줬어. 그런데 물은 언제 줬지?"

화분의 목소리는 마른 잎처럼 바스락거렸다.

"너는 내가 밝은 곳에만 있으면 잘 자랄 줄 알았지. 그래서 매일 햇빛 잘 드는 데로 옮겨주고, 흐린 날엔 미안해했어. 근데 식물은 볕만으로 안 살아. 어둠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물이 필요해. 축축하고 눅눅한, 네가 싫어하는 그 물 말이야.

너는 네 마음한테도 똑같이 했어. 밝은 감정만 볕처럼 쬐어주고, 슬픔이라는 물은 '눅눅하다'며 안 줬지. 우는 걸 나약하다고, 화내는 걸 부정적이라고 매일 말려버렸어. 그렇게 볕만 쬔 마음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 나처럼 이렇게 바싹 말라죽어. 겉은 멀쩡히 웃고 있는데, 뿌리가 다 타버려서.

슬픔은 네 마음의 물이야. 그걸 금지하면, 넌 밝게 웃으면서 안에서부터 말라죽어."

화분의 고백은 가벼웠지만, 내 안 어딘가에서 뚝 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동안 내가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나는 긍정적인 게 아니라, 슬픔을 무서워하는 사람이었다. 내 안의 어두운 감정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그 위에 서둘러 "괜찮아"라는 볕을 덧칠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사이 뿌리는 바싹 타들어 가고 있었다.


슬퍼하라는 말이 아니다

오해는 말자. 온종일 우울에 잠겨 어둠 속에서 살라는 게 아니다. 그것 역시 감정의 절반만 사는 일이다.

내가 하려는 말은, 감정에 재판을 걸지 말라는 것이다. 슬픔이 올라오면 슬퍼하고, 화가 나면 화를 느끼고, 그것들을 "나쁜 것"이라며 서둘러 지하실로 밀어 넣지 말라는 것. 진짜 건강한 마음은 늘 밝은 마음이 아니라, 모든 감정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마음이다. 슬픔이 다녀갈 수 있어야, 기쁨도 진짜로 머문다. 볕과 물이 함께 있어야 뿌리가 사는 것처럼.

그러니 다음에 누군가 "괜찮아, 좋게 생각해"라고 할 때, 혹은 당신이 스스로에게 그 말을 하려 할 때, 딱 한 번만 멈춰보라. 지금 이건 위로인가, 아니면 슬픔을 향한 퇴거 명령인가. 나는 진짜로 괜찮은가, 아니면 괜찮은 표정을 만드는 중인가.

웃는 탈 밑에서 말라죽어 가는 뿌리에게, 오늘은 물 한 모금 줘도 된다. 우는 것은 시드는 게 아니라, 사는 것이다.


쉼표의 엉뚱한 질문

오늘 당신이 "괜찮아"라고 말했을 때, 그건 진짜 괜찮아서였는가. 아니면 안 괜찮다고 말할 자리가 어디에도 없어서, 급히 지어낸 표정이었는가.

당신이 매일 볕만 쬐어준 그 마음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가. 아니면 겉으로만 웃은 채, 물을 못 마신 뿌리가 조용히 타들어 가고 있는가.

Resonance of Solitude · 음악 truepen (youtube.com/@truepen_music)

— 음악을 나눠 주신 truepen 님께 감사드립니다.




— 쉼표 JEONG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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