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얼굴이라는 감옥

"좋은 사람"으로 남으려다, 내 삶의 열쇠를 남에게 넘겨준 당신에게

by쉼표JEONGSEON


또 "네"라고 대답해 버렸다.


하기 싫은 부탁이었다. 이번 주말도 이미 꽉 차 있었고,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다. 그런데 상대가 곤란한 얼굴로 부탁을 꺼내는 순간, 내 입은 머리보다 먼저 움직였다. "아, 네. 그럼요. 제가 할게요."


돌아서는 길, 가슴이 답답하게 막혔다. 나는 또 나를 뒤로 미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답답함 옆에 작은 안도감이 있었다. 적어도 나는 나쁜 사람은 되지 않았다는 안도.


그 안도감이, 이 글이 벗기려는 탈이다.


착함이라는 탈은 가장 사랑받는 탈이다. 이 탈을 쓴 사람은 어디서나 환영받는다. "저 사람 참 착해." 그 말 한마디가 좋아서, 우리는 이 탈을 점점 더 꽉 조여 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탈이 얼굴을 파고들어 벗겨지지 않는다. 착한 사람이 되기로 한 게 아니라, 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게 감옥이다.



거절하지 못하는 것은 친절이 아니다


우리는 착함과 거절 못 함을 자꾸 헷갈린다.


진짜 친절은 힘이 있는 상태에서 나오는 선택이다. 줄 수 있어서 주고, 도울 여유가 있어서 돕는다. 그리고 아닐 때는 "미안하지만 이번엔 어렵겠어요"라고 말할 수 있다. 그 거절이 있기에, 그 사람의 "네"는 진짜 호의가 된다.


반면 거절 못 함은 선택이 아니라 공포다. 미움받을까 봐, 실망시킬까 봐, "이기적이다"라는 말을 들을까 봐. 그 두려움에 떠밀려 나오는 "네"는 친절이 아니라 항복이다. 우리는 그 항복에 '착함'이라는 예쁜 이름을 붙여, 자신이 겁먹었다는 사실을 가린다.


문제는 세상이 이 차이를 귀신같이 안다는 것이다. 거절 못 하는 사람에게는 부탁이 몰린다. 어차피 "네" 할 사람이니까. 그렇게 착한 사람은 점점 더 많은 짐을 지고, 정작 자기 삶은 뒤로 밀린다. 남의 급한 불은 다 꺼 주면서, 자기 집이 타는 건 못 본 척한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다,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가장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미움받을 용기가 없어서 모두에게 맞춰 살면, 결국 아무도 나를 진짜로 알지 못한다. 다들 내 탈만 좋아할 뿐, 탈 뒤의 나는 만난 적이 없으니까.



현관 매트의 항변


하루는 다 해진 현관 매트를 갈아 치우려다, 그것이 말을 걸어오는 상상을 했다. 매일 수십 개의 발에 밟히면서도 늘 "어서 오세요"라고 웃던, 이제는 그 글자마저 닳아 사라진 매트가.


"너, 나 닮았더라."


매트의 목소리는 밟혀서 납작했다.


"나는 하루 종일 여기 엎드려서, 들어오는 모든 발을 다 받아. 흙 묻은 신발이든, 나를 함부로 밟는 발이든, 나는 무조건 '어서 오세요'야. 거절이란 걸 못 해. 그게 내 일이니까. 근데 봐라, 그렇게 다 받아 준 결과가 이거야. 글자도 다 닳고, 색도 다 빠지고, 이제 버려질 일만 남았어.


너도 그래. 너는 들어오는 모든 부탁을 다 받지. '어서 오세요, 제가 할게요.' 그러고는 나처럼 닳아 가. 사람들은 너를 밟고 지나가면서 고맙단 말도 잘 안 해. 매트한테 누가 고맙다고 하냐? 밟히는 게 당연한 물건인데.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나는 매트라서 이 일밖에 못 해. 근데 너는 매트가 아니잖아. 너는 '싫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입이 있어. 그 입을 두고 왜 나처럼 엎드려서 다 받아 주냐. 너까지 밟히는 걸 당연하게 만들지 마라."


매트의 항변은 납작했지만, 가슴을 묵직하게 눌렀다.


착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내가 좋은 사람이라서 그런 줄 알았다. 아니었다. 나는 미움받는 게 무서워서 엎드려 있었을 뿐이다.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서 모든 부탁을 받아 주다가, 어느새 내 삶의 문 앞에 깔린 매트가 되어 있었다. 누구나 밟고 지나가도 되는.



나쁜 사람이 되라는 말이 아니다


오해는 말자. 모든 부탁을 걷어차고 제멋대로 살라는 게 아니다. 그건 무례일 뿐, 자유가 아니다.


내가 하려는 말은, 친절과 항복을 구분하자는 것이다. 진짜 주고 싶어서 주는 "네"와, 미움받기 무서워서 나오는 "네"는 다르다. 앞의 것은 친절이고, 뒤의 것은 자기 방치다. 그 둘을 구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당신의 "네"도 "아니요"도 힘을 갖는다.


거절은 관계를 깨는 게 아니다. 오히려 거절할 수 있어야 관계가 진짜가 된다. 나를 지우면서까지 맞춰 주는 관계는, 처음부터 나를 초대한 적이 없는 관계다. 그들은 당신의 착한 탈을 좋아한 것이지, 당신을 좋아한 게 아니다. 한 번 "아니요"라고 했을 때 떠나갈 관계라면, 그건 잃는 게 아니라 정리되는 것이다.


그러니 다음에 하기 싫은 부탁 앞에서 입이 먼저 "네"라고 하려 할 때, 딱 한 번만 멈춰 보자. 이건 내가 주고 싶은 걸까, 아니면 미움받기 싫어서 나를 또 밟히게 두는 걸까.



쉼표의 엉뚱한 질문


오늘 당신이 한 그 "네"는, 정말 당신이 하고 싶었던 대답인가. 아니면 "아니요"라고 했을 때 쏟아질 실망과 미움이 무서워, 급히 내민 항복의 깃발이었는가.


당신의 현관 매트는 오늘도 묵묵히 모든 발을 받아 냈다. 그런데 당신은 매트인가, 아니면 문을 열고 닫을 줄 아는 그 집의 주인인가. 밟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 지, 얼마나 되었는가.


— 쉼표 JEONG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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