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려 깎여나간 나를 되찾는 시간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수많은 심리적 허기 중에서도 가장 고치기 힘든 고질병은 단연 ‘착한 사람 콤플렉스’ 일 것이다. 타인의 부탁을 차마 뿌리치지 못해 혼자 속앓이를 하거나, 내 사정이 급한데도 남의 사정을 먼저 헤아리느라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행동들. 이 뿌리 깊은 성향은 온라인 게임 생활과 인간관계 속에서 언제나 소리 없는 독으로 작용한다.
나 역시 오랜 시간 동안 이 지독한 콤플렉스의 노예로 살았다. 누군가 무리한 부탁을 해올 때면, 가슴속에서는 거절의 단어들이 수없이 소용돌이쳤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언제나 얄궂게도 “네, 제가 해볼게요”였다. 평판이 깎여 나갈까 봐, 차가운 사람으로 비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나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내 영혼의 에너지를 아낌없이 탈탈 털어 남들에게 바쳤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회의감뿐이었다. 나의 선의는 상대방에게 당연한 권리가 되었고, 정작 내가 힘들 때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착한 사람이라는 가면은 스스로를 옥죄는 쇠창살이자, 자존감 회복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었음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나 자신을 갉아먹으며 버티던 어느 날, 문득 깨달음이 스쳤다. 나를 지키지 못하는 착함은 선(善)이 아니라 무능이자 미련함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세상을 거꾸로 뒤집어 보기로 했다.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노력을 멈추고 내 마음의 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리한 요구와 경계선을 침범하는 이들 앞에서 처음으로 단호하게, 그러나 차분한 목소리로 선을 그었다.
“죄송하지만, 지금은 제가 도와드릴 여력이 되지 않습니다.”
말을 뱉고 난 직후 심장이 터질 듯 쿵쾅거렸고, 묘한 죄바카라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구는 여전히 돌았고, 상대방은 다른 대안을 찾아 떠났다. 단호한 거절 뒤에 찾아온 것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뜻밖의 평화였다. 내가 남들의 부탁을 다 들어주지 않아도 세상은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지극히 당연한 진리를, 가면을 벗어던지고 나서야 비로소 온몸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새벽 4시의 고요 속에서 내 마음에 더 단단한 울타리를 치는 연습을 한다. 착하게 살지 않겠다는 말이 곧 무례한 사람이 되겠다는 뜻은 아니다. 진정한 자존감 회복은 타인의 인정에 목매는 것을 멈추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감정의 부피를 정확히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무례하게 선을 넘는 사람들을 향해 굳이 날을 세우며 분노할 필요는 없다. 비극을 희극으로 바꾸는 나만의 상상력만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우아하게 내 영역을 사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을 만났을 때 속으로 ‘아, 저 사람은 전생에 내게 큰 빚을 져서 이번 생에 어떻게든 받아내려 안달이 난 가여운 영혼이구나’라고 세계관을 재설정하는 것이다. 새벽 4시의 고독은 나에게 세상을 다정하게 무시하는 우아한 지혜를 선물해 주었다.
모두에게 착한 사람으로 기억되려 애쓰지 말자. 나를 싫어할 사람은 내가 간을 빼주어도 싫어하고, 나를 아껴줄 사람은 내가 조금 투박하게 거절해도 진심을 알아봐 준다. 그러니 행동은 품위 있게 하되, 내 마음의 울타리를 침범하는 이들에게는 우아하고 단호한 거절의 부메랑을 날려라.
착한 사람의 가면을 벗어던진 날, 비로소 내 진짜 인생 도전기가 시작되었다. 남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잠 못 들던 밤들은 사라졌고, 이제는 새벽 4시의 푸르스름한 고독 속에서 오롯이 나만의 문장을 써 내려가는 작가가 되었다. 당신의 착함이 상처로 돌아오지 않기를, 오늘 밤은 부디 남들의 시선 대신 당신 내면의 우아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기를 권한다.
의자를 비우는 것만으로 시작되는 내 삶의 주권
빌런들에게 분노 대신 고요한 절연(絶緣)을 선사하다.
그 달콤한 마취에서 깨어난 뒤에야 비로소 시작된 진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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