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빈 의자가 비어 있을 때 가장 정직하다

타인의 평가를 걷어낸 자리에 남은 가장 담백한 나

by쉼표JEONGSEON




퇴사 후 가장 먼저 찾아온 낯선 감정은 해방감 이면에 숨어 있던 '공백'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쉼 없이 돌아가던 쳇바퀴에서 훌쩍 뛰어내리자, 갑자기 내게 남겨진 거대한 시간과 공간이 몹시도 어색했다. 무언가를 생산해 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조바심, 소속된 곳이 없다는 묘한 불안감이 수시로 밀려왔다. 우리는 왜 이토록 '비어 있음'을 견디지 못하는 걸까.


온라인 게임인 시절, 나의 의자는 단 하루도 가벼운 적이 없었다. 직함이라는 묵직한 방석이 깔려 있었고, 등받이에는 타인의 기대와 켜켜이 쌓인 업무라는 무거운 외투가 항상 걸쳐져 있었다. 그 화려하고 무거운 장식들이 곧 나의 가치이자 존재 증명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의자가 조금이라도 비워질 틈이 보이면, 불안한 마음에 쓸데없는 인맥이나 과도한 바카라임감으로 그 자리를 꾸역꾸역 채워 넣곤 했다.



본질만 남은 의자의 고요한 위로

모든 타이틀을 내려놓고 맞이한 새벽 4시. 방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나의 빈 의자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화려한 직함도, 처리해야 할 서류 더미도 없는 온전한 나무 의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의자는 비어 있을 때 가장 정직하구나.

무언가를 올려두어야만 쓸모를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텅 비어 있음으로써 언제든 진정한 주인을 품을 준비를 마친 상태. 억지로 꾸며내거나 남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 없이, 오직 나라는 사람의 무게만을 온전히 지탱해 줄 수 있는 가장 순수한 본질만이 그곳에 남아 있었다. 공백은 결핍이 아니라, 내 삶의 캔버스를 새롭게 칠할 수 있는 완벽한 바탕색이었던 것이다.



채우기 위한 삶에서, 비워내는 사유로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채우라고 강요한다. 이력서의 빈칸을 채워야 하고, 통장의 잔고를 채워야 하며, 주말의 스케줄을 화려하게 채워야만 성공한 인생이라고 속삭인다. 하지만 정작 그 속에서 나 자신은 질식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늦게 깨닫는다.

이제 나는 억지로 내 의자를 채우려 아등바등하지 않기로 했다.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 가짜 바쁨을 만들어내거나, 의미 없는 관계들로 내 주위를 포장하지 않을 것이다. 비어 있는 시간은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소음 속에서 듣지 못했던 내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해주는 가장 정직한 스피커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의자는 지금 정직합니까?

지금 당신의 의자는 어떤 모습인가. 혹시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그럴싸한 장식품들로 짓눌려, 정작 당신이 편히 기대어 쉴 공간조차 남아있지 않은 것은 아닌가.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그 짐들을 덜어내 보라. 텅 빈 의자가 주는 서늘한 정직함을 마주할 때, 당신은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다. 당신의 가치는 의자 위에 놓인 수많은 타이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비어 있는 의자에 기꺼이 앉을 수 있는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에 있다는 것을.


[함께 읽으면 좋은 글]

남들의 속도에 맞추느라 대여했던 인생을 과감히 반납하기로 한 결심의 기록입니다.


[제5화] 당신은 당신의 인생을 대여하고 있다

타인의 평가를 걷어낸 자리에 남은 가장 담백한 나


[제1화] 나는 왜 빈 의자가 되었나

의자를 비우는 것만으로 시작되는 내 삶의 주권

by 쉼표 JEONGSEON

sticker sticker

#명의쉼표 #빈의자의주인 #비움의미학 #퇴사일기 #사유의성채 #미니멀라이프 #본질 #자아성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