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깻가루와 멸치로 만든 제철 밑반찬
장마가 잠시 쉬어 간 아침이었다. 아내와 함께 동네 시장으로 천천히 걸었다. 시장은 달력보다 먼저 계절을 알려주는 곳이다. 철마다 얼굴을 바꾸는 채소들을 보고 있으면 계절이 어디쯤 와 있는지 자연스레 알게 된다.
시장을 찾으면 늘 먼저 들르는 채소 가게가 있다. 연세 지긋한 할머니가 운영하는 작은 가게인데, 언제 들러도 싱싱한 채소가 가득해 믿음이 간다.
여름이면 내가 가장 먼저 찾는 채소도 있다. 바로 고구마 줄기다.
이른 아침인데도 할머니는 벌써 가게 앞에 앉아 계셨다. 평소라면 가게 한쪽에 고구마 줄기 상자가 수북이 쌓여 있을 텐데, 이날은 이상하게도 보이지 않았다.
궁금한 마음에 여쭤보니 할머니는 웃으며 말씀하셨다.
“어젯밤 늦게까지 껍질을 다 까서 냉장고에 넣어뒀어요.”
할머니의 말 한마디에 고구마 줄기 한 봉지에 담긴 정성이 느껴졌다. 우리가 편하게 집어 드는 손질된 고구마 줄기에는 누군가의 긴 밤과 수고가 숨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오래전 어머니와 함께 마루에 앉아 고구마 줄기 껍질을 벗기던 여름날이 문득 떠올랐다.
손이 크셨던 어머니는 시장에서 고구마 줄기를 한 아름 사 오셨다. 그날이면 우리 집 마루는 고구마 줄기 껍질을 벗기는 작은 작업장으로 변했다. 어머니 곁에 나란히 앉아 껍질을 한 올 한 올 벗기다 보면, 줄기를 꺾을 때마다 ‘똑, 똑’ 하는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손가락에는 끈적한 진액이 엉겨 붙곤 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서툰 손놀림으로 어머니의 손길을 따라 하기 바빴다. 마당에서는 매미가 쉴 새 없이 울어댔고, 열린 창문 사이로 더운 바람이 드나들었다.
손끝과 손톱 밑은 마치 때가 낀 것처럼 시커멓게 변했지만, 그때는 그런 것이 대수롭지 않았다. 어머니와 마주 앉아 말없이 고구마 줄기 껍질을 벗기던 그 마루는, 지금도 여름이 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오붓한 풍경이다.
예전에는 어머니가 기꺼이 내어주셨던 그 손길을 지금은 시장 할머니가 대신해 주신다. 그 따뜻한 수고로움을 떠올리며, 이제는 내가 주방에 선다.
껍질을 벗겨 데친 고구마줄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썬 뒤, 달달 볶다가 멸치를 더해 감칠맛을 입히고, 갖은양념과 함께 은근하게 볶아낸 뒤 마지막으로 들깻가루를 듬뿍 넣어 고소하게 버무려 낸다. 그러면 구수한 향이 피어오르며 온 집안에 여름이 번진다.
# 재료
고구마 줄기 300g, 멸치(머리, 내장 제거 후) 30g, 홍고추 2개, 대파 반 개, 양파(중) 1개, 양념장( 물 100ml, 국간장 2Ts, 멸치액젓 2Ts, 다진마늘 1Ts ), 들깻가루 2Ts, 들기름 1Ts, 통깨 1Ts
# 요리 과정
껍질을 벗긴 고구마 줄기를 깨끗이 씻는다
끓는 물에 소금 1큰술을 넣고 고구마 줄기를 4분간 데친다
데친 고구마줄기를 한 김 식힌 뒤 손으로 물기를 살짝 짜고, 5~6cm 길이로 썬다
양파를 얇게 채 썬다
대파를 잘게 송송 썬다
고추를 길게 썬다
멸치를 마른 팬에 볶아 비린내를 제거한다
볶은 멸치를 준비한다
양념장을 준비한다
들깨가루를 준비한다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고구마 줄기를 볶다가 볶아 둔 멸치를 넣어 함께 볶는다
2~3분간 볶은 뒤 양념장을 넣어 볶다가, 양파·대파·고추를 넣고 골고루 섞는다
뚜껑을 덮고 약불에서 10분간 조린다
불을 끄고 들깻가루와 들기름, 통깨를 넣어 골고루 버무린 뒤 마무리한다
완성한 고구마 줄기 볶음
가까이에서 들여다본 고구마 줄기 볶음
갓 볶아낸 고구마 줄기를 밥상에 올리며 아침 산바카라을 함께했던 아내와 마주 앉아 여름의 맛을 나눈다. 젓가락으로 한입 집어 입에 넣으면 아삭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 먼저 느껴진다. 씹을수록 은은한 단맛이 퍼지고, 멸치의 감칠맛과 마지막에 더한 들깻가루의 구수한 풍미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화려하거나 자극적인 맛은 아니지만 먹을수록 자꾸만 손이 가는 반찬이다. 시원한 물에 밥을 말아 고구마 줄기를 듬뿍 얹어 먹고 있노라면 어린 시절 밥상이 문득 떠오른다.
사람들은 흔히 가을 땅속에서 탐스럽게 여문 고구마를 기다린다. 하지만 그 결실을 튼실하게 키워낸 것은, 한여름 내내 뜨거운 햇볕을 견디며 묵묵히 영양분을 실어 나른 줄기다. 우리의 밥상과 일상 역시 눈에 띄지 않는 누군가의 따뜻한 수고 덕분에 풍성해진다는 사실을, 이 반찬 한 접시가 조용히 일깨워 준다.
그래서 여름이 오면 나는 고구마보다 먼저 고구마 줄기를 찾는다. 그 소박한 반찬 한 그릇에는 어머니의 손길도, 시장 할머니의 정성도, 그리고 내가 지나온 모든 여름이 함께 담겨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