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오면 애호박 감자전을 부칩니다

애호박 감자전

by굳데이


요즘 장마가 이어지고 있다. 창가에 앉아 세차게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도 천천히 흐르는 것 같다. 빗소리가 커질수록 머릿속은 오히려 조용해지고, 내 안의 답답함도 함께 씻겨 내려간다. 나이가 들수록 비 오는 날이 더 좋아진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나는 비를 좋아할 이유보다 두려워할 이유가 더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는 장마철이면 늘 저수지 둑이 무너질까 봐 마음을 졸여야 했다. 큰비가 며칠씩 이어지면 어른들은 둑이 버텨낼지 걱정하며 밤새 살폈고, 동네 사람들은 홍수에 대비해 높은 지대로 피난을 가곤 했다. 어느 한 해는 끝내 저수지 둑이 무너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밀려든 물은 마을을 덮쳤고, 그 홍수로 소중한 친구를 잃는 아픔도 겪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장마는 내게 낭만이 아니라 무섭고 두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런 기억을 품고도 나는 왜 여전히 비를 좋아하는 걸까. 어쩌면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은 '비' 그 자체가 아니라, 지난날의 두려움을 뒤로하고 아무 걱정 없이 빗줄기를 바라볼 수 있게 된 오늘의 평온함인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의 장마는 무섭고 두려웠지만, 어머니가 부쳐 주시던 전 냄새만큼은 그 두려움을 잊게 해 주는 작은 위로였다. 비가 오는 날이면 어머니는 커다란 양푼에 반죽을 넉넉하게 만들어 한참 동안 전을 부치셨다. 기름 위에 반죽이 닿을 때마다 '치익' 하는 소리가 부엌을 채웠고, 노릇하게 익은 전이 대나무 채반 위에 한 장씩 쌓여 갔다. 채반 위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김과 고소한 전 냄새는 지금도 선명하다.


전이 차곡차곡 쌓여 갈수록 우리 4남매의 마음도 바빠졌다. 결국 뜨거운 줄도 모르고 하나씩 집어 들어 호호 불어 먹곤 했다. 우리가 배부르게 먹고도 남을 만큼 넉넉했던 어머니의 전은, 마지막엔 늘 접시에 담겨 이웃집으로 향했다. 그 시절에는 전 한 접시에도 사람 사는 정과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비 오는 날이면 사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내게는 그것이 애호박 감자전이다. 어머니는 부추전도, 김치전도 부치셨지만 장을 보고 오신 날이면 애호박과 햇감자를 꺼내 전을 부치시곤 했다. 특히 장마철이면 그 전이 식탁에 자주 올랐다. 특별한 재료는 아니었지만 제철이라 더욱 달고 고소했던 그 맛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지금도 장맛비가 오래 내리면 괜히 입이 심심해지고, 부엌에서 들리던 어머니의 전 부치는 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냉장고 문을 열어 애호박과 햇감자를 꺼낸다.


창문은 조금 열어 두었다. 빗소리가 부엌까지 깊숙이 들어온다. 애호박과 감자를 일정한 두께로 채를 썬다. 사각사각, 도마에 칼끝이 닿는 경쾌한 소리가 창밖의 빗소리와 기분 좋게 화음을 이룬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칼질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복잡했던 머릿속이 맑아진다.


어머니의 전은 커다란 양푼에 밀가루를 넉넉히 풀어 온 동네 사람들의 배를 불리던 음식이었다. 지금 내가 부치는 전은 밀가루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오붓한 2인분이다. 밀가루는 재료를 살짝 이어 줄 정도만 넣고, 뜨겁게 달군 팬에 반죽을 한 숟가락씩 떠올려 동그랗게 모양을 잡는다. 가장자리가 노릇하게 익어 갈 무렵, 고소한 전 냄새가 부엌 가득 퍼진다.







# 재료


애호박 1개, 감자(중) 2개, 홍고추 2개, 소금 1ts, 감자전분 2Ts, 튀김가루 2Ts



# 요리 과정


애호박, 감자, 홍고추(혹은 청양고추)를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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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호박을 최대한 얇게 썰고, 소금을 뿌려 10분간 절인다 (씨 부분을 제외하고 돌려깎기한 뒤 채 썬다. 채칼을 사용하면 더욱 쉽고 일정한 두께로 썰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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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얇게 썰고, 찬물에 헹궈 전분을 제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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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를 잘게 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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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호박을 절여 둔 볼에 채 썬 감자와 고추를 넣는다. 이때 애호박에서 나온 물은 버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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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분가루와 튀김가루를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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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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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에 식용유를 넉넉히 두르고 앞뒤로 노릇하게 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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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한 애호박 감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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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에서 들여다본 애호박 감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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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부쳐낸 전을 식탁에 올리고 아내와 마주 앉아 나누어 먹는 맛은 그야말로 여름의 백미다. 인위적인 단맛이나 자극적인 양념 없이도, 씹을수록 우러나오는 애호박의 은은한 달큼함과 햇감자의 담백한 고소함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여기에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이 빠질 수 없다. 크게 한 모금 들이켜면 기름진 입안이 개운하게 정리되고, 담백한 채전의 맛도 한층 살아난다. "당신이 부쳐준 전이 제일 맛있어, 바삭해서 자꾸 손이 가네." 바삭한 전을 크게 찢어 입에 넣으며 건네는 아내의 다정한 칭찬 한마디에 요리한 사람의 입가에도 슬며시 미소가 번진다.


창밖에는 여전히 빗소리가 들리고, 나는 오늘도 애호박과 햇감자를 채 썰어 전을 부친다. 팬 위에서 익어가는 전 냄새를 맡고 있으면, 대나무 채반 위에 전을 차곡차곡 올려두시던 어머니의 투박하고 다정했던 손길이 문득 떠오른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