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미애쌤에게 배운 여름 물김치를 다시 담그다
한여름이면 유난히 시원한 음식이 생각난다. 푹푹 찌는 더위에 입맛을 잃었을 때, 차갑게 식힌 물김치 한 그릇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시원한 국물 한 숟가락을 떠먹고 아삭한 채소를 건져 먹다 보면 더위에 지쳤던 입맛도 조금씩 돌아온다. 이번 여름, 우리 집 식탁에는 유난히 오래 기억에 남는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이 반가운 여름 손님은 한 달 전 요리 수업에서 배운 ‘알배추 오이 물김치’다. 그날 정성껏 담아 온 물김치를 실온에서 알맞게 익힌 뒤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었는데, 무더운 날씨와 기막히게 어우러지던 그 맛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시간이 지나도 그 시원함이 잊히지 않아, 결국 레시피를 꺼내 다시 내 손으로 담가 보았다.
창밖으로는 아파트 숲 위로 뜨거운 열기가 내려앉은 푹푹 찌는 오후였다. 부엌에 서서 찬물에 채소를 씻고, 썰다 보니 마음 한구석에 묘한 위로가 느껴졌다. 뜨거운 여름 한가운데서 시원한 물김치를 만드는 일이 내게는 일상 속 작은 피서(避暑)처럼 다가왔다.
이 물김치의 매력은 재료의 쓰임새를 살려내는 섬세한 조리 과정에 있다. 시판 배즙 대신 배를 직접 갈아 넣어 배의 자연스러운 단맛과 향을 살렸고, 풀국은 쌀가루로 묽게 쑤어 물김치 국물에 부드러운 맛을 더했다. 집에서 만들 때는 남은 찬밥을 활용해도 좋다는 강사님의 설명에, 음식 하나도 허투루 버리지 않았던 옛 어머니들의 지혜가 떠오르기도 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홍고추의 두 가지 활용법이었다. 일부는 물에 불려 곱게 갈아 국물에 은은한 붉은빛과 향을 더하고, 나머지는 잘게 썰어 색감과 매콤함을 살렸다. 쓰임에 따라 물김치의 맛과 모습이 달라지는 것이 흥미로웠다. 고춧가루만 썼을 때와는 또 다른 맑은 붉은빛이 물김치를 한층 먹음직스럽게 만들었다.
강사님은 물김치가 어느 정도 익었을 때 나는 특유의 냄새를 직접 맡아보게 하셨다. 처음에는 '익은 물김치에서 이런 냄새가 나는구나' 싶었지만, 강사님은 이 냄새를 꼭 기억해 두라고 하셨다. 그 말씀이 기억나, 내 손으로 직접 담근 물김치를 실온에 반나절 정도 두고 뚜껑을 열자, 새콤하고 톡 쏘는 향이 올라왔다.
‘아, 이 냄새구나.’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레시피에 적힌 시간만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냄새로 음식의 익은 정도를 판단하는 법을 하나 배운 셈이다.
물김치 특유의 향이 올라온 뒤 냉장고로 옮겼다.
# 재료
알배추 2통, 오이 4개, 쪽파 20대, 마늘 10개, 생강은 마늘의 1/2, 홍고추 5개, 알배추 절임물(물 0.5리터, 소금 5작은술), 풀국(쌀가루 5작은술, 소금 3큰술, 물 0.5리터), 국물 양념(알배추 절임물, 고춧가루 5작은술, 홍고추 간 물 150ml, 풀국, 배즙 600ml, 소금 3작은술, 멸치 액젓 5작은술, 물 2.5리터)
# 요리 과정
알배추는 잎을 한 장씩 떼어 깨끗이 씻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알배추는 30분 이상 절이고, 배추에서 나온 절인 물은 버리지 않고 물김치 국물 양념에 함께 사용한다
오이는 깨끗이 씻어 준비한다
오이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물 1.5L에 소금 2큰술을 넣고 끓인 물을 부어 10분간 둔 뒤 물은 따라 버린다
풀국을 한소끔 끓인 뒤, 충분히 식혀 사용한다
배 3개를 준비한다
배는 껍질과 씨를 제거하고 물 100mL와 함께 믹서기에 곱게 간다
체에 걸러 배즙을 준비한다
마른 홍고추는 씨를 제거해 물에 불린 뒤, 불린 홍고추 50g을 불린 물 100mL와 함께 믹서에 곱게 간다
체에 걸러 홍고추 간 물을 준비한다
소금, 멸치 액젓을 준비한다
고춧가루를 준비한다
국물 양념을 만든다. 큰 통에 물과 알배추 절임물, 고춧가루, 홍고추 간 물, 풀국, 배즙, 소금, 멸치액젓을 넣고 고루 섞는다
쪽파는 2cm 길이로 썬다
마늘과 생강은 곱게 채 썬다
고추는 씨를 제거한 뒤 채 썬다
국물 양념에 절인 알배추, 소금물에 절인 오이, 마늘채, 생강채, 홍고추, 쪽파를 넣고 고루 섞은 뒤 기호에 따라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실온에서 반나절 정도 익힌 후 냉장고에서 2일 정도 숙성해 먹는다
가까이에서 들여다본 알배추 오이 물김치
* 쿡미애쌤(前 한살림 요리학교 원장)에게 배운 레시피를 바탕으로 일부 조정해 만들었습니다 https://m.blog.naver.com/kma2432
냉장고에서 차갑게 식은 물김치를 꺼내 국자로 듬뿍 떠 그릇에 담았다. 먼저 맑고 시원한 국물을 한 숟가락 맛보니 깔끔한 여운이 입안을 감돌았다. 알배추는 부드러운 단맛을 품었고, 오이는 특유의 아삭함을 기분 좋게 뽐냈다. 더위에 지쳤던 미각이 단번에 깨어나는 훌륭한 맛이었다.
물김치를 맛본 집사람의 반응도 뜻밖이었다. 평소 내가 만든 음식에 맛있다는 칭찬은 자주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정말 시원하고 맛있네. 내 지인들에게도 조금씩 나눠주고 싶다.”
그러고는 곧장 작은 반찬통 몇 개를 꺼내 냉장고 속 물김치를 정성스럽게 나누어 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니 내가 만든 이 한 그릇이 새삼 특별하고 뿌듯하게 다가왔다. 맛있는 음식은 혼자 먹는 데서 끝나지 않고, 누군가에게 기꺼이 건네고 싶어지는 넉넉한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한 번 배운 레시피가 단순한 기록으로 남지 않고, 어느 순간 우리 집 식탁의 익숙한 요리로 익어가는 과정이 즐겁다. 시간과 온도가 만들어내는 변화를 눈과 코로 살피며 기다림의 미학을 배우고, 그렇게 완성된 음식을 이웃과 나누는 기쁨까지 얻었다.
올여름, 알배추 오이 물김치는 유난히 길고 무더운 날씨를 거뜬히 견디게 해 줄 든든한 동반자가 되었다. 내 손으로 담가 가족과 맛보고 누군가에게 건네고 싶은 이 시원한 한 그릇이 오래도록 우리 집 식탁에 머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