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빵은 왜 미국에서 바빴을까

미국에서는 식탁을 지키고, 한국에서는 식탁을 바꾼다

bySusie 방글이





미국 마트의 빵 코너 앞에 서면 잠시 멈춰 서게 된다. 길게 이어진 선반 위에는 식빵들이 줄지어 서 있다. 하얀 봉지, 갈색 봉지, 초록색 글씨가 적힌 봉지.


Whole Wheat(통밀), Multigrain(잡곡), Sourdough(사워도우), Rye(호밀), Italian(이탈리안), Honey Wheat(허니 위트), Potato Bread(감자 식빵), Sprouted Grain (발아곡물빵), Gluten-Free (글루텐프리), White Bread (화이트 브레드-가장 기본적인 흰 식빵).


비슷하게 생긴 빵들이 저마다 다른 이름표를 달고 있다. 처음에는 종류가 많아서 좋다고 생각했다. 선택지가 많다는 건 좋은 일이라고 믿었다.


하나를 고르려고 하니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봉지를 하나 들었다. 뒤집어 성분표를 봤다. 다시 내려놓았다. 다른 봉지를 집었다. 설탕 함량을 확인하고, 통곡물 비율을 살폈다.


나는 식빵을 고르는 사람이 아니라 식빵들의 자기소개서를 읽고 있는 면접관이 되어 있었다. 문제는 지원자가 너무 많았고, 모두 경력이 너무 화려했다.


'나는 통곡물이 들어 있어요.'

'나는 설탕이 적어요.'

'나는 단백질이 더 많아요.'


각자의 장점을 내세우는 빵들 사이에서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식빵을 사러 왔다가 결정장애를 얻고 간다.


식빵 앞에서만큼은 선택이 능력이 아니었다.


식빵들의 자기소개서가 너무 많았다.


한국에서 식빵을 살 때와는 조금 다른 고민이었다. 한국에서는 갓 나온 식빵인지, 어느 빵집의 식빵인지, 오늘 먹고 싶은 식감이 어떤지에 마음이 먼저 간다.


따뜻한 한 장을 손으로 찢어 먹을지, 바삭하게 구워 버터를 바를지, 잼을 발라 먹을지. 먹는 장면이 먼저 떠오른다.


미국에서 식빵은 특별한 빵이 아니지만 하루 종일 바쁘다.


아침에는 토스트가 되고, 점심에는 샌드위치가 되어 출근과 등교를 따라간다. 아이들 도시락 속 한 끼가 되기도 하고, 저녁 식탁에서는 다른 음식 옆에 조용히 자리를 잡는다. 이 정도면 식빵도 퇴근이 필요하다.


쉬는 시간이 없어 보인다.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식탁 어딘가에 등장한다. 특별한 날 찾아가는 음식보다 늘 집에 있어야 하는 음식에 가깝다.


마트에서 고르는 일도 그래서 조금 다르다. 오늘 당장 먹고 싶은 것을 고른다기보다 앞으로 며칠 동안 여러 역할을 해낼 것을 고른다. 통밀인지, 설탕은 적은 지, 오래 보관할 수 있는지.


한국에서는 조금 다른 얼굴을 가진다. 한국은 밥을 주식으로 먹는 나라다. 식빵이 없어도 한 끼 식사는 완성된다. 그런데 식빵은 사라지지 않는다.


동네 빵집 한쪽에는 늘 놓여 있다. 갓 나온 한 봉지는 아직 따뜻하고, 봉지를 열면 고소한 냄새가 난다.


사람들은 그것을 집어 든다. 집에 가져온 뒤 그냥 먹지만은 않는다.


'이걸로 뭘 해 먹을까?'


한 장은 버터를 발라 토스트가 되고, 두 장은 샌드위치가 된다. 계란을 입히면 프렌치토스트가 되고, 잼을 바르면 간단한 아침이 된다. 냉장고에 남은 재료를 사이에 끼워 넣으면 또 다른 한 끼가 된다.


그냥 먹어도 좋고, 뭘 해 먹어도 좋은 식빵.


미국의 식빵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지런히 제 역할을 수행한다면, 한국의 식빵은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다른 음식으로 변신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우리 집에 어떤 식빵이 필요할까?"를 생각하고, 한국에서는 "이 식빵으로 뭘 해 먹을까?"를 생각한다.


같은 것을 고르는데 시작하는 질문이 다르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익숙한 것을 아무 생각 없이 집는 날이 있고, 한국에서도 성분표를 꼼꼼히 살피며 고르는 사람이 있다.


문화는 늘 그렇게 섞여 있다.


그럼에도 작은 선택 하나에는 두 나라의 식탁이 조금씩 드러난다.


장보기 목록에 올라가는 한 봉지가 있고, 집에 들어오면 그냥 먹어도 좋고 뭘 해 먹어도 좋은 한 봉지가 있다.


같은 식빵이다.


한쪽에서는 하루 종일 바쁘고, 다른 한쪽에서는 집에 와서 변신한다.


비슷하게 생긴 한 봉지가 식탁 위에서는 꽤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미국 마트에서 온 Wheat Bread, 오늘은 이삭토스트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식빵도 하루 종일 제 할 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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