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을 가리지도 않는다
미국 마트에서 치즈 코너를 지나갈 때면 한 번쯤 멈춰 서게 된다. 치즈가 이렇게 많았나 싶다.
Sliced(슬라이스), Shredded(잘게 썬 것), Block(덩어리), String(끈처럼 길게 찢어 먹는 것). Cheddar(체다), Swiss(스위스), Colby Jack(콜비 잭), Pepper Jack(페퍼 잭).
모양도 다르고 이름도 다르다. 치즈 하나 고르는데도 나름의 공부가 필요하다.
그런데 치즈는 종류만 많은 게 아니다. 쓰임새도 참 다양하다. 햄버거에는 한 장이 올라가고, 샌드위치에는 두 장이 끼어든다. 파스타에는 잘게 갈려 들어가고, 타코에는 위에서 솔솔 뿌려진다. 샐러드에도 들어가고, 피자에서는 길게 늘어나며 녹아내린다.
치즈는 참 낯을 가리지 않는다.
미국 음식에 들어가면 미국 음식처럼, 이탈리아 음식에서는 이탈리아 음식처럼, 멕시코 음식에서는 또 그 음식에 맞게 자리를 잡는다. 음식의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
한국에 오면 적응력은 더 놀랍다.
라면 위에 한 장 올라간다. 떡볶이 옆에 붙는다. 김치볶음밥 위에서 녹아내린다. 닭갈비에도 들어가고 계란말이에도 들어간다. 콘을 만나면 콘치즈가 된다.
특히 라면 위에 얌전히 누워 있는 노란 치즈를 보고 있으면 조금 웃기다. 어디에서 태어난 치즈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주 자연스럽게 한국 라면의 일부가 되어 있다.
어쩌면 치즈는 음식계의 현지 적응력이 가장 뛰어난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자세히 보면 치즈가 무조건 자기 모습을 고집하는 것도 아니다. 햄버거에는 체다가 어울리고, 피자에는 모차렐라가 잘 녹는다. 파스타에는 파마산이 제 역할을 한다. 음식에 따라 어울리는 모습이 달라진다.
잘 어울린다는 건 무조건 나를 바꾸는 일이 아닌 모양이다. 내가 가진 여러 모습 중 그곳에 맞는 모습을 꺼내는 일에 가깝다.
치즈는 그걸 참 자연스럽게 한다.
한 장이었다가 잘게 찢어지고, 네모였다가 길게 늘어난다. 차갑게 있던 치즈가 뜨거운 음식을 만나면 녹아서 다른 재료 사이로 스며든다.
그런데도 우리는 안다.
치즈다.
녹아서 섞였는데도 치즈라는 것을 알아본다.
사람도 새로운 곳에 가면 조금씩 달라진다. 낯선 말투를 배우고, 새로운 음식을 먹고, 그곳의 방식을 받아들인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것이 어느 순간 자연스러워진다.
살다 보면 주변의 맛에 맞춰야 할 때가 있다. 때로는 내 모양을 조금 바꿔야 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과 섞여야 한다.
그렇다고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잘 어울린다는 건 나를 없애는 일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 중 그곳에서 어울리는 모습을 찾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치즈처럼.
미국에서는 햄버거와 만나고, 멕시코 음식에서는 타코와 만나고, 이탈리아에서는 피자와 만난다. 한국에 오면 라면과 떡볶이를 만난다.
어느 나라에 가든 "저는 원래 여기서 살았습니다"라는 표정이다. 치즈는 세계화보다 현지화에 더 능한 음식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모습이 조금 부럽다. 잘 녹을 줄 알면서도 없어지지는 않는다. 모양은 달라져도 자기 맛을 완전히 놓지는 않는다.
우리도 늘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어디에 놓이든 어울릴 줄 알고, 필요하면 조금 녹아들 줄 알면서도 끝내 나를 잃지는 않는 것.
치즈는 참 잘 녹는다. 그런데 잘 녹는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녹아도 치즈다.
치즈도 참 여러 모습으로 살아간다. 모양은 달라져도, 어디에 놓이든 자기 맛을 잃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