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고 나의 약점이 하나 더 늘었다

죄바카라감을 지고 퇴근하는 세상 모든 워킹맘에게

by비타민W
예전의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강했다.
지금의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강하다.

워킹맘이 하원을 하러 갔을 때 제일 먼저 보는 것은 아이의 얼굴이 아니다. 신발장이다.


'설마 우리 아이가 마지막은 아니겠지' 하는 조바심에 신발장 구석부터 훑게 된다. 신발장에 우리 아이 신발 딱 한 켤레만 덩그러니 남아 있으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아, 오늘도 마지막이었구나.'


반대로 신발이 두 켤레 남아 있으면 찰나의 안도감이 든다.


'다행이다. 우리 아이만 남은 건 아니네.'


하지만 그 안도감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 남은 신발 한 켤레의 주인이 오늘 '마지막 아이'가 될 테니까. 혼자 덩그러니 부모를 기다릴 저 아이의 외로운 마음은 뒤로한 채, 단지 내 아이가 혼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안도한 나 자신이 너무나 하급 인간처럼 느껴져 또다시 죄바카라감이 밀려온다.


나는 이렇게 별것 아닌 일에도 매일같이 죄바카라감을 적립하는 사람이 되었다.




당돌했던 나

나는 또래 온라인 게임인들보다 조금 더 할 말은 하고 사는 당돌한 스타일이었다. 물론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을 때, 먼저 복직한 동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복직하면 정말 지옥이야. 진짜 각오해야 해."

"나도 남들이 힘들다고 할 때 안 믿었거든? 근데 진짜 힘들더라. 영혼이 털려."


안타깝게도 나는 그 충고들을 코웃음 치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남들 다 하는 일, 내가 못 하겠어?'

나는 경솔했다. 그들의 말이 100% 맞았다.


지옥 같았던 1년

갓 복직하고 지난 1년은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 하루에도 십수 번씩 결심할 정도로 혹독했다. 갓 돌을 넘긴 아이는 기고 걷기 시작하면서, 유행하는 온갖 바이러스를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감기는 늘 함께하는 영혼의 동반자였고, 수족구부터 RSV, 기관지염, 중이염, 노로바이러스, 마이코플라즈마 폐렴까지 세상의 온갖 감염병이 내 아이를 거쳐 가는 것 같았다. 1년 동안 입원도 수차례 했다. 달빛어린이병원으로 달려간 밤도 셀수 없이 많았다.


아이가 두 돌을 넘어가며 면역력도 늘어났고, 점차 잔병치레도 줄어들었다. 돌아봐도 복직 후 1년은 내 영혼을 완전히 갈아 넣은 시간이었다. 갑작스러운 연차와 반차가 잦아졌고, 동료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며 업무 백업을 부탁해야 했다. 연차를 쓸 때마다 윗사람, 동료, 후배들 눈치까지 봐야 했다.


하원이 늦어지면 어린이집 선생님 눈치가 보였고, 칼퇴근을 할 땐 사무실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예전이었으면 해도 100번은 더 했을 말을, 따져도 100번은 더 따졌을 일들을 꾹꾹 삼켰다. 할 말도 못 하고, 참아내고, 내 주관과 날을 억지로 깎아냈다. 육아를 위해 회사에서 잡음을 없애기 위해 애쓸수록 본래의 나는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어린이집에서 엄마도 자란다

하지만 나를 가장 죄인으로 만든 것은 아이였다. 우리 아이는 또래 중 늘 가장 늦게 하원하는 아이였다. 어둑해진 길을 아이 손을 잡고 걸으며 "오늘 재미있었어?" 하고 물으면, 늘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했다.


"응. OO이랑 놀아서 재미있었어."


그리고 이어지는 아이의 한마디.


"근데 OO이 엄마가 와서 먼저 갔어. 혼자 남아서 외로웠어. 엄마, 내일은 달려와야 해."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내가 도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세 살배기 아이가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말할 정도까지 일을 하나.'

수없이 자바카라했다.


유아기 아이들은 새벽에 자다 깨는 일이 흔하다. 밤새 잠을 설쳐 짜증이 머리끝까지 난 아이에게, 엄마는 아침부터 무자비하게 옷을 입힌다. 그러자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며 울며 거실 바닥에서 사지를 비틀기 시작한다.


출근 시간은 1분 1초 다가오는데,

갓 낚아 올린, 파닥거리는 활어처럼 펄쩍펄쩍 뛰는 아이를 둘러업고,

배를 보이며 오열하는 아이를 겨우 어린이집 문 안으로 밀어 넣듯 들여보낸다.


그리고 돌아서서 나오는 길, 나 역시 참았던 눈물이 터진다. 글썽거리는 내 눈을 보신 어린이집 선생님은 애써 미소를 보내신다. 머쓱하게 웃고 돌아섰지만 감정이 가라앉지 않는다. 운전은 해야겠고 눈물은 앞을 가리니, 선크림이 닦이든 말든 거칠게 손으로 눈물을 쓱쓱 닦아내며 회사로 향한다.


얼마 후, 원장 선생님에게 장문의 메시지가 왔다. 아침 소동 이야기를 들었다며, 아이는 금방 울음을 그치고 블록을 쌓으며 잘 놀고 있다는 사진과 함께였다.


"어머니께서 아침에 눈물을 보이셨다고 들었습니다. 발걸음이 많이 무거우실 것 같아 연락드립니다. 이 시기 아이들에게는 지극히 흔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아이는 생각보다 금방 적응하고 잘 놀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운전 조심하시고, 오늘도 업무 잘 마무리하시고 오세요."


그 문자를 읽는데, 또다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린이집은 어린이만 보육하는 곳이 아니었다. 아이를 맡기러 간 곳에서 엄마도 함께 돌봄을 받고 있었다.




엄청 강력하거든요

며칠 뒤, 어린이집 선생님께 하나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ㅇㅇ이는 뭐 제일 좋아?"라고 물으셨다고 한다. 아이는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엄마!"


그러고는 뿌듯한 표정으로 이렇게 덧붙였다고 한다.


“우리 엄마는 엄청 강력하거든요! 근데 엄마는 내가 있어야 강력해져.”


'강력하다'는 공룡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세 살 남자아이에게 들을 수 있는 최고 극찬이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 공룡 체험전에 실감 나는 티라노사우르스 인형의 포효에 놀란 울음을 터뜨린 아이를 달래주며 흘렸던 말이 있었다.


“엄마는 우리 아들이 옆에 있으면 힘이 번쩍 나는 슈퍼 히어로가 돼.

티라노도 스피노도 엄마가 다 이길 수 있어.

티라노가 우리 아들 놀라게 하면 엄마가 코를 때려줄 거야 걱정하지 마”


그 짧은 말을 아이는 마음 깊숙이 간직하고 있었나 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깨달음이 찾아왔다. 그동안 나는 회사에서 아이가 나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갑작스럽게 연차를 쓰게 만들고,

중요한 회의 중에도 자꾸 시계를 보게 만들고,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오면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들고,

하고 싶은 말도 한 번 더 삼키게 만들고,

늘 시간을 계산하며 뛰게 만드는 존재.


그래서 나는 아이를 낳고 예전보다 훨씬 약해지고 취약해진 줄만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운전대를 잡고 출근했고,
사방에서 눈치가 보여도 정신줄을 붙잡고 하루를 버티며,
지독한 죄바카라감을 안고도 다시 아이의 손을 잡고 웃어주었다.

예전의 나라면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을 일들을, 나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매일 견뎌내고 있었다.




약점이 생긴 게 아니라, 지킬 것이 생긴 것이다

생각해 보면 아이를 낳은 뒤 약해졌다고 느낀 건 나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예전의 나는 이렇지 않았는데.'


예전에는 쉽게 거절했던 일을 받아주고, 예전에는 참지 않았을 일을 참고, 예전에는 무서워하지 않았던 것들을 무서워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 약해졌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랬듯.


아이를 낳고 나서 나는 예전의 당돌한 나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사라진 게 아니었다. 내가 강해지는 방식이 달라진 것뿐이었다.


예전의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강했다.

지금의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강하다.

그러니 아이는 내 약점이 아니다.

내가 가장 강력해지는 이유이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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