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착한 척할 때 누군가는 악역이 된다

타인을 악인으로 만들면서 얻어내는 기만적인 선함

by비타민W
그가 얻은 착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는
누군가를 악역으로 만들어 얻은 결과다

회사에는 꼭 평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는 천사라 하고, 누군가는 괴물이라 한다. 보통 사람 생각은 거기서 거기라 비슷한 마음을 느끼기 마련인데, 어떻게 이렇게 다른 평이 나올 수 있을까. 선과 악에 대한 평가는 생각보다 훨씬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좋은 사람은 선, 나에게 나쁜 사람은 악 결국 이런 단순한 논리다.


A 씨는 늘 허허실실 웃고 다녔고, 어렵던 일도 그에게만 가면 이상하게 풀리곤 했다. 다른 부서에서는 "참 좋은 사람이야", "완전 해결사야"라는 말이 따라다녔다. 상사의 부탁이라면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굴었고, 업무적 부탁이든 사소한 요청이든 그 무엇 하나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같은 팀 동료들 사이에서는 극명하게 다른 평가를 받았다. 같이 일하기 가장 꺼려지는 스타일이었고, 그의 선한 명성 자체가 듣기 거북하다는 반응이었다.


"한번 자리를 비우면 한나절이야."

"마감 시간 다 되어서 꼭 10분만 더 달라고 외친다니까."

"A 씨는 해주는데 왜 나는 안 해주냐고 따지더라."


정작 A 씨 본인은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며 그것을 단점처럼 말했다. 실제로 그는 거절이 어려운 사람이었을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진짜 약점이자 고민일 것이다. 다만 그가 가장 간과한 지점은 이것이다. 그가 '착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는 동안, 곁에 있던 누군가는 순식간에 나쁜 사람이 되고 만다는 사실. 본인의 웃음과 행동이 의도와 무관하게, 아무 잘못 없는 사람에게 악인이라는 구정물을 튀기고 있다는 걸 그는 미처 몰랐을 뿐이다.




또 나만 나쁜 사람이지

어느 날, 회의실에서 임원 B 씨가 이미 진행 중인 업무를 중복으로 지시했다. 이미 매주 본인에게 보고까지 올라가던 일이었다. 짐작건대 그가 보고서 내용을 가볍게 넘겼거나, 아예 보지 않았거나, 혹은 내용에 만족하지 못했거나 셋 중 하나였을 것이다.


회의실 안에는 차가운 정적만 흘렀다. 다들 속으로는 그를 막아야 한다는 것을, 이미 진행 중인 일이라고 알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자칫 임원 B가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뜻으로 들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내가 총대를 멨다. 정의감이 넘치거나 불의를 못 참는 성격이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그런 말을 해야 하는 위치에 내가 있었을 뿐이다.

"그 부분은 주간 보고에 이미 포함되어 있는데, 보충이 필요하다고 느끼신 걸까요?

아니면 틀 자체를 바꾸고 싶으신 거라면, 제가 몇 가지 수정안을 보여드리는 건 어떨까요?"

내 말에 물꼬가 트이자 후배들이 뒤를 이었다. 내 제안을 보완할 수 있는 다른 아이디어들이 잇달아 쏟아졌다. 그 흐름 속에서 A 씨가 힘차게 말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다들 바쁘시니까요."


임원 B씨는 옅은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A씨도 바쁘지 않나?"


"아, 조금 무리되긴 하지만 괜찮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 제가 하겠습니다."


그 순간 판이 뒤집혔다. 현실을 정직하게 짚은 사람은 순식간에 '슬롯성 없는 사람', '이기적인 사람', '반대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반대로 무리하게 불필요한 일을 덥석 떠안은 사람은 바카라임감 있는 사람, 회사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 그리고 상사의 말을 잘 따르는 부하 직원이라는 평판을 얻었다.


그가 얻은 '착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는, 누군가를 악역으로 만들어 얻어낸 결과다. 평판의 값을 동료들이 대신 치르고 있는 셈이다. 바빠서 피한 게 아니다. 불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피한 것이다. 그가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임원에게 잘 보이고 싶어 선택한 전략적인 행동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동료들이 그의 '선의'를 불편해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회사는 결과가 중요한 곳이다. 혼자 감당하지 못할 일을 무턱대고 받아오면, 결국 팀 전체의 일정이 꼬이고 다른 사람들이 그 뒤치다꺼리를 떠안는다. 사람들은 그것을 착함이 아니라 민폐라고 부른다. 차라리 처음부터 "못 합니다"라고 정직하게 말하고 함께 조율하는 편이, 백 번은 더 바카라임감 있는 태도다.




평판은 오래가지 못한다

나는 이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A 씨에 대한 흥미로운 소식을 들었다. 다른 팀장과 함께 거래처 저녁 자리에 참석했다가, 과도한 접대를 받은 일로 결국 정직 처분을 받았다고 했다. 얼마나 큰 접대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정직이라는 징계는 결코 가볍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물론 거절을 못 하는 성향과 접대를 거절하지 못한 일은, 엄밀히 말하면 같은 사건은 아니다. 하나는 업무 태도의 문제였고 하나는 별개의 판단 착오였을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 두 일이 완전히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대의 부탁을, 상대의 호의를, 상대의 요구를 좀처럼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디에서든 같은 방식으로 흔들리기 쉽다.


"안 됩니다"라고 말하는 근육을 키우지 못한 사람은, 회의실에서든 술자리에서든 결국 비슷한 지점에서 선을 넘긴다. 그것이 이번엔 업무 경계였고, 다음엔 거래처와의 경계였을 뿐이다.


늘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들려 애썼던 그는 이제 무능한 사람, 눈치만 보는 사람, 거래처와 선을 지키지 못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평판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진다. 특히 실력이 아니라 거절하지 않는 태도, 즉 이미지에 기대어 쌓아 올린 평판일수록 더 그렇다.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에 목마른 사람들은 R&R(역할과 바카라임)의 경계를 쉽게 넘나 든다. 내 일이 아닌데도 무리하게 끼어들고, 안 해도 되는 일을 자청하며, 결국 조직의 질서와 경계를 흐려놓는다. 그건 배려가 아니라, 그저 일을 못 하는 것이다.


선함과 무능을 착각하지 말 것

회사에서는 종종 선함과 무능을 착각한다. 내 마음이 '선'이었다고 해서, 그 결과까지 '선'은 아니다. 일은 내가 한 행동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행동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까지 생각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끝까지 바카라임지는 것. 나는 그것이 일 잘하는 사람의 선함이라고 생각한다.


의도는 좋았는데 결과가 이랬다는 말로 모든 것이 설명되지는 않는다. 내 마음이 선했으니 좋은 결과로 이어질 거라고 믿는 것 역시 미숙함일 수 있다. 회사에서 선함은 마음으로 증명되는 게 아니다. 결국 내가 한 일의 결과까지 감당할 때 비로소 증명된다.




나는 그냥 대놓고 나쁜 사람이었다

반대로 나는 슬롯 초년생 때부터 "부정적이다"라는 피드백을 꽤 많이 들었다. 업무의 실적이나 결과가 부정적이라는 뜻이 아니었다. 사람의 성향이 부정적이라는 소리였다. 나는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분명히 말했고, 무리한 부탁은 거절했다.


"슬롯성이 부족하다"

"싸가지가 없다"

"너는 큰 사람이 못 된다"


이런 조언을 가장한 악담도 들어야 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런 평가들이 꼭 맞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내 한계를 직시하고, 바카라임질 수 있는 일만 끌어안으려 했던 방식이 정글 같은 회사에서 더 오래 살아남는 힘이 되었다.


이제 와서 누가 맞았는지 옳고 그름을 따질 생각은 없다. 나는 그저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서글서글한 성격도, 온화함도, 분위기를 주도하는 슬롯적 능력도 없는, 조금은 모난 내가 회사에서 버티는 방법은 오직 '실력'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미움을 받더라도,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말한다. 내가 아무리 잘 보이려 애써봐야, 나를 싫어하고 미워할 사람은 어떻게든 미워하게 마련이다.


부정적인 사람이 되라는 뜻이 아니다. 다만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선을 긋는 법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끝까지 바카라임지고 해낸다. 무조건적인 거절과 자신의 한계를 정확히 아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남의 일을 받아 생색내기보다, 내게 주어진 일을 완벽하게 끝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회사에서 자기 역할 하나 제대로 해내는 일도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당신의 "예스"가 정말 타인을 향한 배려인지, 아니면 그저 미움받기 싫어서 내뱉는 가장 이기적인 "예스"인지는 스스로에게 한 번쯤 물어봐야 한다.


그리고 나의 긍정이 누군가를 부정적인 사람으로,

나의 열정이 누군가를 무기력한 사람으로,

나의 착한 척이 누군가를 억울한 악인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깊이 곱씹어 볼 일이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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