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을 못하는 사람을 위한, 온라인 게임과 인간관계에서 선 긋는 법
사람은 허용된 경계를 기억한다.
그래서 선은 한 번 흐려지기 시작하면 계속 뒤로 밀린다.
어릴 적 운동장에서 가장 많이 했던 운동은 피구였다. 피구를 하다 보면 꼭 한 번씩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치게 되는 순간이 생겼다.
"너 금 밟았어!"
공에 맞았는지 아닌지는 금방 가려진다. 하지만 선을 밟았는지는 이상하게 쉽게 끝나지 않는다. 모두가 심판이라도 된 듯 바닥을 내려다보며 "분명 밟았어", "안 밟았거든"을 반복한다. 선을 넘었다는 걸 인정하면 게임이 계속되지만, 안 넘었다고 우기기 시작하면 경기는 멈춘다.
발끝으로 그어놓은 그 흐릿한 선 하나가 친구들을 편으로 갈라놓고, 하루 종일 서로 눈을 흘기게 만들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의 그 싸움은 귀여웠다. 다음 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어울려 놀았으니까.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니, 운동장 바닥보다 훨씬 피곤한 선이 생겨났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이다.
각양각색의 선
사람들이 품고 있는 선의 모양과 굵기가 모두 같았다면 조금은 덜 복잡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굵은 실선을 갖고 있어서, 자신의 영역이 침범당하면 즉시 티가 난다. 반면 누군가의 선은 구불구불하고, 또 누군가의 선은 점선이다. 그들은 누군가가 선을 넘어와도 티가 잘 나지 않거나, 유연하게 넘겨버리곤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경계를 침해당하고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굵은 실선을 가진 사람이었다. '여기가 저 사람의 선이구나, 여기는 넘으면 안 되겠구나.' 스스로 경계를 뚜렷하게 알아차리는 편이었고, 덕분에 인간관계에서 오는 상처도 비교적 덜 받았다.
온라인 게임에는 유난히 이 선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사람들이 있다. 사생활에 관심이 많은 개인정보 침해형, 일하러 왔는데 인생을 지도하려는 컨설턴트형, 대화 몇 번에 절친이라도 된 듯 예외를 요구하는 '한 번만' 부탁형까지.
"살 좀 빼야겠네."
"결혼은 언제 할 거야?"
"애는 안 낳을 거야?"
본인은 다정함이나 관심이라 말하지만, 상대에게는 허락 없이 영역을 침범당한 불편함일 뿐이다.
뾰족하게, 그러나 정확하게
나는 늘 같은 원칙으로 응수했다. 일종의 '미러링'이었다. 뾰족하게 물으면 뾰족하게, 능구렁이처럼 물으면 능구렁이처럼, 생각 없이 물으면 똑같이 생각 없는 사람처럼 되돌려주었다. 내가 먼저 날을 세운 적은 없었다. 그저 상대가 들고 온 무례함의 온도를 그대로 되비춰줬을 뿐이다.
"결혼은 언제 할 거야?"라는 질문에 누군가는 진땀을 흘리며 "때가 되면요..." 하고 얼버무리지만,
나는 이렇게 답하고 자리를 떴다.
"다음 주 수요일 오후 2시요."
"애는 안 가질 거야? 나이 들어서 기르려니 힘들더라구."라는 질문에는 이렇게 건넸다.
"제가 좋은 소식 있으면 제일 먼저 알려드릴 테니까, 그때까지는 먼저 안 물어보셔도 돼요."
"다이어트 그만해. 여자는 자고로 적당이 살집이 있어야 매력 있어."라는 말에는
"차장님 그만 늙으시면, 저도 다이어트 그만하겠습니다."
그래서인지 내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에서 선을 긋지 못해 곤란을 겪는 사람들은 늘 있었고, 때로 그런 나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사실 나라고 매번 속 시원하게 사이다를 날린 건 아니다. 입안에서 몇 번이나 말을 씹다 뱉었고, 주먹을 불끈 쥐고 삼킨 말도 많다. 하지만 내 경계를 지키지 않으면 결국 내가 무너진다는 걸 알기에 낸 최소한의 용기였다.
이번 한 번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어느 날, 동료 A가 한숨을 쉬며 내게 메시지 창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모진 소리를 잘 못하는 착한 사람이었다. 그 성향을 파악한 몇몇 사람들은 친분을 앞세워 규정에 없는 예외를 부탁하곤 했다. 심지어 그런 부탁이 잘 통한다는 사실이 공유되기라도 한 듯, 그녀를 찾아와 곤란하게 만드는 일은 갈수록 늘어났다.
"이번 한 번만."
"우리 사이에 그 정도는 괜찮잖아."
하지만 '이번 한 번'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한 번 허용된 선은 다음부터 새로운 기준이 되어 버린다. '이 정도는 넘어가도 되는구나.' 사람은 허용된 경계를 학습한다. 그래서 선은 한 번 흐려지기 시작하면 계속 뒤로 밀리게 된다.
'지금 말하면 분위기 이상해 지지 않을까?'
'괜히 예민한 사람으로 보이면 어쩌지?'
하지만 이상한 쪽은 선을 지키려는 사람이 아니라, 선을 넘어온 사람이다. 가해자는 당당하고 피해자만 안절부절못하는 상황이 정상일 리 없다.
"어떻게 하면 기분 나쁘지 않게 '좋게' 거절할 수 있을까?"
A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좋게 거절하려 애쓰지 마. 그냥 명확하게 거절해."
좋게 들을 사람은 담백하게 말해도 이해하고, 기분 나쁘게 들을 사람은 네가 아무리 정성껏 포장해도 기분 나빠한다. 그러니 굳이 상대의 기분까지 바카라임지면서 거절할 필요는 없다.
거절은 관계를 깨뜨리는 망치가 아니라, 그 관계를 오래 유지하기 위한 안전펜스다. 담장이 있다고 이웃과 싸우는 것이 아닌 것처럼.
선을 지키는 사람과, 선을 넘는 사람
스포츠에서 선이 사라지면 경기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사람 사이도 다르지 않다. 선을 지켜주는 사람과는 오래 함께할 수 있지만, 계속해서 선을 넘는 사람과는 결국 거리를 두게 된다.
우리가 신이 아닌 이상 타인의 보이지 않는 경계를 단 한 번도 침범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나 역시 누군가의 선을 모르고 밟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건 선을 넘지 않는 완벽함이 아니라, 누군가 내 선을 알려주었을 때 멈출 줄 아는 태도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불편해졌을 때는 '내 선은 여기까지'라는 사실을 맑고 명확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선을 긋는 행동은 이기적인 것도, 악한 것도 아니다. 대단한 싸움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거절을 잘하는 사람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설명을 덜 하는 사람이다. “안 됩니다”가 너무 어렵다면 “이번에는 어렵습니다”부터 시작해도 된다.
“그건 제 업무 범위를 벗어납니다.”
“그렇게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 부분은 말씀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대신 맡지 않겠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꼭 차갑고 단호할 필요도 없다. 담백하게 말하되, 상대가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되겠는데?'라고 생각할 여지만 남기지 않으면 된다. 거절은 사과가 아니라 의사표현이다.
"죄송한데 이번에는 어려울 것 같아요."
"미안한데 제가 그건 못 할 것 같아요."
마치 상대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 것이 내가 사과해야 할 일인 것처럼 느껴지는 말들이다. 사과는 여지를 남긴다. 성공적인 거절은 논리적인 말, 무서운 표정 이런 것들이 아니라, 협상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안 되는 것에 대해 상대가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아서 제출할 필요는 없다.
거절은 설득이 아니라 통보다.
상대가 내 거절을 좋아해야 거절이 성공한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내 의사가 제대로 전달되는 것이다. 어릴 때는 선을 밟으면 게임이 끝났다. 어른이 되어서는 선을 계속 넘으면 관계가 끝난다. 다만 그때와 지금의 다른 점이 있다면, 어릴 적엔 누군가 대신 "너 금 밟았어!"라고 소리쳐 주었지만 지금은 그 말을 내 목소리로 직접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부분은 제가 좀 불편하네요."
"거기까지는 말씀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담백한 한마디면 된다. 상대를 제압하는 현란한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니다. 그저 내 울타리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이다.
사람은 허용된 경계를 기억한다.
그러니 내가 어디까지 허용할 사람인지를, 내가 먼저 알려줘야 한다.
어른이 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까다로운 규칙이 아니라 서로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거리를 가늠하는 일, 그리고 그 거리를 지켜달라고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