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퇴사하면 후련할 줄 알았습니까?

퇴사하면 행복할 줄 알았던 사람의 진짜 이야기

by비타민W
애벌레는 번데기가 되는 순간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된다

퇴사를 하고 가장 먼저 체감한 것은 건강보험 자격이 종료됐다는 문자였다.

그 메시지를 받고 나니 마음이 이상했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회사를 떠났는데도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시원하면서도 섭섭했다. 마치 소라게가 껍데기를 잃은 기분이었다.


나에게 껍데기는 무거웠고, 답답했고, 때로는 나를 숨 막히게 했다. 그런데 막상 사라지고 나니 그 껍데기가 나를 비바람으로부터 지켜주던 방패이기도 했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회사라는 곳은 누군가에게는 목표이고,

누군가에게는 안식처이고,

누군가에게는 지옥이고,

누군가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다.


하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 안에 있는 동안만큼은 회사가 나를 어느 정도 대신 설명해 준다는 것.




이유 모를 초조함

퇴사 후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1달쯤 지나자 초조함이 밀려왔다. 1주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달력은 한 달을 넘겨 있었다. 내 시계만 고장 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매일 출근하던 사람이 갑자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를 보내는 일은 생각보다 낯설었다. 더 이상 낯선 사람에게 "저는 누구입니다"라고 소개할 일도 없는데, 누군가를 만나 인사하는 것조차 어색했다.


'내가 생각보다 직업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인간이었나?'


나는 안타깝게도 일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16년 넘게 회사를 다녔지만 단 하루도 일이 좋아서 출근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회사가 사라지자 이상하게 나라는 사람까지 흐릿해지는 것 같았다.




손바닥만 한 종이 한 장

어린이집에서 갑자기 전화가 왔다. 선생님이 지금 통화할 수 있냐는 뜻으로 물으셨다.


"어머니, 지금 일하시는 중이세요?"


분명 말씀의 의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순간 말이 막혔다. 왜 대답이 막혔던 걸까.

퇴사하고 한 달쯤 됐을 때, 이전 온라인 게임 동료에게도 전화가 왔다.


"요즘 뭐 하고 지내?"


나는 또 순간 말이 막혔다.


"나 뭐… 그냥… 똑같지 뭐. 청소하고… 놀지."


그때는 내가 회사라는 타이틀을 잃어서 불안한가 보다 생각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설명이 너무 간단했다. 명함 한 장이면 충분했다. 고작 손바닥만 한 종이 한 장이 나를 대신 설명해 주었다.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다. 명함은 나를 대표하는 종이가 아니었다. 내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말해주는 종이일 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나'보다 '회사에 다니는 나'를 더 믿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 말문 막힘의 정체는 정말 회사라는 타이틀을 잃은 데서 온 것이었을까.



숫자가 알려준 것

내 복잡한 마음의 정체를 알게 해 준 것은 뜻밖에도 숫자였다. 매달 당연하게 들어오던 월급이 멈추자 숫자는 천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천만 원 단위였던 잔고가 어느새 백만 원 단위로 바뀌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제야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잃은 건 명함만이 아니었다. 그 명함 뒤에는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던 월급이 있었다. 그리고 너무 당연해서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안정감도 함께 있었다. 처음에는 명함을 잃은 게 아쉬운 줄 알았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명함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나는 어쩌면 회사가 내게 만들어주던 '괜찮은 삶'의 감각을 그리워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스무 살이 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그 이후로 한 번도 쉰 적이 없었다. 일을 하면 월급이 들어왔다. 오랫동안 반복되던 그 흐름이 어느 날 뚝 끊겼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불안했던 것은 일을 하지 않아서만도, 회사라는 이름을 잃어서만도 아니었다. 오랫동안 익숙했던 일상이 한꺼번에 사라진 것이었다. 새로운 '나'를 꿈꾸며 회사를 떠났는데, 막상 나오니 안정되어 있던 과거의 '나'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친언니에게 이 불안함을 털어놓았다.

"불안은 당연해. 돈을 벌던 사람은 오래 쉬는 걸 못 견뎌.

그런데 오래 일했던 사람은 돈 버는 관성이 있대.

가만히 있지 않고 어떻게든 돈 벌 궁리를 하게 된다더라."


그 말을 듣고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내가 그렇게 복잡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거창한 자존감이나 성취감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오랫동안 일해 온 사람이었고, 갑자기 그 일상이 사라진 게 불안했던 것이다. 그러니 퇴사를 선택한 과거의 나를 후회하고 곱씹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하루를 불안해하지 않아도 됐던 그 당연한 일상. 그것에 대한 향수였을 것이다.


감옥이자 실험실이었던 곳

회사가 내게 아무 의미도 없는 곳이었던 것은 아니다. 지긋지긋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장 많이 성장한 곳도 회사였다. 회사라는 집단 안에서 겪고 만났던 경험들 속에서, 마흔을 눈앞에 둔 시점에야 나는 조금씩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선배는 글을 정말 재미있게 쓰시네요."

"대화를 하다 보면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져서 가벼워져요."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던 말들이 돌아보니 내 안의 원석을 조금씩 세공해주고 있었다. 회사는 답답한 감옥 같기도 했지만, 동시에 가장 거대한 실험실이었다. 나는 그 안에서 수없이 실패했고, 고민했고, 버텼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른 채 방향을 못 잡고 빙글빙글 돌고 있었을 것이다.




껍데기는 제 역할을 다했다

회사는 나를 완성한 곳은 아니지만, 나를 발견하게 해 준 곳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퇴사를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퇴사는 껍데기를 버리는 일이 아니었다. 껍데기가 제 역할을 다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회사를 나오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말한다. 드라마 미생에서 "회사 안이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회사 안은 슬롯보다 안전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회사 안에서 '나'를 보지 못했다. 아마도 나는 자연의 섭리처럼 변화를 해야만 하는 시기를 맞은 것이다.


나비도 애벌레였다. 애벌레는 번데기가 되는 순간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된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몸 전체가 분해됐다가 재구성되는 인고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견디고 허물을 벗어내는 순간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게 된다.


나는 지금 그 번데기 안에 있는 것 같다. 회사라는 껍데기를 벗고 나니 당장 갈 곳도, 해야 할 일도, 나를 설명해 줄 명함도 없다. 그래서 무방비 상태가 된 것처럼 불안하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다시 안전한 껍데기를 찾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까지의 나를 그대로 가지고 새로운 삶으로 옮겨가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결정하고 다시 만들어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번데기 속에서 애벌레의 몸이 액체처럼 녹아내리는 순간에도, 끝까지 파괴되지 않고 성충의 날개와 다리가 될 씨앗 세포는 남아있다고 한다. 나에게도 그런 게 있을 것이다. 명함은 사라졌지만, 그 명함 아래에서 16년을 버텨온 시간과 태도까지 사라진 건 아닐 테니까.


그러니 지금의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괜찮다. 겉으로는 멈춰 있는 것 같지만, 안에서는 계속 달라지고 있을 테니까.


아직 나는 나비가 아니다.
무엇이 될지도 모르지만, 분명 다른 내가 될 것이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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