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를 보다 보면 왜 자꾸 초라해질까

나는 타인의 하이라이트와 내 비하인드를 비교했다

by비타민W
우리가 보는 것은 하이라이트다.
그리고 우리가 견디는 것은 비하인드다.

나는 원래 남을 부러워하는 사람이 아니다. 물욕도 크지 않고, 야망이 강하지도 않다. 다만 남들이 종종 "독하다"라고 말하는 성향은 있다. 나는 여행에서 돌아온 날 아무리 피곤해도 짐 정리와 빨래까지 끝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내 안의 독함은 남의 것을 탐하거나 더 가지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욕망과는 조금 다르다. 그저 시작한 일은 끝을 봐야 마음이 놓이는 성격에 가깝다. 그래서 질투나 부러움 같은 감정도 늘 내 마음 한구석에 작은 모양으로만 자리 잡고 있었다.


적어도 다른 사람으로 인해 쉽게 흔들리고 스스로를 갉아먹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에 균열이 생긴 건, 예고 없이 찾아온 '비교'라는 불청객 때문이었다.




등원 전쟁이 끝나고 난 후

오늘도 나는 훈련 교관처럼 외쳤다.

"내려와!"
"이리 와!"
"뛰지 마!"
"안 돼!"

졸린 아이 입에 주먹밥을 밀어 넣고, 옷을 입히고, 머리를 정리하고, 로션과 선크림을 발라 등원 준비를 한다. 잠에 취한 아이가 미적거리면 마음이 급해져 번쩍 들쳐 업고 달린다.


반면에 내 모습은 오늘도 어제와 비슷하다. 어두운 컬러의 주머니 달린 바지나 치마. 머리는 질끈 묶은 채 선크림만 겨우 발랐다. 색조라고는 혈색이 없어 립스틱만 급하게 바르고 오늘도 어제처럼 달리고 있다. 한바탕 전쟁이 끝나고 거울을 보니 추노가 따로 없다.


오늘 아이 아침밥은 챙겨줬는데, 나는 물 한 모금이라도 마셨나? 싶은 생각이 들면 급하게 아메리카노를 수혈한다. 혈중 카페인 농도가 올라가니 그제야 뇌가 출근을 한다. 아이 등원을 마치니 한바탕 에너지를 쏟아부은 직후라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 진다. 그래서 차라리 뇌가 바보가 되는 길을 택하며 SNS를 켰다.


휴대전화 화면 너머 다른 엄마들을 보니 초라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가녀린 손목과 손가락에는 명품 주얼리가 반짝이고, 목소리는 나처럼 카랑카랑하지 않고 어찌나 조곤조곤 상냥한지. 새벽 5시에 일어나 미라클 모닝을 하고, 아침으로 스무디를 갈아 마신 뒤 출근을 한단다. 외제차 핸들 로고가 은근히 노출되는 그녀의 출근길은 내 삶과 완벽한 보색을 띠고 있었다.


멍하니 화면을 보다가 꺼진 액정에 비친 내 얼굴과 마주했다.

푸석한 얼굴과 헝클어진 머리.

방금 전까지 완벽한 하루를 사는 것 같던 사람들을 보다가 나를 보니 초라함이 밀려왔다. 비교는 순식간에 자바카라으로 번졌다.


'아이에게 나는 예쁜 엄마도 아닌 것 같고,

저 사람만큼 돈을 벌지도 못하는 것 같고,

오늘도 결국 소리를 질렀네.

건강식은커녕 혈당 오르는 주먹밥만 먹였으니 난 정말 빵점이야.'


그리고 '오늘부터는 진짜 잘해봐야지.' 하고 결심하지만, 매일 결심하고 매일 실패하는 제자리걸음의 연속.


여전히 피곤했고,

여전히 커피를 마셨고,

여전히 완벽하지 못했다.




SNS는 확대 렌즈였다

평소처럼 아이에게 바카라을 읽어주던 어느 날이었다.

아이가 들고 온 것은 '개미'에 관한 자연 관찰 바카라이었다. 베짱이의 친구이자, 스케치북에 점 세 개면 표현되는 작고 하찮은 곤충. 그런데 바카라장을 넘기다 손바닥만 한 크기로 확대된 개미의 고해상도 얼굴 사진을 마주하곤 순간, 나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개미의 얼굴을 손바닥만 한 크기로 본 적이 있는가? 기괴하게 툭 튀어나온 겹눈과 무언가를 잘게 부수기 위해 날카롭게 돋아난 거친 턱. 소름이 돋았다. 굳이 개미의 얼굴을 이토록 생생한 ‘4K 고화질’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까? 멀리서 보면 그저 작은 개미일 뿐인데. 알지 않아도 될 디테일까지 확인하고 나니 불쾌감만 남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SNS는 타인의 삶을 확대하는 렌즈라는 것을.

원래라면 멀리서 작은 점처럼 보였을 장면들이 화면 안에서는 지나치게 커다랗고 선명해진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선명한 조각들을 오래 들여다본다. 어느새 그 장면들을 기준 삼아 타인의 삶을 상상하고 재단한다.

끝내 그 위에 내 삶을 대어 본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나는 누군가의 하이라이트를 확대해 놓고, 내 비하인드 전체와 비교하고 있었다.

나를 괴롭힌 것은 타인의 삶이 아니었다. 비교하는 방식이었다.




누구나 편집되지 않는 하루를 산다

나는 이제 타인의 삶을 통해 나를 비교하는 일은 그만두기로 했다. 내가 완벽하다고 믿었던 화면 속 그녀도 분명 편집되지 않은 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화를 내는 날도 있을 것이고,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날도 있을 것이고, 이불속에서 스스로를 미워하는 밤도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 장면을 보지 못할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완벽하지 못한 나 자신을 먼저 용서하기로 했다. 상처 입은 마음에 자바카라이라는 소금을 뿌리는 대신, "그럴 수도 있지, 등원 전쟁 치르느라 고생했다"는 다정한 연고를 발라주는 것이다.


혹시 오늘도 타인의 삶과 자신을 비교하며 마음 한구석이 아픈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우리가 보는 것은 대부분 하이라이트다. 그리고 우리가 견디는 것은 대부분 비하인드다.

그러니 누군가의 가장 반짝이는 순간과 나의 가장 초라한 순간을 나란히 세워두고 인생 전체를 평가하지는 말자.


인생은 원래 풍경화에 가깝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점과 얼룩뿐이다. 하지만 한 걸음 물러서면 비로소 그림이 된다.

그리고 멀리서 보면, 우리 모두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그림을 살아내고 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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