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싸'가 아니라 '독립군'으로 살기

내 시간의 주권을 찾는 독립군

by비타민W
내 시간, 내 마음대로 쓰는데 눈치 볼 일인가

신입 사원이던 시절, 나는 '집단생활'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나를 맞춰야만 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팀원 모두가 함께 점심을 먹으러 나갔고, 메뉴 선정은 늘 팀리더의 취향과 오늘의 컨디션에 따라 결정되었다.

처음에는 그 생활이 몹시 불편했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어느덧 나도 그 풍경에 익숙해져 갔다.


점심 메뉴로 팔팔 끓는 순댓국이 걸린 날이면 반 공기도 못 먹고 쩔쩔매던 내가, 이제는 앞접시에 순대를 미리 덜어 식혀두며 동료들의 속도를 맞춰 한 공기를 거뜬히 비울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불편함이 일상이 되고, 내가 알던 나 자신이 아닌 것 같다는 이질감마저 무뎌질 때쯤, 나는 비로소 그들 속에 완전히 녹아들었다.


나만 슬롯 부적응자인 걸까? '함께'라는 이름의 질식사

이 생태계에는 나보다 훨씬 최적화된 능력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업무 외적으로도 회사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다. 상위 직급자들과의 대화에서도 서글서글했으며 지위고하와 연령, 성별을 불문하고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그저 집 밖에 나와 있다는 것만으로, 내 공간이 아닌 곳에서 타인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는 단체 생활이 숨 막히는 나와 달리 그들은 진심으로 즐거워 보였다. 속내까진 몰라도, 적어도 나처럼 어색해하거나 고통받는 기색은 없었다. 나는 사내 동호회 근처에도 안 갔지만, 다른 사람들은 여기저기 잘도 섞여 들었다. 일이야 어떻게든 해내겠는데, 이 '회사 생활'이라는 특유의 집단주의는 내게 업무보다 몇 배는 더 고난도 미션이었다.


입사하고 3분기쯤 지났을까, 조직 개편이라는 풍랑이 불어닥쳤다. 부서가 통합되면서 덩치는 커졌지만, 떼로 몰려가 식사하는 문화는 여전했다. 단 한 사람, A 선배만 제외하고 말이다.




회사에서 '아싸'를 자처한 선배의 비밀

사실 나는 그녀를 내심 동경해 왔다. 그녀에게는 늘 고급스러운 향기가 났고, 어린 나이에 내가 선망하던 수입차를 몰았으며, 유창한 외국어 능력까지 갖춘 멋진 선배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점심 식사나 회식 자리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 덕에 회사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녀를 둘러싼 온갖 무성한 추측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나는 호기심 반, 동경 반으로 그녀를 지켜봤다.


그녀는 나보다 세 살 많고, 입사도 2년 빠른 선배였다. 모두가 당연하게 식당으로 향할 때 그녀는 홀로 사무실에 남았다. 어느 날, 호기심을 참지 못한 나는 속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고 사무실에 남아 그녀의 점심시간을 관찰하기로 했다.


정적만 흐르는 사무실, 그녀는 익숙하게 서랍에서 토스트기를 꺼냈다. 나는 내 눈을 다시 확인했다. 사무용품이 있어야 할 자리에 가전이 나오는 것은 내게 생경한 장면이었다.


'지금… 바카라상 서랍에서 토스트기가 나온 거야?

저 달그락거리는 소리… 지금 커피 드리퍼와 커틀러리를 바카라상 서랍에서 꺼내는 거야??'


베이글이 구워지는 고소한 냄새가 퍼졌고, 그녀는 커피를 내려 태연하게 자기 자리에 앉았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질문을 쏟아냈다. 왜 혼자 먹는지, 맨날 빵만 먹는지, 그리고 대체 어떻게 그 강력한 집단주의 앞에서 눈 하나 깜짝 안 하는지!

그날 그녀와의 대화는 나의 회사 생활에 거대한 균열을 냈다.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싱그럽게 웃으며 답했다.


"내 시간, 내 마음대로 쓰는데 눈치 볼 일인가"


그저 불편한 상황과 억지 식사 자리를 피하고 싶었을 뿐이라는 담백한 고백. 본인이 빠짐으로써 뒷말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는 그것을 '나와는 상관없는 소음' 정도로 가볍게 넘기고 있었다. 그 의연하고도 단단한 모습이 눈부시게 멋있었다.


물론 스트레스가 전혀 없진 않았겠지만, 그녀에게는 그 모든 시선을 감수할 만큼의 '자신감'이 있었다. 그녀는 모두와 잘 지내려 애쓰는 에너지를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실력'을 만드는 데 투자하고 있었다. 자리에서 식사를 하며 보고 있던 것 역시 단순한 딴짓이 아니라 주식 차트였다. 역시 멋짐은 자본에서 나오는 법인가.




무리 부적응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독립군' 체질이었습니다

그녀와의 대화 이후, 나도 점심시간의 주도권을 가져오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그녀처럼 당당하진 못했기에, 이제 막 독립운동에 참여한 나는 비겁하게도 '다이어트'라는 핑계로 삼아 단체 식사를 피했다. 슬롯 초년생인 내가 감히 그래도 되는 줄 그때는 정말 몰랐다.


확보한 시간에는 운동을 하거나 영어 수업을 들으며 내가 원하는 대로 썼다. 요즘도 취업이 어렵다 하지만, 내가 회사 생활을 시작할 때도 취업문은 좁기만 했다. 이력서를 최소 100통은 썼고, 그렇게 어렵게 들어온 회사였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 적응해야 한다는 욕심. 그것이 내 본성을 억누르고 있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점심시간의 주도권을 되찾자 업무 효율은 더 높아졌다. 숨이 막히는 회사 생활 속에서 점심시간이라는 작은 '쉼표' 하나가 내 삶에 엄청난 생기를 불어넣어 준 것이다.


점심시간의 평화조약

17년이 지난 요즘은 점심시간이 예전처럼 무조건적인 업무의 연장선이 아닌 곳이 많다. 어쩌면 그 시절 작은 반란을 시작했던 이들이 이제는 관리자가 되어 자유로운 문화를 퍼뜨린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10년 뒤에는 또 어떨까? 더 뿔뿔이 흩어져 각자 즐길까, 아니면 다시 모이게 될까? 어느 쪽이든 나는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온라인 게임인은 안정적인 수입을 위해 내 시간을 파는 사람들이다. 회사에 저당 잡힌 시간은 내 것이 아니지만, 하루 중 유일하게 온전히 내 소유라 할 수 있는 시간은 점심시간뿐이다. 그러니 그 귀한 시간을 어떻게 쓸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무리에 섞이고 싶으면 섞이는 거고, 홀로 운동을 하고 싶으면 하는 거다. 핵심은 내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에 내 마음대로 내 시간을 쓰는 것이다.


오로지 나를 위해 1시간을 사수하는 일. 눈치 볼 일인가.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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