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바카라임지지 않는 어른들에 대하여
설명은 사라지고 눈물만 남았다
나는 회사라는 공적인 공간에서 눈물 흘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나 같은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 어떻게 하면 회사에서 눈물을 참을 수 있냐고 내게 진지하게 물어온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A에게 눈물은 참아야 할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기이자 습관이었다.
온라인 게임 생활을 하다 보면 자리에 묵묵히 앉아 일하기보다, 사람들과 대화하거나 모임에서 자주 눈에 띄는 온라인 게임인이 있다. 처음엔 A도 그냥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업무적으로 엮이고 나서야 알았다. 그 편견은 편견이 아니라 직감이었고, 멀어져야 한다는 건 본능이었다.
압력밥솥의 꼭지가 열린 날
내가 대리였던 시절, A가 기안한 협의 결재 문서가 올라왔다. 결재 문서엔 지정된 양식이 있고, 내가 검토할 부분은 명확했다. 하지만 A는 그 명확한 부분을 모호하게 기재했고, 결국 내 선에서 반려를 받았다. 다른 층에 근무하는 그녀에게 메신저로 상황을 설명했으나 잘 이해하지 못했는지, 결국 그녀가 내 자리로 찾아왔다.
그녀는 나보다 입사는 빨랐지만 경력직인 나에 비해 직급도 낮고 나이도 어렸다. 한데, 그녀는 분명히 존댓말을 쓰고 있었는데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일반적인 사무직 사원의 화법이라기보다, 학교 조별 과제나 아르바이트 장소에서 만난 사람 같았다. 가장 불편했던 건 모호한 말끝이었다. 마치 친척이나 친구에게 하듯, 존댓말 속에 반말이 묘하게 섞여 있었다.
"아~~ 이렇게?"
"아~~ 응 응. 그럼 이거는?"
모호한 어미 처리가 인내심이라는 내 압력밥솥에 치키치키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응 응" 하는 그 추임새가 압력밥솥의 꼭지를 완전히 열어버렸다. 언짢아진 나는 차가운 눈으로 말했다.
"하…… A 씨, 그 '응응' 하는 추임새 좀 어떻게 안 될까요? 말의 흐름이 끊어지는데요.
그리고 은근히 반말하는 것 같은데 왜 말이 짧죠? 나 A 씨 부하직원 아니에요."
"아…… 죄송합니다."
어색한 A의 표정과 함께 대화는 끝났다. 그리고 얼마 후, 사내 메신저에 불이 났다. 그녀와 같은 층에서 일하는 동료들이었다. 내 말에 수치심을 느낀 그녀가 울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황당함에 당장 올라가 더 곡소리 나게 해줘야 하나 싶었지만, 나는 엉덩이를 떼지 않았다.
나는 직급이 올라갈수록 악역은 따라오는 법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층으로 움직이기 귀찮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가 가서 진화될 일이 아니었다. 내가 등장하는 순간 이 화제는 더 뜨거운 감자가 될 것이고, 이는 회사 안 수많은 이야기꾼에게 삶의 활력을 제공할 뿐이었다.
타인에게 그런 즐거움을 주지 않겠다는 내 모난 성격이, 역설적이게도 나를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반존대 미러링
반나절쯤 지났을까, A의 팀장이 나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그녀는 왜 A가 울 정도로 질바카라했냐며 다짜고짜 비난을 쏟아냈다. 나의 행동이 어른답지 못했으며, 동료로서 자격이 없다는 식의 훈계가 이어졌다. 그녀가 면담을 요청한 순간부터 예상했던 시나리오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상황에 나는 전투 의욕을 잃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A를 그대로 따라 했다.
"응 응."
"근데 A가 제일 중요한 수치를 빼먹었는데??"
팀장의 눈빛에 황당함과 분노가 차오르는 게 보였다.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내가 물었다.
"팀장님, 제 말투 불편하세요? 제가 A 씨에게 지적한 부분이 바로 이겁니다. 대화 중간에 '응, 응' 하고 추임새를 넣거나 어미 처리를 흐리면서 반존대를 쓰더군요. 저 그 친구와 그 정도로 친한 사이 아닙니다. A 씨가 제게 한 행동을 그대로 보여드린 건데, 제 기준에는 꽤 무례하게 느껴졌거든요. 팀장님 보시기에는 어떠신가요?"
순간 팀장의 말문이 막혔다. 나는 차분한 톤을 유지하며 쐐기를 박았다.
"팀원이 울면서 자리로 오니 깜짝 놀라 달려오신 심정은 이해합니다. 저라도 속에 천불이 났을 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오늘 팀장님이 저를 찾아와 화내신 일에 대해 저희 부장님께 따로 말씀드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제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철없는 아이의 억지 울음 때문에 괜한 집안싸움 날까 봐요.
제 말 무슨 뜻인지 충분히 이해하셨을 것 같아요"
팀장은 팀원의 눈물만 보고 오해했다며 짧게 사과했다. 그리고 오늘 일로 미운털을 박아 더 밉게 보지는 말아 줬으면 좋겠다는 멋쩍은 부탁을 남겼다. 나의 속을 달래줄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얹어서.
반복되는 생존 전략
며칠 후, 사무실에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니 친구니??"
적적한 근무 시간, 아주 흥미로운 대사에 나는 벌떡 일어나 사건 현장이 어디인지 두리번거렸다. 옆 부서 과장님이 요목조목 따지는 소리였다. 그 앞에는 얼굴이 붉어진 채 서 있는 A가 있었다. 이미 한 차례 겪어본 나로서는 포스터만 봐도 줄거리가 보이는 영화 같은 장면이었다. A는 또 공과 사의 경계를 찾지 못해 과장님께 반존대를 시전 했고, 한계점을 넘은 과장님은 그 예의 없는 행동에 폭격을 날려버린 것이다. 나와 대할 때와 달리 A는 추임새 하나 없이 손을 공손히 모은 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메신저가 왔다. 같은 층 동료였다.
A가 또 울고 있다고.
이해하려 노력한 시간 1분
A는 뭐가 그렇게 슬펐을까. 일 못 한다는 게 들켜서 자존심이 상한 걸까 아니면 정말 억울했던 걸까. 나는 잠시 그녀를 이해해보려 했다. 하지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A는 단순히 울기만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게 지적받은 직후 그녀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 일을 알렸다. 그 결과 나는 순식간에 사람을 울린 악인이 되어 있었다.
내가 무엇을 지적했는지,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설명은 사라지고 눈물만 남았다.
그리고 비슷한 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같은 이유로 지적을 받았고, 또 울었으며, 결말도 같았다. 누군가는 그녀를 달랬고, 누군가는 그녀 편을 들었다. 그 장면이 반복될수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녀에게 눈물이란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생존 수단이 아닐까.
어릴 때부터 눈물을 보이면 혼나는 대신 보호받고, 바카라임을 묻는 대신 위로받고, 설명하는 대신 누군가가 자신의 편이 되어주던 경험. 그 경험이 반복되면 눈물은 감정 표현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 된다. 문제는 그 전략이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작동할 때다.
누구나 울고 싶을 때가 있다.
아이는 울 수 있다. 억울하면 울고, 무서우면 울고, 창피하면 울 수 있다. 하지만 자라면서 우리는 그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배운다. 울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설명하고, 사과하고, 바카라임지는 법을 익힌다.
A의 문제는 울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 눈물이 언제나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고 상대방을 가해자로 만드는 방향으로만 흘러갔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이해하는 것을 멈췄다. 이해와 면죄부는 다른 이야기니까.
누구는 화가 나서 울고, 누구는 슬퍼서 울고, 누구는 창피해서 운다. 그리고 누구는 눈물 대신 다른 것을 흘린다. 짜증을 흘리고, 냉소를 흘리고, 분노를 흘려보내 타인을 감정 쓰레기 통으로 삼는다. 형태만 다를 뿐, 감정을 타인에게 떠넘기는 방식은 우리 주변에 생각보다 흔하다.
우리 모두는 어른의 가면을 쓴 채 살아가는 아이들 인지도 모른다. 몸은 자랐지만 감정은 아직 미숙한 부분이 남아 있는 존재들. 하지만 아이와 어른을 가르는 경계가 하나 있다면, 자신의 감정에 바카라임을 지느냐 아니냐일 것이다.
울 수 있다. 화낼 수도 있다. 실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을 무기 삼아 타인을 악인으로 만들고, 바카라임져야 할 문제를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바꾸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감정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조종이고, 회피이며, 때로는 가장 비겁한 공격이다.
나이가 든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 아이로 남는다. 어른의 가면을 쓴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