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는 이유

모난 사람의 가장 우아한 복수

by비타민W
이것은 우아한 사적 복수다.

유명인도, 대단한 권력가도 아닌 그저 ‘무명(Nobody)’인 내가 나의 이야기를 쓴다. 나는 몽글몽글하고 따뜻한 글을 쓰는 재주는 없다. 객관안을 장착하고 보기에 ‘말랑말랑한 위로’나 ‘다정한 토닥임’ 은 내 체질이 아니다. 내 목소리와 손끝은 본래 차갑고 날카롭다. 하지만 마음이 열기로 들끓는 사람에게는 시원한 냉기를, 체기가 가득한 사람에게는 막힌 속을 뚫어주는 바늘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글을 쓰는 본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박제’ 하기 위해서다. 나를 분노케 했던 인간들, 내가 혐오했던 이들, 내 영혼에 생채기를 낸 자들을 글이라는 감옥에 가두어 영원히 박제하려 한다. 물리적인 폭력을 휘두를 배짱도, 경제적인 철퇴를 가할 권력도 없는 내게 남겨진 유일한 무기는 '글'이라는 칼이다. 가장 우아하면서도 가장 모난 복수의 수단.


물론 이 복수의 화살은 타인만을 향하지 않는다. 내 안의 옹졸하고 못난 모습들—불효녀의 죄바카라감, 부족한 엄마라는 자바카라,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자아까지 모두 박제의 대상이다. 그 부끄러운 과거들 역시 내 영혼을 갉아먹은 가해자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심장을 얼린 따돌림

나는 종종 슬롯적이지 못한, 차가운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다. 내 마음의 온도가 영하로 뚝 떨어졌던 지점을 정확히 기억한다. 초등학교 4학년, 영문도 모른 채 시작된 왕따. 어른보다 순수한 얼굴을 한 아이들은 때로 어른보다 훨씬 더 창의적인 방식으로 잔인해지곤 했다. 그전까지 나는 늘 반장, 부반장을 도맡으며 친구들의 팔짱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던 아이였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친구들은 내 심장에 고드름을 박기 시작했다. 입을 떼면 비아냥거렸고, 새 옷을 입으면 수군댔다. 훗날 알게 된 이유는 허망하게도 ‘질투’였다. 학교에서 인기 있던 소년과 웃으며 대화했다는 이유로 나는 ‘꼬리 치는 아이’가 되었고, 그 폭력을 주도한 건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날 이후, 주목받기 좋아하던 아이는 죽었다. 운동장에서 춤을 추던 아이는 필요하지도 않던 안경 뒤로 자신을 숨겼고, 무채색 옷을 입으며 스스로 ‘무명’이 되기를 자처했다. 주목이 곧 고통이었던 시절의 관성은 흉터처럼 남았다.


기억하지 못하는 가해자들

고등학교 3학년, 나를 가스라이팅하며 내 성격마저 바꿔놓았던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리 집 앞을 지날 때마다 내 생각이 났다며, 왜 멀어졌는지 본인은 도무지 모르겠다는 외계어를 해댔다. 결국 말미에 가서야 질투 때문이었다고 실토했다. 그리고 덧붙인 결정타 한 마디. 본인은 교대에 합격해 곧 '선생님'이 된다고 했다.

웃음이 났다. 누군가의 영혼을 얼려버린 가해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타인을 가르치는 스승이 된다.


피해자만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가해자 또한 어른이 된다. 다만 그들은 자신이 파괴한 영혼의 잔해를 기억하지 못한 채로 성장할 뿐이다. 슬롯라는 정글에 발을 들여보니, 어린 시절의 괴롭힘은 차라리 순수한 축에 속했다. '어려서 그랬다'는 비겁한 변명조차 허락되지 않는 성인의 세계에는, 타인의 감정을 교묘하게 포식하고 영혼을 난도질하는 악인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그들은 아이들보다 더 교묘하고, 더 세련되었으며, 더 당당하게 타인을 무너뜨렸다. 나이를 먹는다고 반드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그저 세월의 무게만큼 더 거대하고 노련해진 가해자가 될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냥 흘려보내라고.” 하지만 그건 성인군자나 가능한 영역이다. 뒷목이 뜨거워지는 분노 앞에서 내가 선택한 방식은 용서가 아닌 ‘기록’이었다.


글을 쓰자 신기하게도 화가 가라앉았다. 누군가를 문장 속에 가두어 박제할 수 있다는 그 사소하고도 발칙한 복수심이 오히려 나를 평온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분노의 색깔이 검붉은 색에서 노란색으로 옅어질 때쯤, 글은 예상치 못한 방향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타인이 아닌, 나를 향해서.


차갑고 각지게 굳은 건 어릴 적 상처 때문이었지만, 그 돌덩이가 자그마한 빛을 낼 수 있었던 건 모난 채로도 함부로 깎아내지 않고 기다려준 인연들 덕분이었다. 복수하려고 펜을 들었는데, 쓰다 보니 내가 보였다. 당황스러웠지만 나쁘지 않았다.


이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이 글은 그 과정의 기록이다. 내 모남을 전시하고, 그것이 빛날 수 있었던 세공의 과정을 한 뼘의 유머와 이해의 시선으로 채워가는 이야기. 아울러 무리 생활을 하지 못하는 호랑이 같은 인간이 어떻게 16년이라는 세월 동안 조직 속에서 나를 잃지 않았는지, 그 버티는 법을 몰라 방황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분노한 사람이 쓰면 너무 뜨겁고, 정제된 사람이 쓰면 너무 차갑다. 나는 그 중간 온도의 글을 쓰고 싶었다. 불같은 온도에서도 살아남아 뜨거운 마음속에서도 뿌리내릴 수 있는 글.


이것은 나의 사적인 복수극. 그리고 그 끝에서 마침내 마주하게 될, 모나지만 빛나는 법에 관한 이야기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