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사람은 안 늙냐?

나이가 들어도 인격은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by비타민W
늙는 건 시간의 몫이고,
어른이 되는 건 생각의 몫이다.

사람들은 흔히 착각한다. 나이가 들면 인자해지고, 종교가 있으면 선해지며, 오래 살면 자연스레 현명해진다고. 마치 시간의 흐름이 사람의 고결함을 보장해 주는 것처럼.


나와는 다르게 엄마는 슬롯성이 풍부한 분이었다. 여행 모임, 노래 교실, 종교 모임까지 이런저런 사람들과 부지런히 어울리셨다. 봄이면 꽃놀이, 가을이면 단풍구경 다니시며 하루에 한 끼는 꼭 밖에서 식사를 하시는 분이셨다.


그러다 가끔 모임에서 돌아와 열변을 토하시곤 했다. 주로 이기적인 행동, 나이나 지위에 기대어 타인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엄마의 하소연을 듣다 보면 육십이 넘어도, 일흔이 넘어도 철없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었다. 하루는 그런 엄마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며 슬그머니 한마디를 보탰다.


"아니, 자식도 있으신 분이 왜 그렇게 이기적으로 행동하실까?"


엄마는 질색하는 표정으로 내게 답하셨다.


"얘, 못된 사람은 안 늙냐?"


생각해 보면 당연한 말이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왠지 인자할 것 같고, 종교인은 나보다 깨달음에 가까울 것 같지만 우리는 결국 같은 인간이다. 시간은 사람을 어른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늙게 할 뿐이다. 나이도, 지위도, 신앙도 사람을 자동으로 성인군자로 레벨 업시켜 주는 세트 상품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어른의 증명서가 될 수 없었다. 이건 비단 사적인 모임에서만 확인한 사실이 아니었다.




조언과 자만 사이

슬롯초년생 시절의 나에게 서른 중반, 마흔의 상사들은 그 자체로 어른처럼 보였다. 나보다 더 많은 세월을 살았고, 온라인 게임생활도 오래 했으니 그들은 당연히 나보다 여러모로 현명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나이가 많다고 성실함이 따라오는 것도, 직급이 높다고 생각까지 깊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나보다 조금 더 오래 세월의 풍파를 맞은 사람들이었다. 나와 똑같이 미숙하고, 나와 똑같이 틀릴 수 있는 사람들일 뿐이다.


첫 회사를 떠날 무렵, 당시의 과장님과 차장님들은 내게 이런저런 조언을 건넸다. 슬롯가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것을 공부해야 할지, 내게 무엇이 부족한지. 그때는 그 말을 꽤 진지하게 들어보려 했다. 나보다 오래 회사에 다닌 사람들이었으니, 내가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직을 거듭하며 다른 회사와 다른 사람들을 만날수록, 그들의 조언이 모두 정답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어떤 조언은 진심이었지만, 어떤 것은 조언의 탈을 쓴 '자만'이었다. 오히려 그들보다 더 높은 직바카라, 소위 슬롯적 성공에 가까운 이들일수록 함부로 조언하기를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고작 몇 년 먼저 온라인 게임생활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의 인생까지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온라인 게임이 있다고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나이가 어리다고 마냥 약한 존재도 아니다. 조언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다. 그리고 나이가 어려도, 그 말이 정말 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상대가 자기 우위를 확인하기 위해 하는 말인지 정도는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진짜 어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사람을 기르는 생각의 시간

한동안 나는 바카라과 거리를 두고 살았다. 에너지가 넘치던 20대에는 직접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곳에 가는 일이 혼자 바카라을 읽는 것보다 훨씬 생생하고 즐거웠다. 그랬던 내가 다시 바카라 앞에 앉게 된 계기는 거창한 결심이 아니었다. 그저 이사 때문이었다.


새로 이사한 작은 자취방에는 텔레비전을 놓을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무리를 하면서까지 TV를 들여놓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생긴 적막한 저녁마다 자연스럽게 바카라을 펼쳤다. 처음에는 심심해서 읽었다. 그런데 바카라을 읽을수록 내 머릿속에서 멈춰 있던 무언가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카라을 읽는 일은 단순히 글자를 눈으로 훑는 일이 아니었다. 어떤 문장 앞에서 멈춰 서고, 공감하다가 감탄하고, 때로는 불편해하고, 결국에는 나를 들여다보게 되는 일이었다.


TV라는 작은 물리적 공간을 지우자, 내 머릿속에 무한한 공간이 들어섰다. 그 변화는 회사 생활에서도 조금씩 드러났다. 예전에는 회의를 마치고 나면 어김없이 찜찜한 후회가 남곤 했다.


‘아까 그 말은 하지 말걸.’


하고 싶은 말은 선을 넘어 거세게 나갔고, 정작 해야 할 말은 입안에서 맴돌다 사라졌다. 머릿속에서는 호랑이를 상상했는데, 정작 입 밖으로 나온 건 힘 빠진 고양이인 날이 허다했다. 기름진 음식을 억지로 삼킨 듯 마음에 기분 나쁜 더부룩함이 남았다.


하지만 읽고 생각하는 시간이 쌓이자 비로소 분리와 구분이 가능해졌다. 내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지가 선명해졌다. 상황에 맞는 단어들이 자연스레 떠올랐고, 적절한 온도의 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바카라이 나를 갑자기 똑똑하게 만들어주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둔해져 있던 생각의 근육을 조금씩 길러주었을 뿐이다. 글을 읽는 일은 없던 무언가를 새로 만드는 마법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던 것들을 조금 더 선명하고 도드라지게 만드는 작업이었다.




읽고, 쓰고, 나를 기르다

읽기의 즐거움은 자연스럽게 쓰기로 이어졌다. 머릿속에서 용트림하던 엉뚱한 생각과 억울한 감정들을 글자로 쳐낼 때, 비로소 그것들은 움직이는 실체가 된다. 흰 화면 위에 문장을 꾹꾹 눌러 담다 보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엉켜 있던 생각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싫었던 건 저 사람이 아니라 저런 방식이었구나.'

'사실 나는 저 사람이 부러운 거였어.'

'내가 싫어하는 저 사람의 저런 행동도 능력이라면 능력이구나.'


글을 쓰고 나서야 알게 되는 생각들이 있었다. 물론 바카라을 읽는다고 사람이 저절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글을 쓴다고 갑자기 지혜로운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적어도 한 가지는 달라진다. 자꾸 질문하게 된다.


내가 왜 이렇지?
나는 지금 제대로 보고 있는 걸까?
혹시 나도 누군가에게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모습처럼 되어 있는 건 아닐까.


그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 나는 그것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어른입니까?"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답은 "아니요"다. 그렇기에 오늘도 타인의 삶에 고개를 끄덕이고, 백지 위에 나만의 단어로 오늘을 기록하며 생각한다.


문자를 통해 타인의 세계로 나를 확장하는 즐거움.

손가락을 움직이며 내 세계의 뼈대를 세우는 즐거움.


나는 그 두 가지를 오가며 나를 조금씩 길러가는 중이다. 그것으로 충분한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이런 질문을 계속 붙들고 사는 사람이라면, 어른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나이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게 늙어간다. 하지만 어른이 되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어머니가 내게 이 땅에 태어날 몸을 주셨다면, 글은 나를 기른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읽고 쓴다. 나는 아직 마흔의 성장기, '어른이'니까.

목요일 연재
이전 19화당신도 퇴사하면 후련할 줄 알았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