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게임 내 괴롭힘과 인간관계 스트레스에서 나를 지키는 법
가해자가 처벌받아도
피해자는 좀처럼 통쾌하지 않다
어느 날,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요즘 아이들의 왕따에 대해 듣게 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와는 괴롭힘의 방식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예전에는 때리거나 욕을 하는 직관적인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뒤에서 은근히 일어나는 일이 많다고 했다. 그러니 부모가 알아채기 어려운 방식으로 아이가 고통받는 것이다. 단체 채팅방에서 특정 아이만 빼거나, SNS 사진에 태그 하지 않는 사소한 행동부터 시작해, 모두가 볼 수 있는 공간에 은근한 조롱글을 올린다.
아이들의 온라인 세계를 부모가 모두 알 수도 없고, 사춘기 아이의 복잡한 속내를 들여다보는 건 더 어렵다. 그런데 문득, 이게 어릴 때만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친구 A가 생각났다. 온라인 게임 내 괴롭힘으로 오랜 시간 고통받았지만, 끝내 자신만의 평화를 찾은 친구다.
나이가 들면 현명함과 배려심이 패시브 스킬처럼 자동으로 장착되면 얼마나 좋을까. 어릴 때는 몰라서 남을 괴롭히고, 나이가 들면 알게 되어 그러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따돌림은 어린아이의 전유물이 아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온라인 게임에서도,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 사이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
투명 인간
친구 A는 대우가 더 좋은 곳으로 이직했다. 누군가 갑자기 부서를 옮기며 생긴 공석이었다. A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공석이 생긴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A의 자리는 전임자가 팀원들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도망치듯 떠난 곳이었다.
A가 이직한 기업은 업계 상위권 급여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처우가 좋은 만큼 사람들의 재직 기간도 길었고, 조직 문화는 폐쇄적이었다. 오래 함께한 이들에게 당연한 방식은 새 사람에게는 낯설고, 그 낯섦은 때때로 '우리'와 '남'을 나누는 기준이 된다.
A도 처음부터 거리를 둔 것은 아니었다. 적응해 보려고 먼저 다가가 인사하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들의 벽은 생각보다 단단했고, 돌아오는 건 냉랭한 침묵뿐이었다. 인사를 받고도 모른 척 지나치는 건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
업무 정보는 그들만의 단체 대화방에서만 공유되었고, 모두가 꺼리는 까다롭고 힘든 일만 A의 바카라상 위에 쌓였다. A에게 업무 폭탄이 떨어져 과부하가 걸려도 누구 하나 손을 보태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바카라임질 일이 생기면 신기하게도 모두가 A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실패의 흔적이 남을 때, 그곳에 A의 그림자라도 살짝 스쳤다면 그건 어김없이 A의 몫이자 A의 죄가 되었다.
A에게 가장 힘들었던 걸 묻자 '투명인간 취급'이라 답했다. 말을 걸어도 대꾸가 없고, 외근을 나갈 땐 A만 빼고 먼저 나갔다. 한 번이면 우연, 두 번이면 기분 탓이라 넘겼겠지만, 반복되는 배제 속에 결국 알게 된다.
"나를 빼고 있구나."
그리고 A를 가장 무기력하게 만든 건, 그 모든 배제를 알면서도 방관하고 묵인한 팀장의 태도였다. 조직의 수장마저 눈을 감았을 때, 간당간당하게 붙어 있던 낡은 동아줄마저 끊어졌다.
황금 막내?? 아니, 박쥐
시간이 흘러 신입 후임이 들어왔을 때, A는 마음 한구석으로 조용히 기대했다. ‘최소한 이 사람만큼은 내 편이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가느다란 기대감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막내는 눈치가 지독하게 빠르고 영악했다. 업무 적응보다 부서 내 정치적 공기를 읽는 게 먼저였다. 조직 안에서 누가 힘을 쥐고 있는지, 누구의 그늘 아래 들어가는 것이 안전한지, 그리고 A가 어떤 고립된 위치에 있는지를 너무나 빠르게 파악해 버렸다.
어떤 이들은 이를 영리한 '슬롯생활'이라 부르겠지만, 사실 그것은 잔혹하고 교묘한 생존 본능에 가까웠다. 한 사람을 낙인찍고 배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사람들은 자신이 다음 타깃이 되지 않기 위해 침묵하거나 오히려 가해에 적극적으로 동조한다. 타인의 고통보다 나의 안전이 우선시 되는 순간, 다수의 방관은 또 다른 가해의 얼굴을 한다. 새로 온 막내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이쪽에 붙어 위로하는 척, 저쪽에 붙어 호응하는 척. 막내는 A에게 들은 속마음에 조미료와 살을 붙여 저쪽에 헐값으로 넘겼다. 그렇게 교묘하게 소문을 부풀리며 판을 흔들더니, 이내 가장 먼저 앞장서서 A를 괴롭히는 편에 섰다. 전형적인 박쥐의 모습이었다. 옳고 그름에 대한 감각보다 자신의 입지와 생존이 먼저였던 것이다. 그렇게 조직 안의 인간들은 옳고 그름을 잊은 채 다 함께 미쳐갔다.
모두가 알게 된 따돌림
그럼에도 A는 버텼다. 가해자들은 A가 조용히 참자 자신들이 우위에 섰다고 착각하는 듯했다. 그들은 A를 과소평가했다. 그녀는 슬롯생활에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었다. 그들이 두려워서 참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 한 팀이 되고 싶어서 인내한 것뿐이었다.
A는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며, 변호사와 지난 동료들의 조언에 따라 가해의 흔적들을 하나씩, 차곡차곡 수집하기 시작했다. 견뎌내는 시간이 아니라, 훗날을 도모하며 기록을 쌓아가는 날들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마지노선이 무너져 내린 날, A는 온라인 게임 내 괴롭힘으로 그들을 공식 신고했다.
그동안 묵묵히 참아내던 A의 반격에, 단단해 보였던 가해자들의 치졸한 행동들은 숨길 여지없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매일같이 타인을 깎아내리며 군림하던 그들의 모습은 한순간에 수많은 동료들의 입방아에 올라 가십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사람이 바뀌어도 같은 문제가 반복된 자리였다. 문제는 A의 성격도, 슬롯성도 아니었다. 이미 만들어져 있던 조직의 썩은 구조였다. 한두 사람의 배제가 침묵을 만나 팀 전체의 공기가 되고, 팀장의 묵인 아래 조직의 문화가 되어버린 결과였다.
결국 가담자들은 징계를 받거나 회사를 떠났다. 훗날 그들이 이직할 때 레퍼런스 체크가 들어왔고, 온라인 게임 내 괴롭힘 기록은 발목을 잡았다. 그럼에도 그 무리는 여전히 인생이 꼬인 이유를 A의 탓으로 돌리며 욕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A는 조금 허탈했다. 남을 괴롭히고도 스스로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이들에게 반성 따위를 기대한 것부터가 허상이었는지 모른다.
피해자는 좀처럼 통쾌하지 않다
A가 응징을 이뤄낼 수 있었던 건 기록의 힘 덕분이었다. 인사를 안 받는 것, 정보를 안 주는 것, 외근을 따로 나가는 것. 하나씩 떼어놓으면 사소해 보이지만, 수개월간 축적된 불이익의 패턴은 거대한 폭력이 된다. 의료기록도 사내 메신저도 음성 녹음도 이메일도 모두 쉽게 모을 수 있는 증거들이다. 어려운 것은 인내심과 끈기였다.
"언젠가 이거 터트린다"
이런 작은 복수심은 그 시간을 버티는 유일한 동력이었다. 증거가 쌓일수록 통장에 목돈이 들어찬 듯 든든했고, 폭죽을 터뜨릴 그날을 상상하며 하루를 더 견뎠다. 하지만 인과응보를 이뤄냈다고 해서 A가 후련해진 것은 아니었다. 상처가 아물어도 기억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고통의 기억은 무뎌진 칼날 같다. 잘 베어지지도 않으면서 마음을 지저분하게 헤쳐놓는다. 그래서 피해자는 사건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그 시간을 다시 살아낸다.
'왜 나였을까.'
'그때 그 말을 하지 않았다면,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어땠을까.'
이미 끝난 일을 다시 꺼내고, 다른 선택을 상상하며 자신을 자바카라한다. 피해자가 가장 오래 싸우는 상대는, 사건이 끝난 후에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그 시간이다.
악함에는 이해를 찾을 필요가 없다
어릴 땐 왕따가 학교에만 있는 줄 알았다. 어른이 되어보니 온라인 게임에서도, 심지어 요양원 어르신들 사이에서도 똑같이 일어났다. 아이들이 단톡방에서 사람을 빼듯, 어른들은 회식과 정보와 관계에서 사람을 뺀다. 방법만 달라졌을 뿐 본질은 같다.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는 건 아니었다.
왜 그런 사람이 되었는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까지 이해해 줄 필요는 없다. 이유가 변명이 될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 지금 그런 일을 겪고 있다면 슬퍼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힘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일어나 증거를 기록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끝날 것 같지 않던 터널도 결국 끝이 난다. 그리고 끝난 뒤에는 그들에게서 빠져나와야 한다. 계속 곱씹으며 그 가해자들을 내 마음속에 살게 할 필요는 없다.
A도 이제는 그때의 사람들을 매일 떠올리지 않는다. 완전히 잊은 건 아니지만, 그들이 자신의 하루를 차지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상처를 없애는 게 아니라, 그 상처가 내 인생에 영향을 주지 못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마침표다.
곱씹지 말고 풀어주고, 상처를 덮을 나만의 마음 메이크업을 배울 시간이다. 컴퓨터 파일명에 '최종', '최최종'을 붙여가며 괴로운 기억을 수정하려 애쓰지 말고, 백지로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상처를 가리는 진짜 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가해자에게 묻고 싶다.
그 배제와 침묵, 그 모든 따돌림이... 정말 당신의 인생에 도움이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