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며 콜라를 건네는 법

“진상 승객 많지 않았어?”

byGiagraphy
2부. 중동에서 승무원을 했다고?


“진상 승객 많지 않았어?”

승무원이었다고 하면 꼭 한 번은 듣는 질문이다.


비행 1년 차, 아직 신입 냄새가 폴폴 나던 시절, 방글라데시 다카 비행에 배정이 되었다. 브리핑에서 사무장은 ‘하지’ 시즌이니 특별히 신경 쓰라고 했다.

하지(Hajj). 무슬림이라면 평생 한 번은 다녀와야 하는 메카 성지순례다.

‘순례 가시는 분들을 더 잘 챙겨드리라는 뜻인가?’


보딩이 시작되고, 느릿느릿 몸을 움직이는 어르신들의 행렬을 보자마자 그 말을 이해해버렸다. 평생에 한 번. 그 한 번을 위해 평생 돈을 모아온 사람들. 이 비행이 그들 생애 첫 비행이자 유일한 경험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보딩부터 좌석 번호는 깡그리 무시하고 아무 데나 삼삼오오 앉은 승객들을 체크하며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특히 내 구역에 앉은 할머니 승객들은 영어도 통하지 않았다. 자리도 자리지만, 내겐 그들의 안전을 지켜줄 의무가 있다. 하지만 나의 승객들은 ‘벨트’라는 것을 오늘 처음 본 것 같다…

아, 이를 어쩐다…


고민하던 찰나, 안전 시범 때 쓰는 세이프티 데모킷이 생각이 났다.

“자 봐봐요, 여기 불이 들어오면 이렇게. 꺼지면 이렇게. 오케이?”

어차피 영어가 안 통하는데 말이 무슨 소용이랴. 한국어와 손짓, 발짓, 그리고 데모킷의 시범용 벨트로 열심히 설명했다. 할머니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따라 하며 신기해하신다.


어쩐지 뿌듯하다.

내가 지나갈 때마다 벨트 했다고 봐달라고 자랑도 하시고, 알아듣지 못하는 말과 함께 웃으며 엉덩이도 두드려 주신다. 내 입가에도 미소가 걸린다.


하지만 순수한 미소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한창 기내식 서비스가 끝나고 승무원들이 기내식을 준비하는 공간인 갤리를 정리하는데, 어디선가 구린내가 난다. 갤리 바로 옆이 화장실이었다. 누군가 큰일을 거하게 보나 보다 하고 별생각 없이 넘기려던 찰나, 옆에 있던 동료가 ‘윽’ 하며 입을 막는다. ‘왜 그래?’ 하며 동료의 시선을 따라간 순간 들고 있던 쟁반을 떨어트릴 뻔했다.


화장실 바로 앞에, 있어서는 안 될 이물질이 있었다.


중국 생활, 특히 보이는 것보다 험난했던 엑스포를 겪으며 볼꼴 못 볼 꼴 다 봐온 나였지만, 그래도 이렇게 남의 대변을 눈앞에서 직관할 줄이야…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비행기가 처음인 어르신들에게 비행기의 접이식 문은 꽤나 큰 난관이었을 것이다.


차마 1초 이상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더 혼란스러웠던 것은 누군가는 저걸 치워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입에서 새어 나온 충격의 감탄사에 옆에서 서류를 체크하던 부사무장이 상황을 발견했다. 빠르게 넘어가던 종이들이 멈추고, 이내 의자 뒤에 꽂혔다. 그는 무표정으로 컨테이너(갤리에 있는 기내용 수납함)에서 뭔가 이것저것 꺼내다가, 충격에 빠진 우리를 보고는 잠깐 다른 갤리에 다녀오라고 했다. 우린 그를 혼자 두고 가지 못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고, 그는 웃으며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하도록 반대편으로 밀어냈다.

다 떠넘기고 도망가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크루들이 꺼리는 궂은일을 대신 해주는 그의 등이 든든하게 느껴졌다.




비행 3년 차, 한 승객이 보딩 중에 짐을 올려달라고 했다. 당시 우리는 승객의 짐을 대신 올려주지 않도록 교육받았다. 그 과정에서 승무원이 다치더라도 보호받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웃으며 빈자리를 가리키며 여기에 올리시면 된다고 하니, 셔츠 주머니에서 여권을 꺼내며 하는 말.


“나 미국 여권 있는데?”

‘So what?’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속으로 삼켰다. 괜찮아, 하루 이틀 아니잖아.


바쁜 시간이 끝나고, 곧 비즈니스 클래스 승격을 앞둔 나는 실습을 위해 사무장을 찾았다. 그날의 사무장은 진한 화장이 인상적인 아랍 출신이었다. 우리는 이코노미와 비즈니스 클래스의 경계, 비즈니스 화장실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사무장에게 주의사항을 듣고 있는데, 이코노미 앞칸에 앉아 있던 아까 그 승객이 커튼을 젖히고 넘어와 화장실을 찾았다.


“나 미국 여권 소지자인데, 화장실 어디 쓰면 돼?”

사무장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화장실 문 옆, 안에서 비상 호출 버튼을 누르면 불이 들어오는 작은 표시등을 가리켰다.

“여기에 여권 스캔하면 열릴 거야.”


승객이 진지한 얼굴로 표시등에 여권을 갖다 댔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고개를 돌렸다. 하필 그때 옆에 있던 동료와 눈이 마주쳤다. 웃음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사무장은 승객 몰래 슬쩍 화장실 문을 열었다.

“오, 고마워.”


승객은 만족해하며 화장실에 들어갔다. 문이 닫히자 사무장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하던 설명을 이어갔다. 우리는 소리 죽여 웃느라 숨이 넘어갈 정도였다.


아무렇지 않게, 심지어 서로가 만족스럽게 응대하는 사무장의 모습은 내 6년 비행 생활 중 잊지 못할 장면이었다.




비행 5년 차, 어느새 비즈니스 클래스 담당 승무원이 되었다. 그리고 규모가 작은 비행에서는 이코노미에서 부사무장의 역할을 대신하는 ‘데퓨티’ 역할을 맡기도 했다.


데퓨티로 오랜만에 이코노미에서 일하던 그날, 만석에다 보딩부터 내내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 아이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웠다. 벨이 울려 객실에 확인하러 나가니, 바닥에 색연필과 공바카라을 널브러뜨려 놓은 아이와 그 엄마였다. 콜라를 달라고 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안 가져다주냐로 시작해, 공항에서부터의 모든 불평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니, 무슨 콜라 가지고 저래. 티켓 발권도 나한테 말해봤자 소용도 없는데.’

그런 컴플레인을 듣는 건 자주 있는 일이지만, 그래도 매번 기분이 나쁜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제는 의식하지 않아도 얼굴에 장착된 자본주의 미소와 함께 “그러셨군요, 많이 불편하셨겠어요.”라고 공감한 뒤, 일단은 목마르실 테니 빨리 콜라부터 가져다드리겠다고 했다.


갤리에서 콜라를 따르는데 거품이 너무 많이 올라왔다. 잠시 거품이 가라앉길 기다리는 동안 내 마음도 가라앉았다.

말없이 뒷정리를 하던 부사무장의 등, 아무렇지 않게 농담을 던지던 사무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저 아이를 데리고 비행하는 저 승객도 얼마나 힘들겠어.

거품이 넘치지 않게 조심하며 한 잔을 더 따랐다.


“너무 오래 기다리셨으니까 죄송한 마음에 두 배로 가져왔어요.”

넉살 좋게 웃으며 콜라 두 잔을 내밀었다.

“오렌지주스나 어린이용 색칠 키트도 가져다드릴까요?”


승객은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지친 얼굴로 살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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