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번 떨어지고 한 번 붙었습니다

'니가? 승무원을?'

byGiagraphy
2부. 남들의 두 번째 질문. 중동에서 승무원을 했다고?


홍은동의 한 호텔.

채도 높고 쨍한 컬러의 원피스나 투피스를 차려입은 여성들. 대부분은 할머니가 보면 귀신 잡아먹겠다고 할 피빨강 립과 네일을 발랐다. 삼삼오오 모여 화장을 고치거나, 머리를 매만지고, 종이를 들고 중얼중얼거리기도 하고, 하염없이 인사를 하기도 한다.


무슨 광경이냐고? 카타르 항공의 승무원을 뽑는 어세스먼트 데이였다.


나름 가진 블라우스 중 화려한 것을 골라 입었지만 그래봤자 베이지색에 레이스가 달린 정도였다. 분명 집에서 나올 때는 면접 보러 가는데 이렇게 입어도 될까 하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나는 거기서 가장 수수한 사람이었다.


CV drop.

어세스먼트 데이의 첫 관문으로, 단순히 이력서(CV)를 제출하는 것이 끝이다. 다만, 그 짧은 순간 면접관의 호감을 얻어내 내 이력서를 1초라도 더 보게 만드는 것이 숨겨진 목표일 뿐. 찰나의 ‘간택’을 받기 위해 복장은 점점 더 화려해지고, 지원자들의 복장만큼 빳빳한 질감의 종이, 향이 나는 종이, 컬러가 들어간 종이까지 CV도 다양하다.


남들의 화려한 복장 따위에 기죽지 않을테다.

중국에서 대학을 나온 한국인. 게다가 전공은 영문과. 상해 엑스포라는 대형 글로벌 행사를 근무한 경험뿐만 아니라 각종 전시회에서 수십 번의 통역을 한 경험은 어필이 안 되려야 안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몇백 명의 경쟁자들이 줄지어 앉아 있고, 그 사이에서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려 내 차례가 온다. 앉아 있던 지원자들은 일어나 걸어 나가는 내 모습을 지켜보고, 따가운 시선을 애써 모른 체하며 면접관에게 준비해 온 CV를 내밀던 그 짧은 순간. 기계처럼 내 CV를 쳐다보고, 발에서 얼굴까지 훑어 올라오는 면접관의 시선. 온몸의 털이 쭈뼛 서고, 얼굴이 달아오르며 목 뒤와 겨드랑이가 뜨거워지는 그 기분.


내 장황한 이력에 대한 질문은 하나도 없었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인 양 정말 뻔한 ‘스몰토크’가 끝이었다. 허탈한 기분으로 자리로 돌아왔다.


결국 내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짧고 강렬한, 그리고 처참한 실패였다. 아니, 처참함을 느낄 틈도 없었다.


2011년 여름, 나의 두 번째 도전이었다.



상해에서 졸업식 직후에 있었던 북경의 ‘오픈 스크리닝 데이’에 가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이렇게 화려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도 아니었을뿐더러, 처음이라 어리바리 우왕좌왕하느라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나를 안 뽑을 리 없다는 근자감으로 노력과 준비도 없이 쉽게 거머쥘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오만한 스물넷이었다. 가볍게 몇 번 도전했고, 당연히 실패했으며, 금세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미련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꿈꾸던 공연 마케팅 회사에 취업했으나 그곳은 내 상상과는 너무 다른 곳이었다. 좋아하는 공연이 일 때문에 싫어지는 것은 너무 괴로웠다. 공연 마케팅의 꿈은 생각보다 쉽게 내려놓았다. 브로드웨이에 극장을 세우는 데 꼭 이쪽 경력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 돈만 있으면 공연장은 차릴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내가 잘하는, ‘사람 상대하는 일’에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딱 1년. 모든 걸 쏟아붓기로 했다.


“니가? 승무원을?”

주변의 반응은 대체로 그랬다. 나는 흔히 떠올리는 승무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체격은 통통하고, 키는 보통에, 피부도 좋지 않았다. 못생겼다는 말은 듣지 않았지만, 예쁘다는 말도 잘 듣지 못했다.


내 롤모델이었던 언니를 따라 카타르 항공만을 몇 번 두드렸던 지난날과 달리, 국내외 가리지 않고 공고가 나는 모든 항공사에 지원하기로 했다. 쉽게 생각하고 준비 없이 지원하던 지난날과 달리, 당시 유명했던 ‘전현차’라는 승무원 카페에서 온갖 정보를 수집했다. 카페에 올라온 다른 사람들의 합격 수기를 보며 나도 언젠가 꼭 쓰리라 다짐했다.

그래서 처음 떨어졌던 그날부터 거슬러 올라가 목록을 쓰고, 지원할 때마다 한 줄씩 더했다.


2011.07 카타르 북경 오픈 스크리닝 탈락
2011.08 카타르 서울 오픈 어세스먼트 탈락
2011.11 카타르 상해 오픈 어세스먼트 탈락
2012.08 카타르 아* 대행 1차 탈락
2012.10 카타르 스* 대행 1차 탈락
2013.04 에어아시아X B* 대행 2차 탈락
2013.04 ANA 1차 탈락
2013.04 싱가포르항공 1차 탈락
2013.05 대한항공 실탈
2013.05 아시아나 서탈
2013.06 드래곤에어 1차 탈락
2013.06 타이항공 스* 대행 1차 탈락
2013.06 남방항공 1차 탈락
2013.06 진에어 서탈
2013.07 가루다인도네시아 아* 대행 1차 탈락
2013.08 대한항공 실탈
2013.08 에어아시아X 1차 탈락
2013.08 에어부산 서탈
2013.09 아시아나 서탈
2013.11 제주항공 서탈
2014.02 대한항공 실탈
2014.02 중화항공 1차 탈락
2014.02 제주항공 실탈
2014.03 ANA 오픈데이 탈락
(서탈: 서류 탈락, 실탈: 실무 면접 탈락)


그렇게 24번을 떨어졌다. 예전의 내가 자격 요건도 높지 않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일에.


회사까지 그만두고 올인하다 보니 생활비가 부족해 구하려던 알바 면접도 10번은 넘게 떨어졌다. 승무원은 원래 어려운 거니까, 하고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알바까지 떨어지자 더는 핑계 댈 곳이 없었다. 세상 어디에도 내 자리가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누가 물으면 늘 씩씩하게 괜찮다고 했다. 괜찮은 척이 너무 익숙해져서, 나중엔 내가 정말 괜찮은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사실은 허무맹랑한 근자감도, 1년이면 충분하다던 확신도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뭐가 문제일까.

나이가 너무 많아서? 학점이 안 좋아서? 경력이 부족해서? 살쪄서? 화장이 안 어울려서? 말할 때 눈썹을 너무 많이 움직여서?

끝없이 꼬리를 무는 질문들은 모두 내 안에서 잘못을 찾고 있었다. 당시 내가 쓴 글에는 물음표가 가득했다.


‘절 원하는 항공사는 따로 있는 거겠죠?
제가 아직 못 만나서 그런 거겠죠?
기죽어 있으면 저한테 도움 되는 거 하나도 없는 거겠죠?
아직 100번도 못 채웠으니 벌써 지치면 안 되는 거겠죠?’


나는 그렇게 애써 가라앉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25번째 면접은 없는 형편에 일본까지 가야 했다.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에티하드, 카타르, 에미레이츠, 이른바 중동 3사였다. 그중 에티하드는 한국에서 좀처럼 면접이 열리지 않아 꿈처럼 바라만 보던 곳이었다. 그런 에티하드의 면접을 볼 수 있는 ‘인비테이션’을 받았지만, 면접은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열렸다. 한번 떨어지면 일정 기간 다시 지원도 못할뿐더러, 이제 더 이상 과외비만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기엔 한계였다. 마지막이다. 이번에도 안 되면, 당분간 해외 리조트 취업이나 워킹홀리데이를 가서 경력을 더 쌓겠다고 플랜 B와 C까지 세웠다.


만반의 준비를 위해 모의 면접 스터디를 하기로 했다. 그날 들은 피드백은 답변 내용은 너무 활기찬데, 표정과 말투는 내용과 달리 너무 차분하다는 것이었다.


아.

내가 너무 오래 준비했구나.

연이은 탈락에 자신감도 떨어지고 활기를 잃었구나. 하루하루 생활하기에도 재정이 벅차니 사람도 잘 안 만나고, 내가 앞서 있다고 생각했던, 승무원 준비하는지도 몰랐던 친구들이 어느 순간 비행하고 있고, 계속 비교하며 그런 내 모습에 또 자괴감을 느끼고. 이 모든 것이 밝았던 예전의 나를 앗아갔구나.


여행도 할 겸, 친구와 함께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평소엔 면접 가는 길에 수백 가지 질문을 녹음해 두고 랜덤으로 재생하며 혼자 답변을 해보곤 했다. 이번에는 대신, 오랜만에 음악을 틀었다. 밝고 경쾌한, 여자 아이돌들의 노래를.


‘안된다는 마음은 no, 어디서나 당당하게 걷기~♬’

내 안의 나는 여전히 주눅 들어 있지만, 오늘만큼은 밝은 ‘척’이라도 하자고 다짐했다.

면접을 기다리며 바로 옆에 앉은 일본인 지원자와 얘기하는데, 어쩐지 마법처럼 평소보다 한껏 밝아진 내가 느껴졌다. 착한 그 일본 친구는 내가 하는 말마다 너무 즐거워하며 들어줘서 괜히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CV drop을 위해 면접관 앞에 섰을 때, 면접관이 물었다.

“한국에서 왔네? 와서 뭐 했어?”

나는 아까 그 친구에게 한 얘기를 그대로 면접관에게 했다.

“쿠라스시 알아? 어제 스시가 너무 먹고 싶어서 회전초밥 갔는데 너무 맛있더라. 일본 친구가 엄청 싸고 맛있다고 추천해준 곳인데 너네도 한번 가봐!”

그날 남은 단계들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도 안 난다.


며칠 뒤 친구와 놀러간 이자까야. 와이파이가 잘 잡히지 않아 겨우 연결해서 들어간 메일함에는 새로운 메일이 한 통 있었다.

‘Your application for the position of Cabin Crew has been successful.’

모든 게 멈춘 기분이었다. 처음엔 이 메일이 의미하는 게 뭔지 몰랐고, 두 번을 읽고서야 골든 메일(합격 통지 메일)이란 걸 깨달았다. 옆에 있던 친구에게 “나 합격이래.”라고 말하는 순간 코끝이 찡해지고 눈물이 났다. 분명 나는 기쁜데, 웃으려고 하는데도 자꾸 눈물이 났다.


지금껏 적어온 24줄의 목록 아래 마지막 한 줄을 적었다.

2014.04 에티하드 일본 어세스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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