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코로나요?
2부. 중동에서 승무원을 했다고?
아마 나와 나의 옛 동료들은 그날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COVID-19.
온 세상의 하늘길이 막혔고, 내 세상은 순식간에 변했다. 우리는 베이스인 아부다비에서 마트와 약국이 아니면 외출이 금지되었다. 그 외출마저도 하루에 한 번, 두 시간이라는 제한이 붙었다.
모두가 처음 겪는 일이었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바이러스라는 거대한 존재 앞에서의 막연함과, 일상이 사라져버린 일상이었다. 하루 종일 집 안에서만 생활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고역이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타지에 갇혀버린 이들을 고향으로 보내주기 위한 항공편이 뜨기 시작했다. 그 말은, 집 안에만 갇혀 있던 우리가 밖에 나가 일을 하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다만 아주 소수의 인원만이 그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며칠 후 나에게도 그 행운이 찾아왔다.
여느 때처럼 머리를 매만지고 유니폼을 입었다. 다른 건 그 위였다. 마스크를 쓰고, 비닐장갑을 끼고, 유니폼 위로 발목까지 내려오는 파란 방역 커버를 걸쳤다. 거울 속의 나는 승무원이라기보다 방역 의료진에 가까웠다.
객실은 텅 비어 있었다. 몇 안 되는 승객들은 서로 멀찍이 떨어져 앉았고, 음료 한 잔 건네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마스크 너머로 보이는 건 승객들의 눈뿐이었다.
상황은 더 나빠지기만 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입국을 제한하니, 비행기를 타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이 사태에 맞서 회사는 큰 결정을 내렸고, 전사에 공지가 내려졌다.
내일, 전체 직원 중 3분의 2는 메일을 받을 것이며, 그 메일을 받으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해고 통보였다. 아니, 우린 모두 무기계약직이었으니 계약해지 통보였다.
원래 주사 맞기 전 아프지 말라고 엉덩이 톡톡 두드려줄 때가 제일 무섭다.
사내 커뮤니티에선 몇 시쯤 메일을 보낼 것이라는 예상을 하거나, 어느 직군에서 많이 나올 거라거나, 혹은 언어별로 최소 인원만 남길 거라거나, 각종 예측이 오고 갔다.
나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였다.
메일을 받으면? 혹은 안 받으면? 나만 떠나야 한다면? 나만 남아야 한다면?
여러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돌려보았다. 갑자기 너무 피곤했다. 그래, 어차피 결정은 내가 하는 것도 아닌데 일단 자고 일어나서 생각해 보자.
밤사이 커뮤니티는 더욱 뜨거워져 있었고, 친구들과 단톡방의 읽지 않은 메시지도 300이 떠 있었다. 나만 너무 태평하게 자고 일어난 걸까. 어쩌면 회피였을까? 나도 모르겠다. 다만 내가 걱정해 봤자 당장은 해결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나도 어딘가 불안했지만,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비하며 걱정하는 것보다는 결과가 나오면 그때 다음 계획을 세우자고 생각했다.
나의 태평함도 잠시, 날이 밝아오고 주위에서 다들 초조해하니 나도 덩달아 초조해졌다.
언제 메일이 올까? 해당이 안 되는 사람도 메일을 받을까? 정말 나일까?
휴대폰 진동이 울릴 때마다 내 심장도 철렁했다. 하나둘, 메일을 받았다는 인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 이제 시작이구나…
잔뜩 긴장한 채 무한 새로고침을 반복하고 있는데, 친구 한 명이 “아…” 하고 카톡을 보냈다.
그 한 글자에 무너지고 말았다.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손가락이 떨렸다. 차마 그 알림을 열어보지도 못하고 다시 한번 메일 창을 새로고침했다.
아…
메일의 수많은 꼬부랑 글씨들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Unfortunately”, 한 단어만 보였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잠깐 숨이 안 쉬어졌다. 머릿속이 백지가 되었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나도 모르게 울컥 의미 모를 눈물이 났다. 얼마나 멍하니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하지만 눈물이 새로운 해결바카라을 찾아줄 수는 없었다.
일단 한국을 가야겠지. 원래는 계속 해외 생활을 하고 싶은 나였다. 하지만 이 시국에 내가 갈 수 있는 다른 곳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일단 한국에 가서 좀 쉬자. 어제의 공지 이후 다양한 시나리오를 돌려볼 때 생각했던 것 중 하나였다. 일단 상황을 인정하고 다음의 큰 단계를 결정하니 마음이 좀 진정됐다.
그래, 어차피 처음부터 3년, 길어야 5년 정도만 하려고 생각했었잖아. 이다음엔 몸 쓰는 일보다 무언가 머리 쓰는 일을 하겠다고.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그런 마음이 들었다.
어라, 지금이 기회일지도?
그동안 미뤄왔던 결정을 내릴 때가 되었다고 내 등을 떠밀어주는 걸까? 오히려 잘된 일인 것 같기도 해. 한국 가서 엄마 밥 먹고 푹 쉬면서 이제 뭐 해 먹고 살지 다음에 할 일을 생각해 보지 뭐. 지금은 너무 많은 걸 한 번에 결정하려고 하지는 말자.
그렇게 마음먹었음에도, 머릿속이 명쾌하지는 않았다.
그동안 누려왔던 것들을 내려놓는 것. 가장 친한 입사 동기를 혼자만 두고 떠난다는 것. 섭섭하다, 아쉽다, 이런 형용사들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6년 동안 ‘today is my last duty’라고 말하는 동료들을 수없이 보아왔지만, 마스크를 쓰고, 비닐장갑을 낀 채 일했던 그 비행이 나의 마지막 비행일 줄이야.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여행으로는 처음 가본 인도가 나의 마지막 여행일 줄이야.
예상치 못한, 아니 예상했지만 예상하고 싶지 않았던 그 순간은 생각보다 많이,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더더욱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찾으려고 했다.
그래, 유니폼에 마스크와 비닐장갑이라는 상황이 너무 신기하고 웃겨서 사진을 많이 찍어서 다행이다. 보통 일할 때 사진을 잘 안 찍는데, 내 마지막 비행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다. 친구 결혼식에서 축무를 해주려고 한 달 넘게 연습했는데, 하마터면 자료화면으로만 보여줄 뻔했다. 인도의 결혼식은 나에게도 특별한 경험이라 영상을 많이 찍었는데, 그것도 너무 다행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분명 긍정적일 수 있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걸 찾지 않으면 내내 그 상황에서 슬퍼만 할 것 같았다.
나는 할 수 있는 것부터 했다. 부모님께 연락해 소식을 전했다. 바카라상을 정리하고, 빨래를 돌리고, 냉장고를 정리했다. 그렇게 하나씩 하다 보면, 이번에도 어느새 이 고비를 넘어가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정말로 아무 생각 없이, 백수가 되러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