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승무원을 그만뒀냐구요?

동기가 아닌 용기

byGiagraphy
2부. 중동에서 승무원을 했다고?


“승무원, 왜 그만뒀어요?”

매번 면접을 갈 때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듣는 질문이다. 그럼에도 어쩐지 쉽게 말이 떨어지진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냥 코로나 때문이라고 답하곤 했다.


사실,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승무원 1년 차, 아부다비의 어느 카페. 한국인 동기와 커피 한 잔을 시키고 노트북을 켰다.


승무원은 내게 평생 직업이 아니었다. 3년, 길어야 5년. 그동안 세상을 누비며 다음 삶의 방향을 정해볼 생각이었다. 비슷한 생각을 하던 우리는 카페에서 다음 목표를 그려보고 있었다. 한국에서 영어 강사를 오래 했던 그녀는 테솔 대학원을, 해외 생활과 외국어 경험이 있는 나는 글로벌 한국학과를 지원하려던 참이었다.


자기소개서와 학업계획서를 각각 세 문항씩 써야 했는데, 자기소개서 쓰는 것은 너무 쉬웠다. 아니, 쉽다 못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오히려 글자 수 제한에 맞춰 줄이기 바빴다. 그런데 학업계획서의 문항들 앞에선 손가락이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나의 화려한 이력은 교수들에게도 당연히 통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정작 대학원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나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중국어도 영어도 하고, 외국인에게 한국을 알리는 일을 좋아했다. 내가 할 줄 아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의 교집합을 그려볼 때, 한국어 교원은 내게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선택지였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모습을 상상하면 설레었지만, 그게 다였다.


학문적으로 진지하게 연구하는 것보다, 대학원을 졸업하면 자동으로 나오는 교원 자격증이 더 탐이 났다. 친구들은 사이버대학원은 돈만 주면 다 가는 곳이라고 했다. 그때의 나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고, 부실한 학업계획서는 외면한 채 화려한 자기소개서를 보며, 합격 못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결과 발표 날. 당연히 됐을 거라는 오만함과 에이 설마 떨어지진 않겠지 하는 미약한 불안함으로 전형 확인란에 수험번호를 입력했다.


서류합격 전형: 탈락.


탈락?
탈락…?
내가?


나 정도면 거기서도 좋아할 줄 알았는데. 내 경력이면 더 궁금해할 줄 알았는데.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방금 나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갈증이 해소되지 않아 다시 한번 쭉 들이켰다. 순식간에 반이 비었다.


“나 떨어짐.”

비행 중이라 핸드폰을 확인 못 한다는 걸 알지만, 같이 지원했던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답이 없는 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둔 채, 여전히 노트북에 명백하게 쓰여 있는 ‘탈락’이라는 글자를 보며 멍때렸다.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지.
아니, 근데 다들 쉽게 가는 거라며?


양가의 마음이 계속 오갔다. 이미 합격한 양 그려보던 미래는 이미 사라졌다. 얼음이 다 녹아 밍밍해진 남은 커피를 마저 입에 털어 넣었다.

노트북을 덮었다.


대학원 탈락은 단순한 불합격이 아니었다. 내게 한국어 교원이란 직업을 포기해도 좋다는 면죄부처럼 느껴졌다. 솔직히 말하면, 손이 떨어지지 않았던 학업계획서를 다시 쓸 생각을 하니 막막했다. 다시 도전할 용기도, 간절함도 없었다. 간절하지도 않았으면서, 쉽게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실패를 방패 삼았다.


그렇게 되고 싶었던 승무원이잖아. 다음 직업도 다음 직업이지만, 꿈을 이뤘는데, 일단 좀 즐길 필요도 있지 않을까?


나는 최선을 다해 순간을 즐겼다. 여행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며 세계 각국을 누볐다. 아이슬란드의 빙하 위를 걷고, 넋 놓고 오로라를 바라보던 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건 남미의 우유니 사막이다. 가장 친한 입사 동기와 함께였다. 얕게 물이 고인 소금 사막은 거대한 거울이 되어 있었다. 머리 위도 하늘, 발아래도 하늘. 하늘밖에 보이지 않는 그 거울 위를 친구와 나란히 걸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울렸다. 너무 행복했다.


모든 순간이 너무 소중하고 감사했지만, 아부다비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을 때면 마음 한구석엔 아주 작은 불편함이 남아 있었다.


여행에서는 현생을 잊고 지냈다. 하지만 비행기가 아부다비에 내리면 다시 유니폼을 입고 일터로 돌아가야 했다. 그게 진짜 내 현생이었다. 지금은 모든 여행이 즐겁지만, 분명 그렇지 않은 순간도 올 것이다. 이 직업을 즐길 수 있는 건 여행 덕분인데, 그 즐거움이 사라지면 나는 얼마나 더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지금이 너무 행복하고, 자유로운 승무원의 삶이 너무나도 만족스러워서, 평생 직업이 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걸 버리고 다음 직업을 찾아 나설 동기가 없었다. 머릿속으로는 늘 다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원에서 떨어진 뒤로, 그 생각은 좀처럼 머리 밖으로 걸어 나오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없었던 건 동기가 아니라 용기였을지도.


그렇게 순식간에 6년이 흘렀다.


코로나로 누군가는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왔다. 끝이 없어 보이던 나의 버킷리스트는 어느새 몇 개 남지 않았고, 주위에 나보다 직원 티켓을 많이 쓴 사람은 없었다. 나는 승무원이라는 직업이 주는 혜택을 생각보다 더 오래, 더 많이 누렸었다.


해고 공지가 내려진 그날 밤, 지난날을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만약 내가 해고 대상이 된다면, 나는 미련이 남을까?

아, 나는 후회가 없을 것 같다.


내가 혼자 힘으로 다음 그림을 못 그리고 있으니, 이제 때가 됐다고, 온 세상이 재촉하고 있었다. 다들 두려워하고 걱정할 때, 나는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그날 밤 그렇게 태평하게 잠들 수 있었던 건, 회피가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막상 해고 메일을 받던 순간엔 눈물이 났지만.


코로나가 내 등을 떠민 건 맞다. 하지만 사실은, 나도 이미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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