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금이다

쉿!

by무색무취

<포켓몬스터 레츠고! 피카츄>가 리마스터 되면서 이전의 마을이나 설정이 많이 유지되긴 했지만, 예전과 다르게 바뀐 요소들도 꽤 있었다. 강산이 두 번 변하고도 남을 기간이 흐른 이후에 새롭게 출시된 게임이다 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거였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모양이다.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영원한 리베로’로 불렸던 홍명보 씨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리베로라고 ‘영원히’ 불리긴 그른 걸 보면 영원하다는 것은 허상일 뿐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저 그렇게 믿고 싶을 뿐.


앞선 갈색시티의 상트앙느호와 체육관 관장인 마티스까지 어찌어찌 정리한 딸은 이제 보라타운(기존의 연분홍시티)으로 넘어갈 차례가 되었다. 보라타운에 도달하기 위해서 갈색시티와 보라타운 사이에 있는 돌산터널을 통과해야 했다. 이 동굴의 특이할 점은 포켓몬 세계관에서 익혀야 하는 영구적인 기술인 비술(기존의 비전머신) 중 하나인 반짝이기를 배워야 이 동굴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버전에서 비술을 배운 포켓몬은 그 기술을 잊으면서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새로운 게임에서는 그저 피카츄가 사이드로 배우는 기술로 오히려 이벤트에 가까워지면서, 어떤 포켓몬한테 가르쳐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으로까지 변모하였다. 피카츄가 반짝이기를 동굴 안에서 사용하면 어두컴컴한 돌산터널을 환하게 비춰주면서 동굴 안을 탐험할 수 있도록 해주지만, 터널 안에서 반짝이기를 쓰지 않으면 칠흑 같은 어둠을 헤매고 다녀야 한다.

KakaoTalk_20260922_214455526_02.jpg정말 눈앞이 캄캄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이 게임을 접했을 때, 나 역시 처음 해보는 거였기 때문에 반짝이기를 비롯한 다양한 기술들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았다. 그때는 심지어 지금의 딸처럼 함께 봐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맨땅에 헤딩하면서 혼자 터득해야 하는 것들이 가득했다. 심지어 혼자서 한 1회차에서는 반짝이기라는 기술이 뭔지도 몰라서 어두컴컴한 동굴에 맨몸으로 뛰어들었고 희미하게 보이는 동굴의 경계를 더듬더듬 만져가면서 겨우 빠져나갔었다. 그때는 옆에서 간섭하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나만의 방식으로 돌파했었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았으면서 딸이 게임하는 데 있어 옆에서 바라보는 훌륭한 간섭쟁이였다. 딸이 본인과 똑같은 처지에 놓였을 때 한 마디라도 더 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해한 모습이 다른 사람 눈에는 참 꼴사나웠을 것이다. 당장 아내부터도 내가 옆에서 딸이 게임하는 모습을 문지기처럼 지켜보고 있는 모습을 탐탁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게도 명분은 있었다. 나는 딸이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똑같이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얄팍한 대의명분으로 나 자신을 설득하면서 딸의 곁을 고집스럽게 지키고 있었다. 역사는 이러기 위해서 배우는 게 아니겠는가! 기술을 익혀야 한다는 지시 사항을 주고 싶어서 안달이 나버린 나는 그런 욕망을 꾹꾹 눌러 담고는 하고 싶은 말들을 참은 내 자신을 대견스러워하면서 딸이 어떻게 하는지 가만히 지켜봤다.


당황해하던 딸은 이내 게임 내의 맵을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 분명 좌절하면서 포기하려고 했지만 다시 마음 잡고 이런저런 방법들을 찾아보려고 하는 의지가 역력히 느껴졌다. 오박사님의 조수 중 한 명을 찾아서 10명의 포켓몬을 잡았다는 것을 증명하면 반짝이기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나는 딸에게 은은하게 힌트를 줬다.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말을 걸어봐~”


살짝궁 짜증이 나 있던 딸은 들은 체 만 체하더니 금세 마음을 다잡고는 각종 트레이너와 대결하거나 게임 내의 NPC들과 대화를 이어 나가기 시작했고, 조수가 어디 있는지 잘 알고 있는 나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많이 돌아가긴 했지만 어렵사리 조수를 만난 딸은 이윽고 반짝이기를 배울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돌산터널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그렇다. 딸에게 필요한 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지시와 잔소리가 아니라 옆에서 진득하게 지켜봐 줄 수 있는 인내심과 멀리 돌아가더라도 언젠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었다.


만약 내가 반짝이기를 얻어내는 방법과 위치를 가감 없이 알려주면서 훈수를 뒀다면 당장의 내 마음은 후련했을 것이다. 내 마음의 평안을 찾기 위해 행동하는 것도 문제겠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딸이 직접 답을 찾아 나설 기회를 내가 내 손으로 앗아간다는 것이다. 수학 문제를 풀 때, 정답을 맞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집중해야 하는 것은 풀이 과정이다. 한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줄 수 있지만, 정답을 찾아나가는 힘을 길러줘야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새로운 문제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자녀에게 풀이 과정은 무시하고 정답만을 알려주는 우를 범하는 것은 부모의 근시안적인 시각에서 나오는 큰 실수다. 자녀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답답함을 해소하는 것에 그치는 우매한 행태일 뿐. 부모는 통제된 방관을 통해 자녀를 성장시키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결국 본인과 똑같이 살라는 답습에 그칠 수밖에 없게 된다.


딸은 중간중간 부침은 있었지만 결국 나 없이도 동굴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가르쳐 줄 게 없었을지도 모른다.

e61447d5-6a9e-4457-8f1e-dbfe84be55b8.png조용히 있는 게 더 힘들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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