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말이야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by무색무취

‘꼰대’라는 단어가 최근 새삼 주목받고 있다. ‘꼰대’는 자신의 경험이 절대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아랫사람들에게 강요하거나 은근히 주입하려고 하는 윗세대 사람들을 일컫는 일종의 은어다. 옛날부터 있었던 단어고, 이러한 ‘꼰대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에 대한 불만도 당연히 즐비했겠지만, 예전의 아랫사람들은 삭히는 게 당연했던 반면에 이제는 이러한 불만들을 부담 없이 표출할 수 있는 창구들이 충분하므로 슬롯적 이슈가 될 정도로 공론화되었다. 특히, 나이에 따라 1년 차이로 촘촘한 줄 세우기가 가능하며 한 살의 우위만으로도 엄청난 권력을 쥘 수 있는 대한민국의 유교 슬롯에서 이런 ‘꼰대력’은 충분히 숙성되어 기승을 부릴 수 있는 훌륭한 여건이 갖춰져 있다.

라떼는 말이야.jpg라떼는 말이야

과연 슬롯에서만 그럴까? 최근 슬롯 곳곳에 ‘꼰대’들에 대한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면서 다들 조심하려는 분위기가 잡혀서 눈치라도 본다고 하지만, 오히려 집에서 아이들이 부모의 이러한 ‘꼰대력’에 더욱더 취약한 구조를 이룬다. ‘모태신앙’, ‘모태솔로’보다도 무서운 게 바로 ‘부모’다. 부모가 당연하고 옳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신념이 되지만 자녀에게는 ‘기준’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부모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세습하는 행동과 사고방식들은 자녀들에게 지배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며, 자녀들에게는 세상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벤치마크가 되어버리고 만다.


이런 나의 ‘꼰대력’은 세 번째 체육관 배지를 얻을 수 있는 갈색시티에서 그 정점에 도달했다. 분명히 앞선 블루시티에서 간섭하고 싶은 마음들을 겨우 꾹꾹 눌러 담아서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지하 통로를 지나서 갈색시티로 들어섰을 때 생기는 내 마음의 동요는 잠재우기 힘들었다. 갈색시티 입구에 도달하면 수풀 속에서 수많은 트레이너가 나를 기다리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내 눈에 이런 트레이너들은 스토리 진행의 일부분이 아닌 포켓몬 성장의 도구로만 보였다. 이들을 차례로 꺾으면 풍부한 경험치를 제공해 줘서 내가 지닌 포켓몬들이 앞으로 진행하게 될 체육관 관장과 나아가서는 게임의 마무리에서 만나는 사천왕과의 대결을 준비할 수 있게 해 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는 나만의 생각이었다.


딸은 신속한 게임 진행을 위해서 이러한 트레이너들을 최대한 피하고 싶어 했고, 피할 수 없는 상대들을 제외하고는 주인공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잠재적인 대결 상대들의 사이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하지만, 꼰대력이 가득 차 있던 나는 이를 잠자코 보고만 있지 않았다.


“왜 안 싸워? 싸우면 포켓몬들 레벨도 오르고 좋잖아??”

“...”


KakaoTalk_20260922_214455526.jpg이 경험치 밭을 어찌 그냥 지나친단 말인가

사실 포켓몬의 레벨이 올라서 좋은 건 나뿐이었다. 딸은 그저 게임을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하고 싶었을 뿐이다. 경험치를 쌓고 포켓몬의 경험치를 높여주는 것은 게임패드를 잡은 딸이 원하는 게임이 아니라 사실은 내가 추구하는 게임의 방식일 뿐이었다. 나의 강권을 이기지 못한 딸은 어쩔 수 없이 원치 않는 상대들과 몇 번의 대결을 했는데, 그걸 하는 표정을 보고 있자니 나도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분명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포켓몬들의 성장이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딸에게 포켓몬의 레벨은 그렇게까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나는 딸에게 내 삶의 방식만을 강요하고 있었을 뿐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무렵에 이 게임을 접했을 때도 사실 딸과 유사한 접근법으로 운영했다는 것이다. 나도 1회차에는 피할 수 있는 상대들은 어떻게든 우회해서 피해 갔고 전체적인 게임 진행을 위한 중요 퀘스트들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소소한 상대들과의 대결에 모두 임하기에는 초등학생이었던 내게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게임할 수 있는 시간도 제한적이었고, 그 당시에는 내게 중요하지 않은 요소들이었다. 최대한 빠르게 체육관 관장들을 만나서 배지를 따는 게 가장 중요했다. 1회차를 마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게임을 다시 시작하면서 앞서 겪었던 시행착오들을 반영해서 게임 운영 방식을 바꿔 나갔던 것이고, 내게 맞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찾아나갔던 것이다.


못난 부모가 된 나는 그깟 포켓몬 경험치보다 훨씬 중요한 경험을 딸에게서 앗아가려고 했다. 딸이 직접 부딪히면서 겪는 시행착오를 몸소 체험하고 이를 통해 본인이 진정 추구하는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과정을 뺏어가면서 내가 살았던 방식이 옳다고 우기며 압박하고 있었다. 본인들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으면서 자녀들을 학원에 욱여넣는 부모들을 항상 비판적으로 봐왔던 나 자신이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을 하고 있었다. 심리적 안정은 학원에 다니는 자녀가 아닌 충분한 교육의 기회를 주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아이들의 유년 시절을 앗아가는 부모들만 얻고 있다고 강하게 믿고 있는데, 나는 그들과 다를 바 하나 없었다. 딸의 상처가 걱정된다고 딱지가 앉는 경험까지 빼앗는 건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TV 앞까지 달려가서 아직 만나지 않은 트레이너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포켓몬 레벨을 올리자고 하는 걸 보면 완전한 반성을 했다고 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만의 방식을 종용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며 부끄러워한 나는 조용히 딸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여행객 트레이너들이 즐비한 상트앙느호에 입장한 딸을 향한 잔소리는 마음속으로만 했더란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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