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게임인가

누가 죄인인가

by무색무취

<포켓몬스터 피카츄>는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이 흥행에 성공한 이후에 발매된 게임이라 기존의 시작 포켓몬인 이상해씨, 꼬부기, 파이리 대신에 피카츄를 파트너 포켓몬으로 지정했다. 대신에 만화의 주인공 지우처럼 이상해씨, 꼬부기, 파이리를 중간에 몽땅 다 얻을 수 있도록 설정해 두었다. 그리고, 무척이나 고리타분하고 고지식한 사람인 내게 그 세 마리는 당연히 함께 해야 하는 포켓몬들이었다. 두 번씩 진화하는 이 친구들을 착실하게 키워내야 하고, 끝판왕을 깰 때까지 함께해야 하는 존재들이었다.


꼬부기,이상해씨,파이리.jpg꼬부기, 이상해씨, 파이리 (feat. 딸이 직접 그린 그림)


이는 오롯이 내 운영 방식이었다. 딸도 이 포켓몬들이 익숙해서 획득하고 싶어 하긴 했지만,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꼭 데리고 가야 하는 친구들로 여기는 것 같진 않았다. 게임 중에 이 포켓몬들을 얻는 것은 꽤 중요한 이벤트이긴 한데, 게임의 완결을 위해 필수적인 퀘스트도 아니었다. 오직 내게만 절대로 지켜야만 하는 황금 법칙일 뿐. 하지만, 나는 딸도 이 포켓몬들을 꼭 얻었으면 하는 마음에 계속 답이 정해진 질문을 연신 해댔다. 사실 ‘꼭 얻었으면 하는 마음’이라 쓰고 ‘나처럼 하길 원하는 마음’이라 읽는다.


“이제 이상해씨를 줄 건지 말 걸어보는 게 어때?”

“꼬부기도 계속 물어보면 주지 않을까?”


답이 정해진 질문은 기만일 뿐이라고 했던가. 이는 아내와 내가 딸과 대화하기로 할 때 합의한 화법과 완전히 상반된 형상이었다.


아내와 나는 딸을 키우면서 떼쓰는 아이가 되길 원치 않았다. 그리고 우리가 세운 대원칙은 매우 간단했다.


‘떼써서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경험을 하지 않도록 한다.’


아이가 과도하게 고집 피우거나 떼쓰는 게 보기 싫다면, 애초에 아이가 떼쓸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긴 아내와 나의 개똥철학이 만들어낸 신조였다.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자기가 원치 않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본능적으로 생떼를 써서라도 극적인 국면 전환을 시도하는데 우리 딸도 예외는 아니었다. 만 나이로 2~3살 정도 됐을 무렵, 아내와 내가 출근한 사이에 어린이집에 다녀온 딸은 저녁 먹기 전에 할머니들과 함께 많은 간식을 먹었던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딸에게 저녁 식사는 본인의 허기를 달래기 위한 필요조건이 아니라 자식이 영양 가득한 식사를 착실히 하길 바라는 엄마와 아빠를 겨우 만족시키는 자리일 뿐이었다.


매일 같이 억지로 먹던 저녁이 불만스러웠는지 하루는 작정한 듯한 딸이 갖은 생떼를 쓰기 시작했다. 의자에 앉아서 울고불고 소리 지르는 것에 그치지 않더니 결국 바닥에 드러누워서 떼굴떼굴 구르며 목 놓아 울기까지 했다. 아내와 내가 항상 경계했던 그 순간이 부지불식간에 등장했다. 그리고, 이성의 끈을 간신히 붙잡고 있던 우리 둘은 딸에게 잔인하게도 분리 조치를 단행했다. 딸은 울음을 그치고 진정할 때까지 방에 있어야 했고, 우리가 다시 상봉하는 데는 거의 1시간이 걸렸다.


그렇다고 이런 악전고투를 견뎌야 하는 딸의 의사를 무조건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내와 내가 딸의 의사를 묻는 질문을 했다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무조건 존중했다. 그렇지 않으면 질문하는 의미가 없지 않은가. 질문해 놓고 답을 듣지 않는다면 질문하지 않은 것보다 못할 것이다.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은 명령과 다를 바 없지만, 바카라임은 청자에게 돌리는 비겁한 술수일 뿐이라고 여긴 우리는 이러한 대원칙 속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게임을 하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었던 나는 이러한 대원칙을 무참히 깨부수고 있었다. 딸은 내가 필요 이상으로 쏟아내는 질문들 때문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억지로 퀘스트를 꾸역꾸역 수행해야 했다. 딸은 그저 포켓몬들을 잡고 그들과 함께 트레이너 대결을 하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는데 못난 아빠 때문에 딸이 원하는 게임의 흐름과 상관없이 계속 빙빙 돌아가야만 했다. 서브 퀘스트들의 수행 여부와 순서는 모두 내가 결정하고 있었고, 자기 합리화의 단계도 없이,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로 딸의 게임이 채워지고 있었다.


강요하는 아빠.png실제로 이랬다고 한다...

나의 슈퍼 간섭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포켓몬의 체력은 가득 채워져 있어야 하고, 마비, 화상 등의 특수 상황도 치료해야 했다. 딸의 포켓몬 중에서 중독 상태에 빠져서 화면이 깜빡거리기라도 하면 나는 지속적으로 딸의 포켓몬 센터 방문을 종용하였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생각이 없었던 딸은 하는 수 없이 전진하다가도 결국 나의 잔소리를 막기 위해 가던 길을 되돌아가 포켓몬 센터에 들러서 포켓몬들을 모두 맡겨야 했다. 나는 이것이 대의를 위한 일인 것처럼 여겼지만 딸은 본인의 의지로 행한 적이 거의 없었다. 옆에서 보고 있는 아빠를 만족시키기 위한 행동들이었을 뿐이다. 이쯤 되면 패드만 딸이 쥐고 있는 것이지 실제로 게임은 내가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딸보다 고작 30년 일찍 태어나고 그사이에 이 게임을 몇 번 더 해봤다고 생각해서 내가 한 방법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나의 교만이 끝도 모르고 쭉쭉 뻗어나가고 있었다. 나도 이 게임의 1회차 때 놓치고 지나간 부분들이 우후죽순 많다는 걸 속으로 알고 있었음에도 똑같은 과정을 겪고 있는 딸을 보고 있는 나의 잔소리는 그칠 줄 모르고 있었다. 딸은 본인이 원하는 게임이 아닌 아빠가 원하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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