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참 어렵다
보라타운을 지나 남쪽으로 쭉 내려가면 연분홍시티에 도달하게 된다. 내가 게임을 할 때만 해도 이 마을에 사파리 존(Safari Zone)이라는 곳이 있었다. 포켓몬 트레이너가 사파리 존에 입장하게 되면 트레이너와 대결하면서 경험치를 얻는 것이 아니라, 입구에서 일정 개수의 포켓볼을 받고 그 안에 있는 포켓몬들을 자유롭게 포획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서만 잡히는 포켓몬들이 있어서 게임 속에서 포켓몬 도감을 가득 채우는 게 목표인 트레이너들은 이곳을 모른 채 지나갈 수 없었을 테다. 내가 2018년에 게임을 샀을 때는 이 사파리 존도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사파리 볼을 받아서 사파리 존에 들어서면 다양한 아이템들과 더불어 여기에서만 만날 수 있는 켄타로스, 캥카, 스라크 등 희귀한 포켓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딸과 함께 이 게임을 할 때에는 대규모 업데이트가 있었는지 나에겐 설렘 가득한 곳이었던 사파리 존은 GO 파크(포켓몬 GO 계정과 연동하는 시스템)로 바뀌어 있었다. 사파리 존은 나의 포켓몬 게임 역사에 항상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예고도 없이 퇴단했다는 것이 은근한 충격이었다. 게임 이용자들이 본인의 포켓몬들을 통해서 사파리 존의 포켓몬을 잡지 못하면서 통제력이 떨어진다는 불만이 제기되면서 제거됐다는 설이 있지만, 워낙에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포켓몬 GO를 이 세계관에 삽입하고자 하는 제작사의 의도도 함께 담긴 결정이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당혹감을 혼자 삼키며 바뀌어 버린 보라타운을 누비는 딸을 곁에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대표적인 물가 지수 중의 하나가 바로 CPI(소비자 물가 지수, Consumer Price Index)이다. 매달 발표되는 미국의 CPI는 미국의 향후 통화 정바카라, 환율이나 증시의 흐름에도 영향을 주는 중요한 지표다. 이런 CPI는 내가 미시경제학 시간에 배웠던 라스파이레스 지수(Laspeyres Index)라는 것에 기반을 두고 있다. 라스파이레스 지수는 물가상승률을 측정하기 위해서 기준시점의 ‘소비 바구니’를 설정하고, 그 가중치에 의해서 물가 수준을 계산하게 된다. 가령, 1년 전에 우유 한 통과 달걀 한 판을 사는 데 10,000원 들었는데 올해 똑같은 물건들을 사는 데 11,000원이 들었다고 하면 물가상승률이 10%라고 설명하는 지표이다. 이론적으로 라스파이레스 지수는 이 ‘소비 바구니’를 고정되면서 새로운 구매 경향이 반영되지 않아서 기준시점이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현실을 대표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다. 물론, CPI는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일정 기간이 지나면 ‘소비 바구니’의 구성과 가중치를 한 번씩 갱신한다고 한다. 내가 나의 경험에만 의존해서 이런저런 간섭과 잔소리를 하게 되면 몇 년(최근에는 거의 매년)에 한 번씩 갱신되는 CPI보다도 못한 꼰대가 되는 것이다.
나는 새롭게 바뀐 시스템에 동기화되는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내게 항상 당연했던 사파리 존이 없어졌다는 사실에 적응해야 했다. 세상은 계속 변하고 한때 내게 옳았던 것들이 옛것이 되어버렸다. 여기서 간과해선 안 되는 사실이 또 있다. 딸의 세상에서는 사파리 존이라는 곳이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다. 나와 딸에게 당연한 세상은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어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게 당연했던 세상을 딸에게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을 어찌 옳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나의 조그마한 기억들은 이제 근현대사가 되어버리고 말았는데, 그때에 의거하여 누군가에게 연설하는 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배워야 할 사람은 게임을 새롭게 접하는 딸이 아니라 2018년에 멈춰버린 나였다.
세상에 자명한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 현재는 사용되지 않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읍니다’는 신문에도 쓰이는 표준어였고, ‘짜장면’이 표준어로 인정받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대학교에 진학한 2006년에 할아버지가 대학 진학을 축하하면서 대뜸 내게 물었다.
“이제 대학에 갔으니 한자 공부 많이 해야겠네~”
“왜요?”
“교재들이 다 한자로 되어 있잖아.”
신문들도 한문 병기를 포기한 지 꽤 됐는데, 대학 교재가 한문으로 되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으면서도 실제로 그럴까 봐 걱정까지 됐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내가 접한 교재는 몽땅 한글 또는 영문으로 되어 있었다. 교재에서 한자가 사용되는 것은 우리 부모 세대에서나 있었던 일이었고, 한 세대가 지났더니 대학생들이 접하는 교재의 언어도 순식간에 바뀐 것인데, 할아버지가 알고 있던 한문 가득한 교재는 더 이상 현실과 동기화되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의 시류는 생물과 같이 끝없이 변한다. 기술의 발전, 효율성, 편리함, 인식의 변화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 이유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변화를 인정하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이 우리가 급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는 주요 덕목이다. 과거에는 답을 아는 게 중요했다면, 지금은 답을 찾아내는 능력이 중요해진 것처럼 인간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점점 변하고 있는데, 내 기억 속에만 살고 있는 사파리 존에 대해서 구구절절 백날 읊어봐야 딸이 귀담아들을 리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게임 진행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식’을 설파하기 전에 세상을 받아들이고 읽어낼 수 있는 ‘지혜’를 물려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물론, 딸은 포켓몬 GO 계정이 없어서 결국 GO 파크에 입장하지 못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