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축하고 구질구질한
사랑은 경쟁성 스포츠와 일면 닮아있다는 생각을 해왔다는 건 은연 중의 고백이다. 오히려 스포츠가 사랑의 한 종류라 말해도 괜찮을 것이다. 찝찝하고 비루함에도 매일 교통카드를 찍으며 출근하는 일상이 실존적 문제의 단골 주제로 다뤄지는지 몰라도, 스포츠정신에 비추어 보는 한 우리는 주기적으로 누군가와 겨루기 위해 규칙을 지키며 콜로세움 한복판에 선수자격으로 발을 내민다. 일단 사랑이라는 단어로 포장해 보자. 일단이라고 한 것은 그것이 꼭 집어 사랑이라 표현할 수 없기도 하겠으나, 사랑이란 단어 대신 사용할 만한 단어가 돋보이지 않기도 한 까닭이다. 사람은 사람의 수만큼 고유한 사랑의 법칙을 세우고 실행하는 법인데도, 어째선지 통념적인 사랑관념 하나로 이들을 퉁친다. 꽃송이와 꽃다발의 아름다움은 구분되어야 하지만, 달리 '꽃의 아름다움' 말고 어떤 테이블로 분류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 꽃다발에서 각각 한 송이씩 불러와 자리에 놓았을 때 그들이 보인 행동은 신기했다. 개망초는 그 즉시 풀밭을 따라 멀리멀리 퍼져나가며 곧잘 꽃을 피웠다. 그에 반해 장미는 자리를 지켰다. 잠시 피어나 세상에 붉은 노을을 잠깐 붙들어놓고는 일찍이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생생한 것은 그녀의 가시뿐이었는지도 모른다. 개망초는 그녀가 궁금하고 또 신기했다. 그녀의 가시는 크고 날카로웠으며, 좁고 미끄러워서 담쟁이넝쿨조차 타고 올라갈 수 없었다. 마치 무엇도 자신에게 적응하지 말라는 듯한 강한 경계가 그어져 있는 것만 같았다.
그에 반해 개망초는 무엇이든 적응을 잘했다. 비유하자면 그의 골대는 무척이나 거대했다고 말할 수 있다. 누구와도 연결되어 경기를 시작하면 그는 승패에 개의치 않고 경기를 즐겼다. 그에게 있어 최고의 관심사는 '상대를 이기는 법'이 아니라 '많은 상대와 함께 노는 것'이었다. 그 개망초를 보고 학생 무렵 오락실 구석에서 결투게임을 하던 남자아이가 떠올랐다. 흔히 사기라고 하는 "얍쌉이" 캐릭터를 골라 한 가지 스킬로 게임의 승부를 내는 비겁한 건지 정직한 건지 모를 녀석, 그는 만나는 족족 상대를 이겼지만, 그것이 반복됐을 무렵 누구도 그와 만나려 하지 않았다.
고백을 거절당해 본 적 없다고 으름장을 내놓는 이들의 심리 저편에 그 남자아이의 난처함이 살아있는 것이다. 거절하지 않는 이만 고백의 대상으로 삼거나, 거절하지 못하는 상황을 유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큰 나머지 거절의 가능성이 잠재된 대상에게 사랑을 투사하지 않는다. 그의 골대는 무척이나 비좁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망초는 거절이 두렵지 않았다. 자신의 골대가 거대한 만큼 타자의 골대도 넓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굳은 믿음,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여유로운 경계가 도리어 타자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도록 해주었다. 골대가 작은 남자아이가 궁극적으로 두려워했던 것이 거절당할 것이라는 일말의 가능성이라 한다면, 어떤 당신이라도 받아들여주겠다는 부담감이 전무한 슛은 패스의 한 종류라 봐도 무방한 것 아닐까? 개망초는 그렇게 생각했고, 따라서 장미도 이 무지막지한 비공격성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장미가 쳐놓은 가시덤불 사이를 개망초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흘러들어왔다. 누구와도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개망초와, 아무나하고 사랑하고 싶지 않은 장미는 그렇게 경기를 시작했다.
사랑에는 당사자 해결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누구도 관계에 끼어들어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없다. 왜냐면 당사자들이 아니고는 그들 사이 사연의 골과 감정의 주름들을 속속들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삼자에게 알려진 것들은 설령 거의 다 알려져 있다고 해도, 실은 아주 조금밖에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그들의 경기는 참여자가 둘 뿐인 무제한의 데스매치와 같아서, 도망침으로써 끝내는 것 말고는 승부를 낼 도리가 달리 없다. 도망치는 것은 비겁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도망치는 것에 익숙해지면 누구와의 승부에서도 도망치는 법 외에 선택지를 상기하지 못하게 된다.
쉽게 도망치는 것만큼 볼품없는 것은 항상 상대가 도망치도록 만드는 것이다. 오락실의 남자아이가 그랬듯 승리에만 집중하면 어느 순간 누구도 함께 경기하려 하지 않는다. 골대를 닫아놓고 겨루려는 자와 함께하는 자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있다면 있는 대로 또 문제가 아닌가. 패배에 익숙한 자는 패배가 편하다. 패배가 편한 자와의 게임은 어떤 방식으로 해도 이기기 때문에, 열정이 설 자리가 없다.
장미는 이기려는 자가 아니라 경기할 대상을 신중히 고르는 성격이었고, 개망초는 지려는 자가 아니라 다양한 이들과 경기를 해보고 싶어 하는 성격이었기에 그들의 경기는 정직했다. 물론 정직했다는 게 평탄하거나 잠잠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서로의 성격에 맞추어 반칙을 하지 않고 힘을 다해 상대의 골대에도 골을 욱여넣는다. 점수차는 점점 벌어졌다. 장미는 신중했고, 골대가 작다는 이점으로 언제나 더 많은 득점 상태였다. 그럼에도 개망초는 좌절하지 않았고, 이는 장미가 보기에 더없이 이상한 일이었다.
우리는 일생동안 넣은 골 수에 비례해서 자존감을 형성하고, 이는 꽤나 경험적인 사실이다. 기분이 나쁘면 무언가를 발길질하는 행위를 일면 슛을 차는 어린아이의 행동처럼 빗대도 좋을 것이다.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 만만한 상대에게서 점수를 따내야 할 것이 아닌가. 연탄재를 시원하게 발로 차면 기분이 좀 나아지는 그 유치한 승리감에 자존감은 위로받는다.
그렇다면 개망초는 어떻게 안정적인 자존감을 유지한다는 말인가. 간단했다. 개망초는 자신의 기질에 솔직하게 다른 꽃들과도 경기를 하고 있었다. 장미와의 시합에서 5점 만을 따더라도 여럿과의 시합에서 총합은 20점이 넘을 것이다. 골 수와 비례하는 정직한 자존감을 그는 잘 활용하고 있다.
당사자 해결 원칙에 대해 언급한 것이 이 때문이다. 장미는 이를 알고 격분했다. 그녀는 가시를 꼿꼿이 세우고 개망초와 둘만의 규칙을 추가할 것을 제안하고, 법을 어길 시 경기를 지속하지 않고 파기할 것을 설명했다. '꽃에 속하는 그 어떤 이와도 경기하지 않을 것', 이제 둘만의 경기라 불렀던 것이 개망초 개인의 삶에 호각소리처럼 날카롭게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많은 꽃들을 만나고 싶은 것이 그의 성격이자 삶의 방식이었지만, 이젠 정말로 패배가 반복되는 장미와의 경기만 해야 하는 것이다. 장미의 마음에도 불편함은 있을 것이다. 그 특유의 비공격성을 모른 채 만난 것이 아닌 데다 그 장점으로 하여금 그를 좋아하게 된 것임에도, 다시 같은 이유로 그가 미워지는 것은 어쩔 도리 없이 앞뒤가 맞지 않는 걸 스스로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용기 있는 자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 누군가 말했던가. 그들은 조율을 시작했다. 서로가 합의한 규칙을 정해 다시 경기를 재개할 것이다. 평소라면 도망치고 다른 꽃들과 관계 맺었을 개망초는 도망치지 않는 길을 선택한다. 마찬가지로 '이럴 줄 알았어.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멍청한 짓이야'라며 골대를 더욱 좁히던 장미도 다시 그를 믿기로 한다. 개망초는 골대의 크기를 줄이기로 했고, 장미는 골대의 크기를 늘리기로 했다. 둘 뿐이라는 베타성을 확립하면서 둘 사이라는 유연함을 고려하기로 약속했다. 이로써 둘의 경기는 조금 더 재밌어질 것이다.
비슷한 득점을 해야 경쟁자도 관객들도 경기를 흥미진진하다고 여긴다. 두근거림은 일종의 노력으로 유지되는 셈이다. 무조건적인 승리의 결과보다 중요한 건 서로가 합의한 규칙 아래 정직하게 수행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스포츠맨십의 정의도 그러하지 않은가. 규칙을 지키고, 상대를 존중하며, 정정당당하게 승패를 받아들이는 태도, 이 축축하고 구질구질한 사랑에도 유효한 마음가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