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장미와 나
당신이 태어나기 전 꿈을 꿨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던 광야에서 유난히 눈부시던 한 뼘 크기의 공간, 빛을 손에 담아두고 싶어 두 손을 모아 이리저리 주워 담는 시늉을 했다. 빛의 수확은 불가능하기에 매력적이며 , 매력적이기에 하루종일도 가능했다. 대자로 드러누워 온몸으로 빛을 맞고 있으면 내 몸도 찬란하게 부서지는듯했다. 뜨겁다기보다 안온했던 빛의 침대 안에서 나를 부수어지게 하는 것들에 둘러 쌓여 잠을 청하는 일은 더할 나위 없이 부푼 꿈이었다. 깨어날 때는 여지없이 허리 한 구석이 아파왔다.
당신에게 꿈 얘기를 하는 건 바보처럼 보일지 모르는 일이다. 우리의 언어는 다르고, 세상을 감각하는 기관도 다르다. 하지만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언어가 같아 일어나는 오해와 다툼에서 자유롭고, 세상을 감각하는 기관이 다르기 때문에 세상을 감각하는 기관이 같아 사로잡히는 오만과 편견에서 자유롭다. 당신과 나의 연결은 이토록 다른 세상의 교집합으로부터 뿌리내려 자라나는 것이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
5월의 이른 아침 개미는 부지런하게 제 몸보다 큰 부스러기 따위를 옮겨 다니고, 바람은 나지막이 피부의 존재를 알린다. 적극적으로 살아있다는 느낌, 그 느낌은 언제나 외부에서 찾아오는 손님처럼 갑자기, 그러나 현실감 있게 나타나 태도와 날씨를 바꾼다. 이렇게나 하늘이 푸른색으로 칠해져 있었던가? 이렇게 소나무의 잎들이 무성하고 촘촘히 하늘을 뒤덮고 있던가? 무심코 지나가던 길에서 마음먹고 느끼고자 하면 생명의 태동은 어김없이 소리를 들려주었다. 모든 것에 흥미를 동하게 만드는 녹음의 내음과 까칠한 까치소리 등 하잘 것 없는 것들의 씩씩함은 당신을 쳐다보게 만들었다. 울타리 한편에 고개를 내민 장미덤불 말이다.
당신의 가시를 보았다. 기원인 뿌리를 짚어 천천히 줄기에 올라탄 뒤 눈을 감는다.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줄기의 지문은 본 적 없어도 떠오르는 오래된 내 손가락 한 짝이었던 것만 같다.
미끄러운 것만이 아름답지 않다. 거칠게 솟아난 굳은살도 못지않게 아름다우며, 생명을 품고 내놓은 이들의 튼살도 못지않게 아름답다. 보기에 거친 표면의 이면에는 늘 아름다움이 새겨져 있었다. 날카로운 가시를 솟아나게 하기 위해 속으로 자신을 얼마나 찔러야 했을까. 외부 전면을 방어하기 위해선 내면을 전부 손보아야 한다. 막기 위해 뜯어고치는 일이 정말 속살을 뜯어내는 것과 얼마나 다를 것이며, 또 무엇을 막기 위해 그렇게 스스로 고통스러워야만 했나. 멋대로 연민하기로 결심한 순간 가시에 손을 찔려 피가 흘렀다.
피는 여러 색을 가졌다. 건강 상태에 따라 색이 다르고, 그러니 정신 상태에 따라 색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진홍색은 애절하고 애타는 마음인 걸까. 당신을 보고 있다는 걸 당신에게 들켜서 그런 걸까. AI에게 물어보니 소독과 응급처치를 추천해 주었다. 보통 차갑지만 대개 정확한 조언이므로 말없이 진한 붉은색의 당신과 검은색으로 절전된 핸드폰 화면을 번갈아 쳐다봤다. 내게만 해당되는 건 아닐 터라고 생각한 뒤 자리를 떠났다.
봉오리가 가득한 장미의 줄기는 점점 꺾여갔다. 감당할 수 없는 봉오리를 피운다는 건 먼저 쓰러지겠다는 다짐과도 같겠지. 무엇이 네 다짐에 불을 붙였는가. 불꽃이 타오르면 가벼워지는 법이거늘 네 등은 꽃이 타 올라 무겁게 휘어갔다. 욕심, 그것은 결핍으로부터 피어난 감당할 수 없는 만큼의 꽃. 내가 네 욕심을 근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으니, 당신도 내 욕심을 쳐다보라, 그리고 말해주라. 나는 어떤 욕심을 가졌는가. 어떤 욕심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왔는가. 꿈으로 근근이 삶을 연장하는 실존의 문제에서 삶은 꿈에게 어떤 것을 빚졌다는 말인가. 당신은 대답 없었고 시간은 흘러갔다. 매일 조금씩 잎 끝이 검게 그을렸다. 잠그늘에 뒤척이며 허리에 통증이 느껴지는 때가 잦아졌다.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빗방울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는 시끄럽고 난잡하게 울려 퍼지고 우산 꼭지에서 끝으로 물줄기가 흐른다. 검은 우산에 비치는 흐린 하늘은 모종의 외로움을 뿌려대는 것만 같아 눅눅하고 울적하다. 외로움은 개인감정의 영역일까, 고립이 초래하는 슬롯적 현상일까. 더 외로운가, 덜 외로운가는 편차가 있을지언정 존재에겐 불가피한 실존의 본질일터인데, 문득 당신에게 할당된 외로움의 크기는 얼마일지가 궁금해졌다. 인간은 사는 내내 외로움에 사로잡혀 있고, 차라리 산다는 것은 자기 몫의 외로움을 감당하는 일이다. 작은 알에서 깨어나 세상을 마주한 당신은 어떻게 다른가? 닿지 못할 태양을 내내 바라보며 사는 삶에 어찌 외로움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을까. 나는 당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당신 안에 나와 같은 외로움이 있다는 것을 짐작한다. 또한 당신이 내게 같은 짐작을 품어주길 바란다. 누군가 같은 괴로움을 안고 살아간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이 된다는 건 바보 같지만 공감되는 것이므로 실소가 나왔다. 당신은 말이 없지만 가르치는 데 소질이 있다.
갑자기 장미들과 덤불들이 인간의 필요에 의해 없어진 날, 감각으로 찾아낸 당신의 빈자리엔 잔향조차 남지 않았다. 모종의 관계 사이에 자리한다는 건 이렇듯 슬픈 방식으로 마무리되는 법이다. 인간의 불편함도 이해되는 것이지만 당신의 고통에도 공감됐다. 유난히 슬픈 건 불편함이 고통을 이겼다는 것, 그다음으로 슬픈 건 탐탁지 않음에도 이런 상황에 "언제나"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 내 무력함을 탓한다거나, 작별인사를 하는 둥의 무용한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만날 텐데 어찌 작별인사가 어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시 찾아오는 5월에 보기로 무언의 합의를 했으며, 5월의 여왕은 반드시 5월에 찾아오는 법이므로, 당신 붉은색의 열정을 믿고 기다리기로 한다. 아마 내일도 여지없이 허리 한 구석이 아파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