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 박해영이 있다면 소설에는 최진영이 있다.
요즘 나는 최진영 작가님의 글에 빠져 있다.
작가님 특유의 허무한 공기 내음이 좋다.
그 글을 읽으며 나를 돌아보게 됐다.
나는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데에는 별로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정작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내가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를 대신 꺼내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때때로 목소리가 큰 사람을 싫어한다.
북적북적한 서울의 아침을 보고 있으면 조금 이해가 되기도 한다. 가뜩이나 포화된 공간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도움을 인지하지 못한 채 눈을 흘기며 지나간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대부분 불편한 표정들을 지니고 있다.
나는 그런 표정을 마주하기 싫어서 지하철을 타면 다른 공간으로 도망간다.
노래를 듣거나, 바카라을 읽거나, 딴짓을 한다.
이동하면서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내게는 미묘한 안정감을 준다. 분주한 슬롯 속에서 나는 어딘가로 향하고 있고, 그 방향성 안에서 잠시 아무것도 해내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기차 같은 걸 타고 지나가는 시간이 좋다.
가만히 있어도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으니까.
'시간을 버렸다'는 실망감에 빠지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사람들 사이에 끼어 하루를 보내다 문득 생각했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도움을 서로에게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모두가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놓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위기의 순간이 오면 평소에는 조금 시끄럽다고 생각했던 사람의 목소리가 간절해질 때가 있다.
어느 때와 다르지 않은 날이었다.
누군가 지하철 안에서 쓰러졌다.
처음에는 나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때 저 멀리서 큰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누가 쓰러졌어요!”
그 한마디에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자리를 비켜주고, 누군가는 상황을 확인하고, 누군가는 환자를 이송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었다.
조금 전까지 각자의 하루를 살아가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일상에서는 시끄럽다고 생각했던 목소리가 때로는 누군가에게 구원이 되기도 한다.
그러고 나니 낯선 사람들이 한층 덜 날카롭게 느껴졌다.
지하철에서 내 어깨를 치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의 하루가 어떤지는 내가 알 수 없으니까.
요란스러운 바퀴가 나를 밀쳐내더라도
그 사람이 먼 길을 돌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내가 보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니까.
우리는 서로의 하루를 아주 잠깐씩만 본다.
어깨가 부딪힌 순간, 무표정한 얼굴, 큰 목소리, 무심하게 지나가는 뒷모습.
그 짧은 순간만으로 한 사람을 다 안다고 생각하기에는 우리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더 쉽게 놓아주고 싶다.
순간의 기분 나쁨을 오래 붙잡지 않고,
내가 모르는 그 사람의 하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서.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훨훨 편히 날아가기를.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보지 못한 것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
누군가의 마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순간에는, 조금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