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사표를 내던 날, 나는 지도를 펼쳤다

그래, 당신이 행복하다면

by김온유

신림동 고시촌. 좁은 골목 사이로 프린트 냄새와 컵밥 냄새가 뒤섞여 나던 그 동네에서, 나는 막 1차에 합격하고 사법시험 2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2차는 처음이라 어느 강사 수업이 좋은지, 어떤 문제집을 봐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묻다가 친해진 고향 오빠가 있었다.

지금의 남편이다.


"이 자료 필요하면 줄게. 나 다 봤어."

그렇게 문제집 몇 권을 건네받은 게 시작이었다.

고향 오빠는 먼저 시험에 붙었다. 그리고 내 수험 기간이 끝날 때까지, 묵묵히 나를 응원하며 기다려 줬다. 그러다 사법시험이 폐지의 길로 들어서면서 나는 시험을 내려놓게 됐고, 몇 년이 흘러 우리는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내가 낙방하고 앞날을 막막해하던 그때, 남편은 혼자 이렇게 다짐했다고 한다.

'내가 열심히 벌어야겠다. 외벌이가 될 테고, 결혼하면 돈 들 일도 많을 테니까.'


그렇게 남편은 대기업 법무팀 변호사로 입사했다. 슬롯 초년생 둘이 쓰기엔 넉넉한 연봉이었다. 남편의 급여 명세서를 볼 때마다 속으로 감탄했다. '역시 큰 회사는 다르구나.' 반면 나는 작은 경매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회사도 작고 복지도 열악했다. 임신하고 아이 낳을 때쯤 되면 다들 그만두는 분위기라, 나도 오래 다니기는 어렵겠다 싶었다.


그래서였을까. 남편은 유난히 열심이었다. 새벽에 눈뜨자마자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났고,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그 소리가 다시 났다. 돌아온 남편은 넥타이도 못 푼 채 소파에 쓰러지듯 앉았다.

"밥 먹었어?" 물으면,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하루 중 얼굴 보는 시간은 저녁 먹고 잠들기 전까지, 그게 전부였다. 그때는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피곤한 게 당연하고, 얼굴 못 봐도 월급 받으니 감수해야 하는 거라고. 새벽에 들어오는 날엔 수당이 따라오니, 그걸로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 사이 나는 임신을 했고, 혼자 있는 낮 시간 동안 공인중개사 공부를 했고, 첫째를 낳았다.


조리원 방 안엔 미역국 냄새가 옅게 퍼져 있었다. 창밖은 초겨울이었지만, 방 안은 조용하고 따뜻했다. 신생아 침대에 눕힌 첫째가 작게 숨소리를 내고 있었고, 남편과 나는 조리원 저녁을 함께 먹고 있었다.

남편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기... 나, 할 말이 있는데."

"뭔데, 왜 그렇게 뜸 들여."

"나, 회사 그만둘까 싶어."

숟가락을 든 채로 남편을 쳐다봤다.

"갑자기 왜?"

"국선전담 변호사로 가고 싶어. 형편 어려운 사람들 변호하면서 살고 싶어. 그렇게 사는 게 나한테 더 맞는 것 같아."

아기가 태어난 지 겨우 며칠, 설레는 마음으로 새 아파트에 들어간 지 석 달 만이었다. 앞으로 돈 들어갈 일이 산더미 같은 때였다.

잠깐 정적이 흘렀다. 그런데 내 입에서 나온 대답은, 나조차 놀랄 만큼 가벼웠다.

"오빠가 행복하다면 그렇게 하자. 나도 그게 좋아."

남편이 말을 이었다.

"월급은 지금의 반토막이 날 거야. 어쩌면 더 적을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을까?"

이번엔 조금 더 긴 정적이 흘렀다. 아기의 숨소리만 조그맣게 들렸다.

"...괜찮아. 돈이야 또 벌면 되지, 뭐."

최대한 담담하게 꺼낸 대답이었다. 새벽에 나가 밤늦게 지쳐 돌아오던 그 얼굴을 나는 계속 봐 왔으니까. 돈보다, 그 얼굴이 편안해지는 쪽을 택하고 싶었다.


남편은 그렇게 회사를 정리하기로 하고 국선전담변호사 지원을 준비했다. 첫 지원은 서울. 떨어졌다. 이듬해에는 고향 근처인 대구로 다시 지원했다. 양가 부모님도 가까이 계시고, 어린아이들 키우는 데 도움도 받을 수 있으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면접 날, 면접관들이 이력서를 넘기며 서로 눈을 마주쳤다고 한다.

"대기업 다니다가 그만두고 국선전담을 지원하셨네요? 보통은 반대로 가려고 하는데, 특이하시네요."

동료나 친구들에게서도 비슷한 질문이 계속 따라왔단다.

"너야 그럴 수 있다 쳐. 근데 부인이 그러자고 했어? 허허, 그게 더 신기하네."

그 얘기를 전해 듣고 나는 한참을 웃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둘러 대구로 짐을 옮겼다. 남편은 반토막 난 벌이 대신, 훨씬 많은 시간을 벌어 왔다. 낮에도 얼굴을 보고, 함께 육아하는 날들이 시작됐다. 자기 신념과 돈을 맞바꿀 수 있는 사람. 나는 지금도 그런 남편을 존경한다.


그런데 그 무렵, 남편에게는 말하지 않은 생각 하나가 내 안에서 조용히 자라고 있었다.

'외벌이만으로는 빠듯할 수도 있겠다. 아이가 아직 어려서 내가 나가 일할 수는 없으니, 집에서 할 수 있는 걸 해 보자. 남편이 벌어 오는 돈은 정해져 있으니, 그 돈을 불리는 건 내가 연구해 보자.'


밤에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노트북을 켜고 지도 화면을 열었다. 몸은 대구 어느 아파트 거실에 있는데, 눈은 경기도 어딘가의 골목을 훑고 있었다. 예전에 살았던 동네, 잘 아는 지역, 그 언저리의 아파트들을 밤마다 하나씩 클릭해 봤다.

경매회사에서 배운 것들, 중개사 공부하며 쌓은 지식들. 그걸 그냥 썩혀 둘 수는 없었다. 남편 신용이 좋으니, 그걸 활용해 대출을 최대한 받아서라도 투자할 만한 아파트를 찾아보자 싶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혼자 조용히 그 화면들을 들여다보던 밤들. 남편이 사표를 쓰던 그 무렵, 나는 그렇게 지도를 펼쳤다. 나의 진짜 부동산 공부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6화여덟 번의 이사, 여덟 번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