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전체는 아니지만, 한 칸이라도 붙잡고 싶었다
김승호 회장님의 《돈의 속성》을 읽다가 한 문장에서 눈이 멈췄다.
"지하철 역세권의 첫 번째 건물을 산다."
그 문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물론 그 분은 건물을 통째로 사는 이야기겠지만, 나도 모르게 혼자 생각했다.
‘나는 건물 한 채는 무리지만... 상가 한 칸이라도 어디 없을까?’ 스케일은 한참 다르지만, 그 개념 자체는 내 안에 콱 박혔다.
마침 그 무렵 나는 대구 지하철 2호선이 지나는 00역 근처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지하철역 출구 바로 앞에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7층짜리 신축 건물이 있었는데, 매일 지하철을 이용하러 지나다니면서도 그냥 스쳐만 지나갔었다. 상가들이 계속 비어있다는 것도 알고는 있었지만, 그전엔 별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역세권 첫 번째 건물"이라는 말을 마음에 품고 나니, 갑자기 그 건물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디보자…1층엔 카페, 약국, 핸드폰가게, 편의점 등등등….2층엔 은행, 3층은 한의원, 7층은 스크린 골프네? 5층은 치과예정이라고 되어있고, 4층은? 빈건가? 6층은 뭐지?’ 혼자 생각만 하고 기웃거리던 어느날, 하루는 그 건물 1층에 "분양문의"라고 붙어 있는 부동산에 무작정 들어갔다.
"여기 상가에 4층은 왜 이렇게 비어있는 거예요?"
"아, 이거 사실 사연이 있어요."
건설사 관계자를 겸하고 있다는 사장님이 신이 나서 설명을 시작했다. 코로나 시기라 거리에 사람이 없었던 것도 있지만, 원래 건설사 쪽에서 그 자리에 병원을 넣으려고 일반인에게는 공개도 안 하고 갖고 있었단다.
"근데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서, 이제 한 달도 안 됐어요, 일반인한테 푼 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혼자 마음속으로 흥분했다. '세상에, 풀리자마자 내가 온 거야?' 지금 생각하면 분양하시는 분 화술이 보통이 아니었다 싶은데, 그때는 뭔가 운명적인 타이밍처럼 느껴졌다. 남이 채가기 전에 잡아야 한다는 조급함마저 슬쩍 올라왔다.
마침 경기도 아파트를 팔고 남은 차액이 있었다. 이 돈으로 현금흐름 나오는 곳에 투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그러니 이 타이밍이 나한테는 유독 특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혼자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 집으로 돌아와, 마치 보물이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남편을 재촉했다.
"여보, 나 좋은 물건을 하나 발견한 것 같아!. 얼른 같이 가서 보자."
평소 같으면 내 설레발에 브레이크를 거는 쪽은 늘 남편이었다. 근데 이번엔 의외였다. 물건지인 4층에 올라가서 통창으로 훤히 트인 전경을 보더니, 남편 표정이 스르르 풀렸다.
"어... 여기 뷰는 진짜 괜찮네."
“그래, 여기 건너편으로 도시개발계획도 잡혀있대, 이거 해 볼까? 대출도 받아야하니 내가 허리띠 좀 더 졸라메 볼게!”
그때부터 우리는 은행에 들러 대출을 알아보고, 자금 여력과 상환 기간을 계산해봤다. 대출 60% 정도, 이자는 저금리 시절이라 다행히 2%대, 고정금리로. 나머지는 아파트 판 차액을 더하면 붙어있는 호실로 40평짜리 두 개, 총 80평을 살 수 있었다.
문제는 딱 하나였다. 이 자리가 2년 넘게 공실이었다는 것.
대출부터 내고 이자는 나가는데 공실이 계속되면, 그야말로 돈 먹는 하마가 될 수도 있었다. 그 걱정을 그대로 전달했더니, 분양회사 쪽에서 공실 기간 이자 명목으로 1천만원을 더 빼줬다. 믿거나 말거나 한 협상이었지만, 그 한마디에 마음이 좀 놓였다. 그렇게 우리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계약은 했는데,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었다. 공실을 채워야 했다.
나는 A4용지를 꺼내 타자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경산 일대 병원 원장님들에게 돌릴 전단지였다.
"초역세권 신축 건물, 80평 점포. 1만 세대 주거단지로 발전할 역세권 개발지역, 좋은 입지를 선점하세요!"
병원 오픈 시간 전에 직접 돌릴 각오까지 하고 있었다.
"당신, 이렇게까지 하려고?" 남편이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응. 새벽에 운동한다 생각하고 조금씩 돌려보려고."
전단지 인쇄까지 다 마쳤을 무렵, 부동산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사모님, 00생명 쪽에서 연락이 왔는데요. 역세권 근처로 사무실 자리 보다가, 그 건물 그 층을 보셨대요. 입점하고 싶다고요."
운명의 장난처럼 계약을 완료한 지 딱 한 달 만에, 대형 보험회사와 임대차계약서를 쓰게 됐다. 전단지는 결국 한 장도 돌리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도 운이 좋았던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운도, 그 자리가 역세권 첫 번째 건물이었기 때문에 따라온 거였다. 상가는 위치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물이 조금 낡았어도, 권리금이 좀 붙었어도, 유동인구가 확실한 자리를 택하는 게 결국 답이라는 걸 그때 몸으로 배웠다.
언제 또 공실이 생겨서 전단지를 다시 만들게 될지는 모른다. 그래도 나의 '지하철 역세권 첫 번째 건물'은 아직까지 순항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