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대구, 마음은 일산
남편은 국선변호사 일에 적응해 가고 있었고, 나는 두 딸의 재롱을 보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몸은 대구에 있어도,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밤낮없이 지도 앱을 켜 놓고 경기도 아파트를 뒤졌다. 역세권인지, 강남까지는 얼마나 걸리는지, 신축 대단지에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인지. 나름의 체크리스트를 하나씩 대어 보는데, 이상하게 자꾸만 손가락이 멈추는 동네가 있었다. 일산이었다.
일산은 나에게 낯선 도시가 아니었다. 남편이 사법연수원을 다니던 곳이라, 연애 시절 데이트 삼아 자주 갔다. 넓은 호수공원을 따라 강아지와 산바카라하는 사람들, 멋진 운동복 차림으로 조깅하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었다. '와, 여기 꼭 외국 같다. 나도 이런 데서 한번 살아 보고 싶다.' 그 장면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러다 어느 날, 백석역 근처의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날부터 며칠 동안 지도와 로드뷰를 들여다보고, 부동산 카페에서 그 아파트 이름이 들어간 글이란 글은 다 찾아 읽었다. 마음은 점점 그 아파트 쪽으로 기울었다.
2,400세대 대단지, 59층짜리 동이 여섯 개. 63빌딩에 버금가는 높이였다. 그 웅장함이 휴대폰 화면 너머로도 느껴졌다. 건물도 세련되고 지은 지 얼마 안 됐으니, 내부도 당연히 깨끗할 거라고 나는 이미 굳게 믿고 있었다.
나는 그 아파트 근처 부동산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중개사님, 안녕하세요. OO아파트에서 가장 싸게 나온 매물 있을까요? 지금 가진 돈이 많지 않아서요. 저층이어도 좋으니까 제일 저렴한 걸로 나오면 꼭 연락 주세요."
이 집 저 집, 이 사무소 저 사무소. 휴대폰 연락처에는 어느새 부동산 사무소 번호가 한가득 쌓였다. 그 시절 나는 부동산에 전화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대장 아파트의 가장 싼 집, 그러니까 용의 꼬리라도 잡아 보겠다는 심정으로 전화를 돌리고 좋은 매물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며칠 뒤, 한 곳에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부터 단호한, 연륜이 느껴지는 여자 소장님이었다.
"사모님, 이거 하세요. 저층이고 앞에 소각장 타워가 보이긴 하는데, 그래도 물건 자체는 깔끔해요. 이 가격 밑으로는 없다고 보시면 돼요. 이것도 금방 나가요. 집주인도 너무 싸게 내놨다는 걸 알고 가격을 올리려고 하니까, 빨리 결정하셔야 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쿵쾅거렸다. 지금 안 하면 큰일 날 것 같은 다급함. 부동산 얘기만 나오면 내 심장은 늘 이렇게 요동친다.
들어 보니 전세입자가 살고 있고 전세 기간도 아직 많이 남아 있어서, 지금은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액만 있으면 이 집을 살 수 있다고 했다. '적금 넣는 셈 치고, 은행에 두는 것보다 집 한 채 사 놓는 게 낫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과정을 남편은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내 마음은 점점 다급해지는데, 남편은 늘 그렇듯 평온하고 이성적이었다.
"여보, 들었지? 지금 계약금 넣어야 할 것 같은데?"
"집을 가서 보지도 않고 산다고?"
"우리가 지금 대구에 있잖아. 일산은 너무 멀어서 당장 가 볼 수도 없고... 근데 오빠, 일산의 그 느낌적인 느낌 알지? 연수원 2년 동안 우리 추억이 쌓이던 그곳 말이야."
남편은 잠깐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아니, 어쩌면 잠시나마 그 시절 추억 속을 거닐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일단 해 보자."
그렇게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 우리는 나란히 걸으며 결심을 굳혔다.
그렇게 우리는 몸은 대구의 어느 식당에서, 떨리는 손으로 일산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에 계약금을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긴 하다. 이게 무슨 온라인 쇼핑도 아니고, 집을 직접 보지도 않고 계약금부터 넣다니. 그때는 어디 가서 말도 못 꺼낼 일이었다. 실제로 부모님이나 지인들에게는 한동안 이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 집은 4년 남짓 우리 곁에 머물다가, 제주로 내려오기 전에 새 주인을 만났다.
지금도 가끔 그때를 떠올리면 웃음이 난다. 집도 안 보고 계약금부터 걸었다니. 무모했던 건지, 용감했던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해 보라고 권할 생각도, 그러지 말라고 말릴 생각도 없다.
다만 그때의 나는, 대구의 작은 거실에서 처음으로 내 손으로 무언가를 결정해 보고 싶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