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축기를 가방에 넣고

엄마로도, 수험생으로도 반쪽씩이었던 시절

by김온유

시험 날 아침, 가방을 싸다가 나는 혼자 피식 웃었다.

수험표, 신분증, 컴퓨터용 사인펜 두 자루, 여분의 시계... 그리고 유축기, 수유 패드, 젖병.

‘이런 것도 시험 준비물이 되는구나.’

그때 나는 젖먹이 둘째를 완전 모유수유로 키우며, 동시에 로스쿨 입학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벌써 3년째. 지칠 대로 지친 나에게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도전이었다.


시험 당일 아침, 남편이 차 트렁크에 짐을 실으며 물었다.

"애들 짐도 다 챙겼어?"

"응, 기저귀 여분에, 물티슈에, 간식도."

"애들 짐이 더 많네, 시험 치는 짐보다."

그 말에 우리 둘 다 웃었다. 정말 그랬다. 차에는 시험 준비물보다 수유 준비물이 더 많았으니까.

시험장 앞에 도착해서 나는 혼자 내렸다. 남편은 뒷좌석에 두 딸을 태운 채, 근처 어딘가에 차를 대고 하루 종일 기다리기로 했다. 문을 닫기 전, 남편이 말했다.

"쉬는 시간에 연락하자. 걱정 말고 들어가."

"응, 애들 잘 부탁해."


시험이 시작되고, 나는 문제에 집중하려 애썼다. 그런데 한 시간쯤 지나자 가슴이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시계를 자꾸 힐끔거렸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나는 가방을 챙겨 뛰었다. 복도를 지나, 정문을 나가, 저 멀리 세워진 우리 차로.

문을 열자 두 딸이 나를 보고 반갑게 팔을 뻗었다. 그런데 반가워할 시간도 없었다.

"자, 시작하자." 남편이 유축기를 건네며 말했다.

그 좁은 차 안에서 우리는 손발이 척척 맞는 특수부대원 같았다. 나는 유축기를 꺼내 자리를 잡고, 남편은 큰아이 손에 과자를 쥐여 주며 작은아이를 달랬다. 작은아이는 카시트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자꾸만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그 소리가 좁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창밖으로는 다른 수험생들이 삼삼오오 나와 마지막 요약 노트를 넘기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곁눈질하며 유축기를 붙들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지금 한 줄이라도 더 보고 있는데.'

"가슴이 불어서 아팠을 텐데. 괜찮아?" 남편이 물었다.

"괜찮아... 시간이나 봐 줘. 몇 분 남았어?"

시계는 야속하게 돌아갔다. 서둘러 유축기를 정리하고, 다시 시험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무 일 없었다는 얼굴로, 한결 가벼워진 가슴으로.


점심시간에도 똑같았다. 차로 뛰고, 유축하고, 아이 얼굴 한 번 보고, 다시 뛰어 들어가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그리고 한 달 후, 결과가 나왔다.

불합격.


그 소식을 듣던 순간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이상하게 눈물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후련했다. 몸에 힘이 탁 풀리면서, 마음 한구석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마치 이 결과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괜찮아?" 남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응... 이상하지. 눈물이 안 나. 이제 정말 내려놓아도 될 것 같아."


사법시험 7년, 로스쿨 입학시험 3년. 그렇게 10년 가까이 이어 온 시험의 길에 마침내 마침표가 찍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꽃 같던 20대는 이미 지나가 있었고, 나는 어느새 30대 중반에 서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늘 반쪽짜리 엄마였고, 반쪽짜리 수험생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는 걸. "이 길은 이제 아니야"라고, 그 차 안에서 이미 말해 주고 있었다는 걸.


시험은 머리로만 하는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바카라상 앞에 앉아 조문을 외우고, 판례를 정리하고. 그런데 돌아보면, 나는 바카라상 앞에서 가장 빛나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중에 부동산을 배우면서 알게 됐다. 나는 발로 뛰고 몸으로 부딪히며 배우는 사람이었다는 걸. 현장에 가서 직접 보고, 걷고, 사람을 만나는 것. 그게 나를 훨씬 신나게 하는 방식이었다. 그제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그동안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지만 그 시험장에서의 반쪽짜리 시간들을, 나는 이제 후회하지 않는다. 포기한 게 아니라, 나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좁은 차 안에서 유축기를 붙들고 시계만 쳐다보던 그날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꼭 안아 주며 말해 주고 싶다.

"애썼어. 유축기 들고 시험 보러 다닌 거, 그거 아무나 못 해. 그리고 이제, 다른 길로 가도 돼."


10년 동안 두드린 그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그때는 그 문 하나가 내 인생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게 끝은 아니었다. 닫힌 문 앞에서 돌아선 그날부터, 내 인생의 또 다른 문들이 열리기 시작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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