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의 이사, 여덟 번의 나

역마살이 아니고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는 중입니다만

by김온유

"또 이사 간다고? 도대체 몇 번째 이사야?"

친구가 전화기 너머로 기가 막히다는 듯 물었다.


"응, 이번이 여덟 번째야."


"결혼한 지 몇 년 됐다고 여덟 번을 옮겨? 너 역마살 있는 거 아니야?"


"역마살이면 어때, 일종의 탐험이라고 해 줄래?."


농담처럼 받아쳤지만, 전화를 끊고 손가락으로 세어 보니 정말 그랬다. 결혼 10년 차에 이사를 여덟 번. 1년 3개월에 한 번꼴로 짐을 싼 셈이다. 그리고 그 여덟 곳이 저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게, 지금 돌아보면 나도 참 신기했다.


신혼 첫해, 우리는 강남역 5번 출구의 작은 오피스텔에 살았다. 그 동네는 뭐랄까, 대한민국 인프라의 끝판왕 같은 곳이었다. 쓰레빠 끌고 나가면 대형서점이 있고, 조금만 걸으면 영화관에 쇼핑몰에, 큰 병원도 지척이었다. 밤늦게 산바카라을 나가도 사람이 끊이지 않는 거리. 방 한 칸짜리 원룸이었지만, 창문만 열면 도시가 살아 숨 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듬해엔 분당 정자동으로 전세를 구해 옮겼다. 비록 녹물이 나오는 구축아파트였지만 "천당 밑에 분당"이라는 말을 그때 처음 실감했다. 아파트 단지 사이사이로 공원이 있고, 큰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주고, 그런데도 교통은 또 기가막히게 편했고, 상권도 잘 발달해 있었다. 왜 다들 분당, 분당 하는지 그 이유를 몸으로 알겠더라. 여자들이 살고 싶어 하는 동네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그 다음은 경기광주였다. 역세권에 새로 들어서는 대단지 브랜드 아파트, 우리 인생 첫 새 아파트였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던 그 순간의 설렘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에게도 이제 새 집이 생기구나." 물론 5년을 보유하다가 적절한 때에 팔아서 지금은 우리 손을 떠나갔지만 그 당시 새 집이 생겼다는 그 뿌듯함은 말로 다 못한다. 그런데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나를 그렇게 설레게 했던 33평 새 아파트보다, 녹물이 나오던 17평 구축 아파트의 가격이 훨씬 더 가파르게 올랐다는 것. 집의 컨디션보다 입지가 더 무섭다는 걸, 나는 벌어지는 시세를 보며 두 눈으로 직접 배웠다.


경기광주 다음은 대구였다. 남편이 국선전담변호사의 길을 택하면서 내려간 곳인데, 이때부터 나는 집을 보는 눈이 조금 달라졌다. 전세 대신 월세로 눈을 돌린 것이다. 목돈을 보증금으로 묶어 두는 대신, 그 돈을 다른 곳에 굴려 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돌아보면 내 안에서 '투자자의 마음'이 슬쩍 고개를 든 게 바로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지금이야 월세를 선택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때만 해도 월세로 산다는 말을 어디에도 꺼내지 못했다. 심지어 부모님께도.


대구 다음은 경산, 그리고 지금의 제주까지 왔다. 제주에는 또 완전히 다른 문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연세'라는 것이다. 1년 치 집세를 한 번에 몰아서 내는 방식인데, 처음엔 낯설었지만 살아 보니 나름 합리적이었다.

제주로 오면서 짐이 확 줄었다. 짐이 줄어드니 재밌는 일이 벌어졌다. 당연히 업체를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던 이사를, 우리 손으로 직접 해 버리게 된 것이다. 박스 몇 개, 캐리어 몇 개면 충분했다. 포장이사 비용을 아끼는 재미도 쏠쏠했다. 첫해는 숲이 많은 애월에서, 그다음은 상권이 편리한 아라동, 그리고 지금은 바닷가 옆 탑동까지. 제주 안에서도 우리는 여행하듯 살고 있다. 그렇게 채운 여덟 번의 이사였다.


"근데 이렇게 자주 옮기면 안 힘들어? 나는 이사가 세상에서 제일 귀찮은 일이던데. 돈도 돈이고." 친구가 다시 물었다.

"힘든 것도 있지. 근데 힘든 것보다 재미가 더 커.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한 건, 사는 곳을 바꿀 때마다 나도 조금씩 달라지더라는 거야."

"어떻게?"

"강남역에서는 도시의 속도를 배웠고, 분당에서는 가족이 살기 좋은 동네의 기준을 배웠지. 경기광주에서는 새집의 설렘을, 대구에서는 전세 대신 월세로 돈을 다르게 쓰는 법을 배웠고. 그리고 지금 제주에서는... 짐을 내려놓고 인생을 즐기는 법을 배우는 중이랄까?"

동네마다 나에게 하나씩, 다른 감각을 남기고 간 셈이다.


"그래서 다음엔 또 어디로 갈 건데?"

나는 웃으며 답했다.

"그건 나도 몰라. 근데 요즘 상상하는 게 하나 있긴 해."

"뭔데?"

"해외살이?"

농담처럼 웃으며 넘겼지만, 요즘 나는 종종 그 상상을 한다. 언젠가 짐을 싸서 국경 너머로 떠나는 상상. 여덟 번의 이사를 거치며 짐 줄이는 법, 새 동네에 적응하는 법, 낯선 문화를 받아들이는 법을 익혀 왔으니, 다음 이사가 훨씬 멀리 가는 거라 해도 이상하게 겁이 안 난다. 오히려 설렌다.


아이들도 어려서부터 이리저리 옮겨 다녀서인지, 전학을 자주 했는데도 곧잘 적응한다. 첫째가 고학년이 되어 남은 제주 생활 동안은 당분간 옮길 계획이 없지만, 천진난만한 둘째는 지금도 이렇게 묻는다.

"엄마, 우리 다음 학교는 어디야?"

"나중엔 외국으로 갈 수도 있어. 그러니까 영어 공부 열심히 해 둬."

농담 반 진담 반, 은근슬쩍 영어 공부 압박을 넣는 중이다.


돌아보면 이사는 단순히 주소가 바뀌는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 될 때면, 나는 답을 찾느라 제자리에 머무는 대신 사는 곳을 바꿨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환경이 바뀌면 그 안에 사는 나도 조금씩 따라 바뀌었다. 원하는 삶이 있다면, 그 삶이 있는 자리로 옮겨가 보는 것. 그게 내가 여덟 번의 이사를 통해 배운 가장 큰 교훈이다..

여덟 개의 주소에는, 여덟 명의 내가 살았다. 그리고 다음은 어느 곳에서 또 새로운 주소를 맞이하게 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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