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월 풀빌라 투자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네

효리 언니 따라 삼만리, 제주 로망이 남긴 청구서

by김온유

〈효리네 민박〉이라는 프로그램이 한창 인기를 끌던 때가 있었다. 제주에 사는 이효리 부부의 집에 게스트들이 머물며, 느긋하게 마당을 거닐고 산으로 바다로 나가 제주의 자연을 만끽하는 모습이 담겼다. 화면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숨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하, 나도 제주도에 나만의 별장 하나 있었으면…'


그 화면 속 제주가 유난히 부러웠던 건, 아마 내가 살고 있는 곳과는 분위기가 달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신혼 시절 강남역 한복판에 살 때, 창밖 하늘은 늘 희뿌옜다. 돈만 있으면 없는 게 없는 동네, 편리하기로는 최고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주말만 되면 어디론가 탁 트인 곳으로 달아나고 싶었다. 분당에 살 때도, 대구에 살 때도 마찬가지였다. 빽빽한 아파트 숲 사이에서 나는 늘 조금씩 숨이 찼다.

그러다 제주로 여행을 갈 때마다 나는 매번 무장해제되었다. 렌터카 창문을 내리면 훅 들어오던 짭조름한 바닷바람, 끝도 없이 이어진 돌담과 초록빛 밭, 고개만 들면 걸려 있는 오름의 둥근 능선. 그 앞에 서면 꽉 쥐고 있던 무언가가 스르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언제부턴가 제주는 나에게 로망이 되어 있었다.


그 로망을 품고 대구에 살던 시절, 남편과 함께 창업박람회에 간 적이 있다. 갓난쟁이 둘을 업고 또 안고 왜 거길 갔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아마 그때도 마음 한구석에서, 박람회장 여기저기에 슬로건처럼 걸려있던 "과장 말고 사장하자"의 꿈이 꿈틀거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박람회장을 두리번거리며 걷는데, 한쪽 구석의 작은 부스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제주 애월, 풀빌라 분양."

'어? 여기서 이런 숙박시설도 파나?' 신기해서 걸음을 멈췄다.

"궁금한데 한번 들어가 볼까?" 내가 남편의 옷깃을 끌었다.

"그래, 뭐 구경이나 하던지." 남편도 별생각 없이 들어가 앉았다.


담당자가 브로슈어를 펼치며 설명을 시작했다. 전국에 체인으로 풀빌라를 지어 분양하는 회사라고 했다. 양평, 제천, 제주 애월, 제주 서귀포.

"애월 쪽에도 있어요?" 내가 물었다.

"아, 애월은 이미 완판이에요. 지금 남은 건 제천 지역뿐이에요."

순간 어깨가 축 처졌다. 그런데 그 아쉬움에 기름을 붓는 게 있었다. 부스 한쪽 화면에서 계속 반복 재생되던 영상. 효리 언니가 일주서로를 차로 달리는 장면, 그 차창 밖으로 바로 이 단지가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었다.

"효리네 민박에도 나온 바로 그 집!"

그 문구 하나에 나는 완전히 마음을 뺏겼다. 아쉬운 대로 제천 물건 설명만 잔뜩 듣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오는 내내 속으로 중얼거렸다. '제주 게 남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데 며칠 후,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그날 잘 들어가셨죠? 다름이 아니라..." 목소리에 살짝 흥분이 묻어났다. "제주 애월 계약분 하나가 방금 취소됐어요. 진짜 딱 하나예요! 오늘내일 중으로 계약금 넣으시면 사모님네가 잡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분양회사의 영업멘트에 넘어간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전화를 끊고 나서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가, 갑자기 추가 합격 전화를 받은 기분이랄까.


그런데 냉정하게 따지면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우리 수중엔 돈이 없었다.

"우리 지금 여윳돈 없잖아." 남편이 먼저 현실을 짚었다.

"분양회사에서 대출을 연결해 준다고 했던 것 같은데? 한번 더 물어볼게." 나는 이미 마음이 반쯤 넘어가 있었다.

알아보니 회사 측에서 15개 동을 묶어 제주의 한 신협과 단체로 대출을 연결해 주고 있었다. 담보대출로 60%, 나머지 40%는 신용대출.

"회사에서 매달 주는 약정 수익금이면, 이자를 내고도 남긴 하네?" 내가 계산기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렇긴 한데... 괜찮을까?" 남편은 여전히 망설였다.

계산은 간단해 보였다. 매달 들어오는 약정 수익금으로 대출 이자를 내고, 남는 건 덤. 숫자만 보면 손해 볼 일이 없어 보였다. 그때 우리는 '약정'이라는 두 글자를 너무 쉽게 믿었다.


결국 우리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오로지 대출만으로 제주 풀빌라 한 채의 주인이 된 것이다. 그때는 그게 '레버리지'라는 멋진 이름의 투자인 줄만 알았다. 그 이름이 얼마나 무거운지는, 한참 뒤에야 알게 됐다.

운영 방식은 이랬다. 육지에 사는 소유주들을 대신해 분양회사가 관리인을 두고 숙소를 운영하고, 그 수익을 나눠 주는 구조.

"이자 다 내고도 매달 생활비 정도는 남는다"는 게 그들의 계산이었다.

그 말은, 딱 절반만 맞았다.


초반엔 정말 잘 굴러갔다. 제주살이 붐에 여행객이 몰렸고, 결정타는 코로나였다. 해외에 나가지 못하게 된 사람들이 국내로, 그중에서도 제주로 쏟아져 들어왔다. 여럿이 어울리는 숙소보다 독채를 찾는 분위기까지 겹치면서 예약이 꽉꽉 찼다. "우리 진짜 투자 잘한 것 같아." 그 시기엔 나도 자신 있게 그렇게 말하곤 했다.

딱 거기까지였다.

코로나가 끝나자 독채 유행도 함께 저물었다. 건물은 조금씩 낡아 갔고, 손님이 줄자 수익도 뚝뚝 떨어졌다. 성수기와 비수기, 유행을 타는 사업의 냉정한 얼굴이 그제야 보였다.

거기에 관리인 문제까지 겹쳤다. "내 집처럼 관리하겠다"던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연락이 뜸해지더니, 결국 손을 뗐다. 육지에 있는 소유주들은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 건물은 방치됐고, 초반의 화려한 홍보와 부푼 기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런데 변하지 않는 게 하나 있었다. 대출 이자는 매달 꼬박꼬박 빠져나간다는 것.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보다 못한 우리는 얼마 전 큰 결심을 했다.

"우리 이제 이거, 남한테 맡기지 말고 직접 해 볼까?" 내가 먼저 꺼낸 말이었다.

"그럴까? 어차피 우리도 이제 제주에 있으니까." 남편도 고개를 끄덕였다.

위탁 관계를 끊고, 직접 리모델링에 뛰어들기로 했다. 지금 이 상태로는 팔고 싶어도 팔리지 않는다. 숙박형 수익 물건은 매출과 수익이 좋아야 사려는 사람도 나타나니, 정상화가 무엇보다 급했다. 매달 나가는 대출 이자보다 더 많은 수익을 만드는 것, 그게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숙제다. 농어촌 민박업이라는 새 이름표를 달고, 우리는 다시 공사하고, 홍보하고, 운영을 준비하고 있다.


돌아보면 로망은 공짜였다. 하지만 그 로망을 사는 데에는 청구서가 따라왔고, 우리는 그 청구서를 지금도 매달 받고 있다. 그래도 이번에는 남의 손이 아니라 우리 손으로, 이 집을 다시 일으켜 보려 한다. 로망으로 산 집을, 이제는 현실로 살려 내는 중이다.

제주 풀빌라 투자, 역시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 그 '아무나'가 아닌 사람이 되어 보려 애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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