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읽는 시작법 2

이창동 감독의 <시>

by박민영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2010)는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꼭 보아야 할 작품이다. 이 영화는 제63회 칸 영화제 각본상을 비롯하여 국내외 여러 영화제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한국 영화사에서도 예술적 성취가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힌다. 비록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시가 어떻게 삶과 만나고 인간을 변화시키는지를 이처럼 깊이 있게 그려 낸 영화는 흔치 않다.


그러나 <시>는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이창동 감독의 작품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현실의 어두운 이면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영화는 실제로 일어났던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영화는 사건 자체를 극적으로 재현하기보다, 그 사건이 남긴 상처와 죄바카라감, 그리고 인간의 존엄을 묵묵히 응시한다.


영화 <시>를 보고 나면 불편함과 슬픔, 그리고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여운이 남는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영화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고통과 비극 앞에서 과연 시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영화에서 주인공 미자가 시를 써 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시를 쓴다는 것이 단순히 아름다운 문장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타인의 삶에 다가가는 일임을 깨닫게 된다.


영화를 보기 전에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마지막에 낭독되는 시는 주인공 미자가 마침내 완성한 작품이다. 따라서 영화를 감상할 때에는 '미자는 왜 시를 쓰려하는가', '그녀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깨닫게 되는가'를 염두에 두면 영화의 의미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 이창동 감독의 <시> 포스터


주인공 미자를 연기한 배우는 윤정희이다. 그는 오랫동안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로 사랑받았으며, 섬세하면서도 지적인 연기로 많은 문예영화에 출연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결혼한 이후에는 비교적 활동이 뜸했지만, <시>를 통해 다시 스크린으로 돌아와 훗날 자신의 대표작이 될 작품의 주인공을 연기했다.


그가 연기한 영화 속 미자는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 가는 인물이다. 훗날 알려진 바와 같이 윤정희 역시 이 작품을 촬영하던 무렵 치매 초기 증상을 겪고 있었고, 영화를 마친 뒤 병세가 점차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영화를 다시 보면, 기억을 붙잡으려 애쓰는 미자의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배우가 자신의 미래를 예감이라도 하듯 혼신을 다해 연기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시>는 더욱 특별한 울림을 남긴다.


영화에는 반가운 얼굴도 등장한다. 문화센터에서 시를 가르치는 김용탁 시인 역은 실제 시인인 김용택이 맡았다. 영화 속 그의 시 강의는 영화 전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그는 시란 사물을 유심히 바라보는 데서 시작하며, 시상은 특별한 곳이 아닌 우리의 일상 속에 숨어 있다고 말한다. 또한 시는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한 편의 작품으로 완성해야 하는 실천의 예술임을 강조한다. 영화를 감상할 때에는 미자의 이야기뿐 아니라 김용탁 시인의 강의에도 귀를 기울여 보기를 권한다. 시인의 강의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시의 본질'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상황적 아이러니


영화 <시>는 첫 장면부터 삶의 아이러니를 암시한다. 평화롭게 흐르는 강물 위에 한 소녀의 시신이 떠내려온다. 아이들이 강가에서 뛰노는 평범한 풍경과 죽음의 장면이 한 화면 안에 놓이면서 관객은 깊은 충격을 받는다.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워야 할 소녀의 시간이 가장 비극적인 모습으로 이미 끝난 것이다. 이 첫 장면은 아름다움과 추함, 생명과 죽음이 맞닿아 있는 영화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미자라는 노년의 여성이다. 종욱이라는 손자를 홀로 키우며 생활보호 대상자로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외출할 때면 정성껏 옷을 차려입고, 아름다운 꽃을 보면 발걸음을 멈춘다. 시를 쓰기 위해 작은 수첩에 시상을 메모하기도 한다.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소녀 같은 감수성과 삶의 품위를 잃지 않는다.


이러한 미자가 문화센터 시 창작 교실에 등록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첫 수업에서 김용탁 시인은 "사과를 제대로 보라."라고 말한다. 단순히 사과의 모양을 훑어보는 것이 아니라, 정말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어서 오래 바라보라는 것이다. 시는 사물을 유심히 바라보는 데서 출발하며, 시인은 사물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라고도 말한다. 이 말은 이 바카라에서 계속 강조해 온 '관찰하기'와도 맞닿아 있다. 시는 눈앞에 있는 사물을 오래 바라보고, 질문하고,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을 발견하려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시를 쓰고 싶었던 미자는 사과를 이리저리 돌려 보기도 하고, 손에 올려놓고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문득 "사과는 보는 것보다 먹는 게 더 좋다."며 보기만 하던 사과를 여느 때처럼 깎아먹는다. 이 소박한 장면은 결국 시는 사물의 본질을 경험하는 데서 태어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영화는 평온해 보이는 일상 속에서 삶의 아이러니를 하나씩 드러낸다. 이 영화를 이해하는 핵심 개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상황적 아이러니’인데, 상황적 아이러니란 우리가 기대하는 방향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나거나, 서로 모순되는 상황이 공존하는 것을 말한다. 이창동 감독은 영화 곳곳에 이러한 아이러니를 배치하여 인간 삶의 비극과 모순을 표현한다.


가장 두드러지는 아이러니는 미자 자신에게 있다. 미자는 시를 쓰기 위해 언어를 배우고 아름다운 표현을 찾으려 하지만, 동시에 알츠하이머로 기억과 언어를 조금씩 잃어간다. 시인은 기억을 통해 삶을 되살리고 언어를 다듬는 사람이다. 그런데 미자는 그 기억과 언어가 무너져 가는 상황 속에서 시를 쓰려한다. 시를 쓰기 어려운 조건에 놓인 사람이 간절하게 시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아이러니도 있다. 문화센터 시 창작 교실에서 시 쓰기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이라고 배운다. 그러나 세상을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아름다움이 아닌 추악한 현실을 먼저 마주하게 된다.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시선은 오히려 인간의 가장 깊은 상처와 만나게 된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구조이다. 이창동 감독은 아름다움과 추함, 기억과 망각, 시와 현실처럼 서로 대립하는 요소들을 끊임없이 충돌시키며, 그 긴장 속에서 한 편의 시가 탄생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결국 시란 현실을 외면한 채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일이 아니라, 삶의 모순과 고통을 끝까지 바라보는 데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공감과 애도, 그리고 속죄


영화 <시>의 주제는 공감과 애도, 그리고 속죄이다. 영화는 타인의 고통 앞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묻는다. 미자의 시 쓰기는 결국 이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가장 섬뜩한 장면은 종욱의 일상이다. 그는 사건의 가해자이지만 영화는 그를 악인처럼 그리지 않는다. 반찬 투정을 하고, 텔레비전을 보고, 동네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는 여느 평범한 소년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그러나 바로 그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더욱 두렵다. 장례식장을 다녀온 미자가 희진의 사진을 식탁 위에 올려놓지만 종욱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도 죄바카라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개념이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말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다. 아렌트는 거대한 악이 특별한 악인의 손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기를 멈춘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바카라임을 외면할 때 발생한다고 보았다. 악은 괴물 같은 얼굴보다 오히려 익숙한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종욱의 무감각은 이러한 '무사유(thoughtlessness)'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렸는지 끝내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가 보여 주는 악은 극단적인 폭력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삶과 연결하지 못하는 무감각한 일상이다.


영화는 이러한 무감각이 종욱 개인의 문제만이 아님을 이어서 보여 준다. 피해 학생의 부모와 합의를 논의하는 자리에 모인 가해 학생들의 아버지는 모두 평범한 가장들이다. 특별히 험악하거나 폭력적으로 보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친절한 이웃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관심을 두는 것은 피해자의 고통이 아니라 아들의 미래이다. 사건의 진실이나 희진이 겪었을 절망에는 거의 관심이 없고, 얼마의 합의금을 주면 사건을 무마할 수 있을지만 계산한다. 심지어 희진을 비하하는 말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피해자의 삶은 지워지고, 가해자의 미래만 남는다. 종욱의 무감각이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 전체의 사고방식 속에서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장면에서 미자는 다른 사람들과 분명하게 구별된다. 그 역시 가해 소년의 가족이지만 끝내 사건을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지 못한다. 다른 아버지들이 합의금만 이야기하는 동안 미자는 자리를 뜬다. 영화는 투명한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미자와 아버지들을 대비시킨다. 같은 공간에 있는 듯하지만, 그들은 서로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해 있다.


미자가 향한 곳은 희진의 추도식이 열리는 성당이다. 가해 학생의 가족 가운데 장례 미사에 참석한 사람은 미자뿐이다. 그는 특별한 말을 하지 않는다. 희진의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고 뒷 자리에 조용히 앉아 희진의 친구로 보이는 또래의 어린 소녀들을 응시하기도 한다. 미자는 성당을 나오며 작은 액자에 담긴 희진의 사진을 가져온다.


이후 미자의 삶은 조금씩 희진의 삶과 겹쳐지기 시작한다. 희진이 다녔던 학교를 찾아가고, 교실을 둘러보고,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를 찾아간다. 마지막으로 희진이 몸을 던졌던 다리 위에 선다. 희진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그 아이의 삶을 자신의 마음속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문학 치료에서 말하는 공감은 타인의 삶을 자신의 삶처럼 상상하고, 그의 감정을 내면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미자는 바로 이러한 공감의 과정을 통과한다. 처음에는 사건을 손자의 문제로 받아들이지만, 점차 희진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게 된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장면이 하나 있다. 희진의 집을 찾아가는 길에 미자는 길가에 떨어진 살구를 발견한다. 잘 익은 살구를 한입 베어 물며 수첩에 이렇게 적는다.


살구는 스스로 땅에 몸을 던진다.
깨어지고 밟힌다.
다음 생을 위하여.


이 메모는 영화 전체를 비추는 하나의 상징이다. 살구는 떨어지고, 으깨지고, 흙 속으로 스며들면서 새로운 생명을 준비한다. 미자가 기록한 살구의 운명은 곧 그녀 자신의 삶을 암시하는 듯하다.


비를 맞으며 시작 노트를 펼쳐 든 장면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노트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끝내 흘리지 못한 미자의 눈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시를 쓰지 못한다. 공감은 시작되었지만, 아직 애도가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가장 논쟁적인 장면은 미자가 김 노인을 다시 찾아가는 부분이다. 그는 이전부터 미자에게 성적인 욕망을 드러냈던 인물이다. 미자는 한 차례 그의 요구를 거절했지만, 희진의 흔적을 따라다닌 뒤 다시 그의 집을 찾는다. 며칠 뒤 미자는 김 노인에게 오백만 원을 요구하는 메모를 쓴다. 종욱의 합의금으로 사용할 돈이다.


이 장면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그 가운데 하나는 미자가 자신의 몸을 ‘스스로 내던져’ 희생함으로써 손자의 죄를 대신 짊어지려 했다는 해석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돈으로 죄를 덮으려는 세상의 방식을 역설적으로 되돌려 주는 장면으로 읽을 수도 있다. 어떤 해석을 선택하든 중요한 것은 미자가 더 이상 자신의 삶과 희진의 삶을 분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녀는 희진의 상처를 자신의 상처로 받아들이고, 그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아름다운 시를 쓰기 위해 준비했던 시작 노트가 결국 돈을 요구하는 메모장으로 바뀐다는 사실이다. 아름다움을 기록하려던 노트가 현실의 가장 추한 문제를 기록하는 노트가 된 것이다. 이것 역시 영화가 끝까지 놓지 않는 아이러니이다.


영화 후반부에는 박 형사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걸죽한 농담과 괄괄한 행동으로 처음에는 비호감의 인물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고 미자를 위로하는 할 줄 아는 사람으로 드러난다. 겉으로는 점잖고 친절했던 가해 학생의 아버지들이 끝까지 자기 자식만을 생각하던 것과 비교된다. 이 역시 영화가 의도적으로 배치한 또 하나의 아이러니다. 사람의 진실은 겉모습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의해 드러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영화는 미자가 손자 종욱을 위해 마지막 식사를 사먹이고, 목욕을 시킨 후 발톱을 깎아주는 모습을 담담하게 보여 준다. 이어 딸을 집으로 부른 뒤 홀연히 사라진다. 영화는 그 이후의 과정을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종욱이 경찰에 연행되는 장면을 통해 미자가 결국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잘못을 덮어 주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마주하도록 이끄는 일이라는 사실을 마지막까지 행동으로 보여 준다.


그 모든 과정을 지나서야 비로소 미자는 한 편의 시를 완성하게 된다. 공감은 애도로, 애도는 속죄로 이어지고, 그 긴 여정의 끝에서 마침내 한 편의 시가 탄생한 것이다.


미자의 시


미자의 시는 공감과 애도, 그리고 속죄의 시간을 견뎌 낸 한 인간의 삶이 응축된 결과이다.


문화센터 시 창작반에는 스무 명이 다 되는 수강생이 함께했다. 수업 시간마다 저마다의 아름다운 기억과 잊지 못할 추억을 들려주었다. 어린 시절의 풍경, 가족과의 기억,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생생하게 이어졌다. 하지만 영화가 끝날 무렵 실제로 한 편의 시를 완성한 사람은 미자뿐이다.


이 장면은 시 쓰기에 대해 중요한 사실 하나를 일깨워 준다. 마음속에만 있는 시는 아직 시가 아니다. 시는 언어가 되어야 하고, 종이 위에 적혀야 하며, 누군가에게 읽혀야 한다. 아무리 깊은 감동과 아름다운 기억도 끝내 쓰이지 않는다면, 그리고 읽히지 않는다면 아직 시라고 할 수 없다.


이 점에서 영화 속 김용택 시인의 시론은 이창동 감독의 문학관과도 맞닿아 있다. 시는 머릿속에 머무는 관념이 아니라 삶 속에서 실천되는 행위이다.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자신의 삶을 끝까지 바카라임지려는 태도가 시 쓰기의 출발점이라면, 시 쓰기의 마무리는 혼자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나누는 일이다.


미자가 영화의 마지막에 완성한 작품은 「아녜스의 노래」이다. 추도 미사에 참석했던 미자는 희진의 세례명이 아녜스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녜스의 노래'란 곧 희진의 노래였다. 이 시는 실제로 이창동 감독이 직접 쓴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소설가로 먼저 이름을 알렸지만, 이 영화에서는 한 편의 시를 통해 영화 전체를 하나의 서정시처럼 완성해 낸다.


영화에서「아녜스의 노래」는 미자의 독백으로 시작하지만, 중반부에 이르면 한 앳된 소녀의 목소리로 변모한다. 희진의 음성이다. 「아녜스의 노래」에서 미자는 희진의 페르소나를 선택하고 그 아이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시작법의 문제가 아니다. 영화 내내 이어졌던 공감과 애도의 과정이 마침내 시 속에서 완성되는 순간이다. 미자는 희진이 걸었을 동네 길을 따라 걷고, 그가 바라보았을 풍경을 바라보며, 내면의 절망과 외로움을 자신의 마음속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마침내 희진의 목소리로 한 편의 시를 쓰게 된 것이다.


문학치료의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공감의 가장 깊은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상대를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의 고통을 자신의 내면으로 받아들이고 그의 언어를 자신의 언어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미자는 끝내 희진과 하나가 되고, 그 순간 비로소 시가 완성되었다. 그래서 「아네스의 노래」는 미자의 작품이자 희진의 노래이기도 하다.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한 생명의 목소리를 진실한 공감을 통해 다시 세상으로 불러오는 일. 시는 그렇게 타인의 삶을 다시 살아 움직이게 만든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는 환하게 웃는 소녀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것이 실제 희진의 모습이었는지, 혹은 미자의 상상인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미소는 관객에게 용서와 화해를 암시한다. 영화는 어떤 해답도 제시하지 않지만, 한 편의 시가 긴 설명보다 더 깊은 울림으로 우리의 마음에 다가온다.


<시>는 끝까지 아이러니의 영화이다. 아름다운 시를 쓰고 싶은 사람은 기억을 잃어 가고, 아름다움을 찾으려 할수록 세상의 추악함과 마주한다. 가장 순수해야 할 아이들은 가장 잔인한 폭력을 저지르고, 평범한 어른들은 그 죄를 감추려 한다. 그러나 바로 그 모순과 균열 속에서 한 편의 진실한 시가 태어난다.


이 바카라에서 우리는 시를 쓰는 여러 방법을 함께 살펴보았다. 사물을 관찰하고 상상하는 법을 익혔으며, 화자와 청자를 설정하는 방법도 배웠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장면도 함께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 모든 시작법보다 앞서는 것은 한 가지이다. 타인의 삶 앞에 오래 머물 수 있는 마음이다. 상대의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의 언어는 시가 된다.


미자는 한 편의 시를 남겼다. 그러나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한 편의 작품만이 아니다. 한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언어로 품어 내고, 그 슬픔을 끝내 외면하지 않았던 한 인간의 삶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시였다. 어쩌면 우리가 평생 써야 할 시도 바로 그런 시일 것이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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