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상상력

에밀리 브론테, 박노해, 유안진, 이해인의 시

by박민영

문학치료의 관점에서 상상력은 현실을 새롭게 바라보고 견뎌 내는 내면의 힘이다. 영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ë, 1818-1848)는 이러한 상상력의 치유적 가능성을 아름답게 보여준 작가이다.


에밀리 브론테는 『제인 에어』를 쓴 샬럿 브론테, 『아그네스 그레이』의 작가 앤 브론테와 함께 ‘브론테 자매’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세 자매는 영국 북부 요크셔의 황량한 벌판이 내려다보이는 목사관에서 성장했다.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황무지와 고독한 삶은 이들의 작품 세계를 형성한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에밀리 브론테는 생애 단 한 편의 장편소설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을 남겼는데, 오늘날 영문학을 대표하는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흔히 『폭풍의 언덕』이라는 제목 때문에 폭풍우가 몰아치는 언덕을 떠올리지만, 원제인 Wuthering Heights는 작품의 주인공들이 성장한 언쇼 가의 집 이름으로 '거센 바람이 부는 높은 곳'이라는 뜻이다. 이 집을 둘러싼 거친 자연과 인간의 격정은 에밀리 브론테의 내면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애밀리 브론테로 알려진 초상화. 1833년 경 오빠인 브란웰이 제작했다.


에밀리 브론테는 소설뿐 아니라 시를 통해서도 자신의 내면을 깊이 탐색했다. 「상상력에게」는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제목부터 독특하다. 시인은 상상력을 하나의 인격처럼 불러 세우고, 오랜 친구에게 말을 건네듯 대화를 이어 간다.


긴 하루의 근심과, 아픔에서 아픔으로 세상 변하는 것에 지쳤을 때,
길을 잃어 절망에 빠지려 할 때, 그대의 다정한 음성이 나를 다시 부른다.
오, 나의 진실한 친구여,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그대가 그런 어조로 말할 수 있는 한!
그 없는 세상은 그토록 희망이 없다니. 그 안의 세상을 나는 두 배로 소중히 여긴다.
속임수, 증오, 의심, 그리고 차가운 의혹이 결코 일어나지 않는 세상.
그대와 내가, 그리고 자유가,
반박할 수 없는 권위를 지니는 곳.

무슨 문제가 되리, 사방에, 위험과 죄와 어둠이 있고,
그저 우리 가슴속에 밝고 고요한 하늘을 지녀,
겨울이라고는 전혀 알지 못하는
태양의 수만 빛으로 따뜻하기만 하다면?
물론 이성은 자연의 슬픈 현실에 종종 불평하기도 하겠지.
그리고 아픈 가슴을 향해 말하기도 하겠지 소중한 꿈들은 늘 분명 헛되어져 버린다고.
그리고 진리는 이제 막 피어난 환상의 꽃들을
무례하게도 짓밟아 버릴 수도 있어.
그러나, 그대는 늘 그곳에 있어, 서성이는 환상을 되가져 오고,
엉망이 되어 버린 봄 너머 새로운 영광을 숨 쉬며, 죽음에서 아름다운 생명을 불러,
성스러운 목소리로, 그대의 세상처럼 빛나는,
현실의 세상에 대해 속삭이지
나는 그대의 유령 같은 축복을 믿지 않으나, 그러나 저녁 고요한 시간,
결코 사그라지지 않는 고마움으로 그대, 인자한 힘을 환영한다네.
인간 근심의 확실한 위무자.
희망이 절망일 때, 더 다정한 희망!

-에밀리 브론테, 「상상력에게」 전문


시 제목에 나와 있듯이 '그대'는 화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상상력이다. 시인은 상상력을 의지할 수 있는 벗으로 인격화한다. 이 시에서는 상상력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이항대립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현실은 근심과 연이은 아픔으로 점철된 세계다. 그 속에서 화자는 길을 잃고 절망과 외로움을 느낀다. 그때 상상력은 ‘다정한’ 음성으로 그를 부른다. 상상력은 속임수와 증오와 의심과 의혹이 결코 일어나지 않는 세계이다. 이는 현실이 그와는 정반대의 세계임을 드러낸다. 상상력 안에서 나의 존재와 자유가 권위를 지닌다는 것은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의미이다. 상상력과 현실의 대비는 계속 이어진다. 사방에 위험과 죄와 어둠이 있지만, 상상력의 세계는 밝고 고요한 하늘이 있는 저녁이며 따뜻한 태양이 빛난다.


이런 상상력이 만든 세계에 제동을 거는 것은 ‘이성과 진리’이다. 이성은 자연의 슬픈 현실에 종종 불평을 하고 소중한 꿈들이 분명 헛되어져 버림을 알려준다. 게다가 진리는 환상이 만든 꽃들을 짓밟아 버릴 수 있음을 경고한다. 이성과 진리가 상상력의 세계가 만든 자연과 꿈, 그리고 환상과 다시 대립되는 것이다.

상상력은 그렇게 파괴된 자연과 꿈, 그리고 환상을 다시 복원한다. 엉망이 되어버린 봄 너머로 새로운 영광이 숨 쉬며, 죽음에서 아름다운 생명을 부른다. 그리고 성스러운 목소리로 속삭인다. 이 목소리에 대해 화자는 말한다.


나는 그대의 유령 같은 축복을 믿지 않으나, 그러나 저녁 고요한 시간,
결코 사그라지지 않는 고마움으로 그대, 인자한 힘을 환영한다네.
인간 근심의 확실한 위무자.
희망이 절망일 때, 더 다정한 희망!


상상력은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대신 현실을 견딜 수 있는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준다. 그래서 시인은 상상력을 '인간 근심의 확실한 위무자'라고 부른다. 절망 속에서도 다시 희망을 꿈꾸게 하는 힘, 그것이 상상력이다.


에밀리 브론테의 작품은 상상력을 통해 고독과 현실을 견디려는 내면의 움직임을 보여 준다. 그는 병약한 몸과 고독한 환경 속에서 평생을 보냈고, 서른 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상상력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끝없이 확장했고, 그 힘으로 『폭풍의 언덕』이라는 불멸의 작품을 남겼다. 시에서 말한 대로 상상력은 현실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에게 마련한 또 하나의 삶의 공간이었다.


문학치료에서 상상력은 현실의 상처를 새로운 의미로 바라보게 하는 창조적 힘이며, 닫혀 있던 마음에 또 하나의 가능성을 열어 주는 정신의 능력이다. 우리는 문학을 읽고 쓰는 동안 현실을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에밀리 브론테가 상상력을 '진실한 친구'라고 부른 것처럼 상상력과 함께라면 혼자서는 견딜 수 없는 삶을 잘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상처와 위로의 시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희망을 통해 다시 일어서고, 어떤 사람은 침묵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또 어떤 사람은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삶을 이어 간다. 좋은 시는 이러한 다양한 치유의 방식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다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네가 꽃피워 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힘들고 앞이 안 보일 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하늘처럼 생각하는
너를 하늘처럼 바라보는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가 닿은 너의 하늘을 보아
-박노해, 「너의 하늘을 보아」 전문


박노해의 「너의 하늘을 보아」는 절망의 한가운데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시이다. 시인은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라고 말한다. 쓰러짐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다시 일어설 이유가 있다는 뜻이며, 길을 잃었다는 것은 아직 찾아야 할 길이 남아 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시는 반복해서 "너의 하늘을 보아."라고 말한다. 여기서 하늘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끝까지 믿어 주는 내면의 가능성을 상징한다. 문학치료에서 중요한 것은 상처를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그 상처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절망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좀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침묵하는 연습을 하고 싶다.
그 이유는 많은 말을 하고 난 뒤일수록
더욱 공허를 느끼기 때문이다.
많은 말이 얼마나 사람을 탈진하게 하고
얼마나 외롭게 하고 텅 비게 하는가?

나는 침묵하는 연습으로
본래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내 안에 설익은 생각을 담아두고
설익은 느낌도 붙잡아 두면서
때를 기다려 무르익는 연습을 하고 싶다.
다 익은 생각이나 느낌일지라도
더욱 지긋이 채워 두면서
향기로운 포도주로
발효되기를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란다.
침묵하는 연습,
비록 내 안에 슬픔이건...
더러는 억울하게 오해받는 때에라도
해명도 변명조차도 하지 않고
무시해 버리며 묵묵하고 싶어 진다. 그럴 용기도 배짱도 지니고 살고 싶다.

-유안진, 「그리운 말 한마디...」 전문


유안진의 「그리운 말 한마디…」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마음을 위로한다. 이 시는 말보다 침묵을 선택한다. 시인은 침묵하는 연습을 통해 ‘본래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는 상처를 입으면 서둘러 해명하고 변명함으로써 이해받으려 한다. 그러나 모든 상처가 즉시 말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감정은 충분한 시간을 거쳐야 비로소 자신의 언어를 얻는다. 시인은 설익은 생각과 감정을 오래 품어 두었다가 포도주처럼 천천히 발효되기를 기다린다. 문학치료 역시 성급한 해결보다 기다림의 시간을 존중한다. 침묵은 회피가 아니라 내면을 성숙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언어이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 나를 위로할 필요가 있네


큰일 아닌데도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죽음을 맛볼 때
남에겐 채 드러나지 않은
나의 허물과 약점들이 나를 잠 못 들게 하고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에 문 닫고 숨고 싶을 때

괜찮아 괜찮아 힘을 내라구
이제부터 잘하면 되잖아

조금은 계면쩍지만
내가 나를 위로하며 조용히
거울 앞에 설 때가 있네

내가 나에게 조금 더
따뜻하고 너그러워지는 동그란 마음
활짝 웃어주는 마음
남에게 주기 전에 내가 나에게 먼저 주는 위로의
선물이라네
-이해인, 「나를 위로하는 날」 전문


이해인의 「나를 위로하는 날」은 위로의 방향을 자기 자신에게 돌린다. 우리는 흔히 누군가가 건네는 따뜻한 말에서 위안을 얻기를 기대한다. 실제로 우리는 타인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데에는 익숙하다. 그러나 정작 스스로에게는 가혹하리만치 엄격하다.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가장 큰 상처는 자신이 만든다.


나와 가장 오래 함께 살아가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화자는 "가끔은 아주 가끔은/내가 나를 위로할 필요가 있네."라고 말한다. 그리고 "괜찮아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자신의 부족함과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그것 때문에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자기 수용의 태도이다. 문학치료에서 글쓰기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동안 우리는 상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가장 다정한 독자가 되어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문학 치료는 상처와 함께 살아가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다. 박노해의 시는 희망을 보여 주고, 유안진의 시는 기다림을 가르치며, 이해인의 시는 자기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을 일깨운다. 위로의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그 끝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돌보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시가 오래도록 사람들의 곁을 지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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