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도 죄일까?
하나님은 왜 인간에게 회개를 요구하실까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면 죄인을 얼마든지 선한 사람으로 바꾸실 수 있을 것입니다.
남의 것을 탐하는 마음을 없애고, 타인을 미워하는 감정을 지우고, 이기적인 욕심까지 제거하실 수 있겠지요.
그렇게 하면 세상은 훨씬 평화로워질 것입니다.
누구도 남을 해치지 않고, 누구도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지 않으며, 누구도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일까요?
저는 그 이유가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로봇으로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하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자유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거부할 자유도 주셨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을 자유까지 주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자유의지로 다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회개란 무엇일까요?
어린아이가 친구를 때렸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붙잡고 사과하라고 합니다. 아이는 싫다고 버팁니다.
부모가 혼을 내자 마지못해 고개를 숙입니다.
“미안해.”
사과는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미안한 마음이 생겼을까요?
오히려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부모에게 혼난 것이 분해서 친구를 더 미워할 수도 있습니다.
말로는 사과했지만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진정한 사과라고 할 수 있을까요?
회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에게 강제로 잘못을 인정하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벌이 두려워 무릎을 꿇게 할 수도 있습니다.
용서받고 싶어서 잘못했다고 말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고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회개는 자신이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고, 그 잘못으로 누가 고통받았는지 이해하고, 스스로 삶의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생각을 강제로 바꾸어 선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신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악을 저지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 선을 선택한 결과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작동하도록 만들어놓은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회개를 요구하시는 이유는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존중하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너에게 자유의지를 주었으니, 네가 그 자유로 나에게서 멀어졌다면 이제 그 자유로 돌아오너라.”
회개는 하나님이 인간을 강제로 굴복시키는 과정이 아닙니다.
인간이 하나님에게 받은 능력을 스스로 사용하는 과정입니다.
자유의지는 생각보다 무서운 능력입니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따를까요?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9장에는 재앙을 겪고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살인과 도둑질, 음행 등의 죄에서 돌아서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16장에는 하나님의 권능과 심판을 경험하고도 하나님을 비방하며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직접 목격했는데도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장면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눈앞에 나타나신다고 해서 인간의 탐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확인한다고 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끝까지 고집을 부릴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과 한마디면 해결될 일을 자존심 때문에 평생 원수로 지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쉽게 돌아섭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순간 회개합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부활 이후에도 회개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가정한다면, 어떤 사람은 1조 년이 지나도록 고집을 꺾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자유의지는 무섭습니다.
하나님을 거부할 수도 있고, 하나님에게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인간 자신이 선택해야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죄인일까요?
기독교에서는 흔히 하나님을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말합니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가르치는 교회도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주장에 근본적인 의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간이 증명할 수 있을까요?
아직 누구도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도 아닙니다.
결국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은 그 존재를 믿는 것이고, 믿지 않는 사람은 존재를 확신할 만한 근거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증명되지 않은 것을 믿지 않았다는 이유로 벌을 받는다면 어떨까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가령 어떤 사람이 평생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남의 것을 탐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을 속이지 않았으며, 자신의 욕심 때문에 누군가를 억울하게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죽어 하나님 앞에 섰다고 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믿지 않았으니 죄인이다.”
그 사람은 이렇게 되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잘못한 것입니까?”
하나님은 어떻게 대답하실까요?
저는 공의로운 하나님이라면 단순히 자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죄인이라고 단정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인간의 지적 능력과 인식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 우리 앞에 직접 나타나 자신의 존재를 누구도 부정할 수 없도록 증명해 주시지는 않습니다.
물론 성경에는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신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모든 사람이 동일한 방식으로 하나님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자신의 존재를 반드시 믿으라고 요구하신다면, 그 존재를 믿을 수 있도록 충분한 근거를 제공할 바카라임도 하나님께 있는 것 아닐까요?
인간에게 증명할 수 없는 것을 믿으라고 요구하면서 믿지 않았다고 벌하신다면, 그 바카라임을 인간에게만 돌리는 것이 과연 공의로울까요?
저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 데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원하시는 것은 자신이 창조한 세상의 섭리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으며, 자신의 욕심 때문에 타인을 해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어도 실천할 수 있습니다.
무신론자도 정직하게 살 수 있습니다. 종교가 없는 사람도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자신의 욕심을 절제하고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얼마든지 악한 일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매주 예배에 참석하면서 직원을 착취할 수 있습니다. 매일 기도하면서 거짓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으면서도 남의 것을 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누구를 더 기뻐하실까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그 뜻을 거스르는 사람일까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면서도 그 창조섭리대로 살아가는 사람일까요?
저는 후자가 하나님의 뜻에 더 가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자신을 향한 찬사가 아니라 인간의 올바른 삶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태복음 4:17)
그런데 회개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던 사람이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믿게 되는 것일까요?
교회에 다니지 않던 사람이 교회에 다니게 되는 것일까요?
물론 그런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회개의 본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회개는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다른 사람을 해치던 사람이 그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남을 속이던 사람이 정직해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억울하게 만들던 사람이 공의롭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일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돌아온다는 것이 반드시 종교적으로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뜻일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섭리에서 벗어나 살던 사람이 다시 그 섭리대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일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확신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회개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며 살아가는 사람입니까?
저는 분명히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은 인식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은 삶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면, 그 자유의지로 어떤 삶을 선택했는지가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또 하나 구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회개와 용서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용서받았다고 해서 인간이 저절로 변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평생 남의 것을 빼앗으며 살았다고 해보겠습니다.
그 사람이 용서받았다고 해서 탐욕스러운 마음이 저절로 사라질까요?
다른 사람을 괴롭히던 사람이 처벌을 면했다고 해서 갑자기 이웃을 사랑하게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용서는 죄에 대한 바카라임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문제이고, 회개는 죄를 지은 사람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원하시는 것은 단순히 죄를 용서받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다시는 같은 죄를 짓지 않는 존재로 변화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변화는 하나님이 대신해 주실 수 있는 성격의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생각을 강제로 바꾸신다면 그것은 변화라기보다 조종에 가깝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스스로 후회하고, 스스로 다른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회개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회개를 요구하시는 것은 용서할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인간을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준 자유의지를 인간 스스로 사용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앞선 글에서 저는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을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믿음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악인은 어떻게 회복될까요?
하나님이 어느 날 갑자기 악인의 마음을 선하게 바꾸어버리시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악인은 자신의 죄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 죄로 인해 다른 사람이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회개해야 합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모릅니다.
누군가는 금방 돌아설 것입니다. 누군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누군가는 하나님의 능력을 직접 목격하고도 끝까지 거부할 수 있습니다.
자유의지란 그만큼 강력한 능력입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이 인간을 회복시키려는 뜻을 포기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을 끝내 닫지 않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회개할 기회가 계속 주어진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반드시 회개한다는 사실이 논리적으로 증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 역시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 모든 사람의 자발적인 회개를 이루실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방법을 모른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면, 그 자유의지를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뜻을 이루실 방법을 하나님이 알고 계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1조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보다 더 긴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간의 길이가 아닙니다.
인간이 스스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강제로 고집을 꺾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고집을 꺾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인간에게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죄를 묻는 것은 공의롭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 자유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을 자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됩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원망하고 욕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해칠 권리까지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유와 다른 사람을 억울하게 만들 자유는 다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바라시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말이 아니라, 창조섭리에 맞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성경에는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에 대한 심판을 언급하는 구절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성경 저자들이 이해한 하나님과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을 언제나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금광과 같습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저자가 살았던 시대의 인식과 문화, 종교적 관념을 구별하며 읽어야 합니다.
예수가 보여주신 삶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는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라는 말만 반복하며 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을 사랑했고, 억울한 사람들의 편에 섰으며, 위선과 탐욕을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회개가 단순히 종교적 신념을 바꾸라는 요구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삶을 바꾸라는 요구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 자유의지로 인간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욕심을 따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자유를 강제로 빼앗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돌아오는 길은 무엇일까요?
바로 그 자유의지입니다.
자신이 잘못한 일을 깨닫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고, 스스로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회개를 요구하시는 이유는 자신을 믿으라고 강요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자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자유의지를 존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창조섭리대로 살아간다면, 그 삶은 하나님의 뜻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아무리 열심히 믿더라도 탐욕과 이기심으로 다른 사람을 해치며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입으로 무엇을 믿는다고 고백하느냐가 아닙니다.
어떤 삶을 선택하느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 자유로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유로 다시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회개란 바로 그 돌아섬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로봇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마저 인간 스스로 선택하도록 하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하나님이 회개를 요구하시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