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 평전』을 읽으며
맛있는 술을 소장하고 싶은 마음처럼, 뭔가 열망에 불타있던 젊은 시절의 한때에는 읽는 것을 담보하지 못하더라도 저명한 혹은 매력적인 철학자들의 도서를 수집하듯 사 모았더랬다.
새 바카라의 종이 냄새를 음미하고, 추천사를 포함한 바카라의 앞뒤 표지를 살펴보고, 이어 목차와 서문을 꼼꼼히 읽는다. 그러고 나서는 바카라을 정독, 완독 하기보다는 여러 시일에 걸쳐 호기심이 이는 부분이나 중요하게 여겨지는 장을 그때그때 부분적으로 읽는다. 아마도 이런 유약한 독서 습관이 내가 무언가 어느 한 분야에 정통하지 못한 이유의 하나일 것이다.
936쪽짜리 평전을 읽는다는 것은 한 사람의 생애를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함께 걷는 일일 것이다. 과거 이 바카라을 건드렸을 때에도 애초에 완독을 목표로 바카라장을 연 것은 아니었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유대계 독일의 지식인이자 철학자·문학비평가·에세이스트·번역가였고, 그의 사유에는 독일 낭만주의, 역사적 유물론, 유대교 신비주의 등이 독특하게 결합되어 있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가까웠고, 아도르노를 비롯한 프랑크푸르트학파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이 바카라에 끌렸던 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위대한 사상가 벤야민’의 사상을 다룬 학술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나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저자가 아니라, 바로 돈이 없고, 사랑 때문에 흔들리고, 친구에게 돈을 부탁하고, 육체적인 욕망을 느끼고, 미래를 두려워하면서도 바람 부는 섬에서 새로운 세계를 상상했던 한 인간 발터 벤야민의 모습을 알려주는 평전이기 때문이었다.
그 긴 길의 여정에서 걸음이 멈춰지는 장면이 있었다. 이비사 섬의 언덕이 바로 그러했다. 1932년, 마흔의 벤야민은 지중해의 그 작은 섬에 있었다. 베를린은 무너지고 있었고, 히틀러는 문 앞까지 와 있었다. 수중에 가진 돈은 없었다. 평전은 그 시절을 ‘최악의 빈곤’의 시기라 적는다. 그런데 바로 그 문장 뒤에, 같은 시절이 ‘가장 강렬한 성애의 시간’이기도 했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그 겹침을 역설로 부른다.
바카라을 읽다가 한 문장에서 오래 멈추었다.
“이비사에서의 마지막 석 달은 최악의 빈곤을 경험함과 동시에 아샤 라치스와 헤어진 이래 가장 강렬한 성애를 경험한 시간이었다는 의미에서 역설적이었다.”
발터 벤야민이 이비사에서 보낸 마지막 석 달에 관한 이야기였다. 가장 가난했던 날들에, 그는 가장 뜨겁게 사랑했다.
가장 가난했던 시간과 가장 뜨거웠던 시간이 한 인간에게 동시에 찾아올 수 있다니. 이상한 문장이었다. 바로 그래서 역설적이라 했겠지만, 최악의 빈곤을 경험하던 시간에 가장 뜨겁게 사랑했다는 것. 살아보니 그것은 역설이라기보다 어쩌면 오히려 순리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가진 것이 많을 때 우리는 가진 것을 지키느라 머리 굴리며 바빠지고,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때에야 비로소 사람은 사랑하는 대상 그 자체에 온몸을 기울인다.
통속적인 우리의 드라마들만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부셔 버릴 거야"
시청률 50%를 넘겼던 1999년 방영 SBS 드라마 《청춘의 덫》에서 배우 심은하가 남긴 최고의 명대사를 기억한다. 배신한 연인을 향한 처절한 복수의 감정을 담아 뱉은 말로 그 당시 폭발적인 화제를 모았더랬다.
가난했지만 서로 사랑했던 부부가 있다. 하지만 부와 성공을 좇아 심은하를 버린 이종원은 성공을 위해 정략결혼을 하지만, 새로운 부인 유호정에겐 사랑을 주지 못한다. 그녀는 그저 위만 바라보고 치달리는 그를 위한 성공의 사다리였을 뿐이다.
벤야민이 이비사에서 잃은 것은 안락함이었고, 얻은 것은 절박함이었다. 절박함은 사랑을 잉태하는 가장 오래된 연료가 될 수 있는가 보다.
돌이켜보니 나 역시 그런 계절을 지나왔다. 편안한 대기업의 온라인 게임생활에 젖어 있다 별다른 근심걱정 없이 독립을 한 후에 찾아온 처음 맛보는 위기, 절박함. 회사가 휘청이고 앞이 보이지 않던 바로 그 몇 해 전, 그때가 바로 밤마다 잠에서 깨어 글을 쓰고 노래를 만들던 시절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뒤로는 그때가 내 안에 무언가 가장 뜨겁게 살아 꿈틀거리던 때였다. 절박함이 사람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그 절박함이 사람 안의 무언가에 불을 붙인다는 것을 바로 그때 느꼈다.
빈곤과 사랑
한쪽에는 결핍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충만이 있다. 한쪽에는 아무것도 갖지 못한 사람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누군가를 너무나 원하는 사람이 있다. 한동안 그 두 단어를 생각하다 문득 떠올랐다. 어쩌면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발터 벤야민
우리는 대개 그를 철학자이자 평론가, 작가이자 미학자로 기억한다. 마르크스주의와 유대교 신비주의 사이를 오가며 역사를 사유했던 사람. 보들레르의 파리를 걸었고, 당대 도시의 군중과 상품과 이미지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징후를 발견했던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지나가버린 것들을 바라보았던 사람. 역사를 승자의 기록으로 읽기보다 그 밑에 깔려 사라진 것들, 패배한 것들, 이름 없이 잊힌 것들 속에서 아직 실현되지 못한 가능성을 찾아내려 했던 사람 말이다.
그래서 벤야민을 생각할 때면 언제나 조금 쓸쓸해진다.
그에게 과거는 이미 끝난 시간이 아니었다. 과거에는 우리가 미처 구하지 못한 무엇인가가 남아 있었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은 때때로 뒤를 돌아보아 그것을 발견해야 했다.
그런 사람이 1932년과 1933년, 스페인의 작은 섬 이비사에 있었다. 지금 우리에게 이비사라는 이름은 세계적인 휴양지와 클럽, 음악과 파티, 지중해의 화려한 밤으로 떠올려진다. 그러나 벤야민이 도착했던 이비사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가난하고 오래되고 아직 근대화되지 않았던 섬.
그는 바로 그래서 그 섬을 좋아했다고 한다.
고대적인 것. 아직 문명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기계에 완전히 편입되지 않은 곳. 사람의 손으로 집을 짓고, 필요한 만큼 가지고 살아가며,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아직 서로 크게 어긋나지 않았던 세계.
유럽에서는 이미 다른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독일의 경제는 무너지고 있었고 나치는 권력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유대인이었던 벤야민에게 그것은 정치 뉴스가 아니라 자신의 생존에 관한 문제였다. 자신이 알던 유럽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폐허가 되어가는 유럽을 등지고 도착한 작은 섬에서 오히려 미래를 생각했다. 미래를 보기 위해 가장 오래된 곳으로 간 것이다. 도피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만, 참으로 벤야민다운 역설이다.
인간은 참 이상한 존재다.
삶이 무너진다고 사랑까지 멈추지는 않는다.
통장에 돈이 없다고 욕망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 내일이 불확실하다고 오늘의 심장이 천천히 뛰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삶이 위태로울수록 우리는 누군가의 체온을 더욱 절실하게 원하지 않는가. 세상이 나를 버리는 것 같을 때 누군가만은, 누구 하나라도 날 바라봐주기를 바라는 마음. 실존의 고독을 채워줄 그 무언가를 찾는 절실함.
가난은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를 되묻고, 사랑은 우리가 무엇 없이는 살 수 없는지를 묻는다. 서로 다른 질문 같지만 결국 같은 곳에 닿는 그것.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인생의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반드시 가장 풍요로웠던 시절은 아니라는 것. 돈이 없었지만 이상하게 웃을 일이 많았던 시절. 앞날은 막막했지만 소주 한잔에 누군가와 밤새 이야기를 나눴으며, 별것 없는 허름한 뒷골목을 걸으면서도 세상이 이상하게 희망차 보였던 때가 있었다.
삶을 무엇을 가졌느냐만으로 설명하기는 참 어렵다. 가난하면서 충만할 수 있고, 풍요로우면서 빈곤할 수도 있음을 알기에. 벤야민이 말한 ‘경험의 빈곤’이라는 말도 어쩌면 그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더 빠르게 이동하고, 수없이 많은 이미지를 보고, 세상의 거의 모든 이야기를 손바닥 휴대폰 위에서 간편히 만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신의 언어로 말할 이야기는 점점 줄어드는 것 같은 이 찝찝한 기분.
그건 아마도 많이 보았지만 자세히 바라보지 않았고, 많이 만났지만 깊이 머물지 않았으며, 수없이 저장했지만 제대로 기억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난하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평전의 저자들은 이비사 숲 속의 바람 부는 언덕, 소파에 기대앉아 새로운 슬롯에 대한 우화를 써 내려가는 벤야민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다고 썼다.
무너지는 유럽을 등지고, 폐허 위에 세워질 슬롯를 상상하는 가난한 남자. 그가 그 언덕에서 쓴 글이 《경험과 빈곤》이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인류가 맞이한 전통적 경험의 붕괴와 새로운 야만성, 그리고 그 속에서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을 다룬 에세이. 세계대전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오히려 말수가 줄었다는 이야기, 경험이 폭발한 시대에 경험은 가난해졌다는 것을 꿰뚫어 본 글이다.
그가 거의 백 년 전에 쓴 문장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현실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삶의 수단이 무한히 연장되어 그 자체가 삶의 목표가 되어버린 삶. 밥벌이를 위한 일이 어느새 삶의 전부가 되고, 그 일을 편하게 해 줄 도구들이 구원처럼 보이고, 도구들이 편리해질수록 정작 나 자신은 점점 생각하지 않게 되는 빈곤 속에 빠져 허우적 거린다.
벤야민이라는 사람은 어느 한 이름으로 정리되기를 끝내 거부했다. 스스로를 ‘좌파 아웃사이더’라 부른 그는 유대교 신비주의의 숄렘과 마르크스주의의 브레히트를 양손에 쥐고 놓지 않았고, 아도르노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곁에 있으면서도 그들 중 어느 한쪽에 속하지는 않았다.
그는 철학자이자 비평가이자 번역가이자 실패한 교수 지원자였고, 라디오 방송을 만들었으며 아이들을 위한 글을 썼다. 한편으론 망명자의 곤궁한 삶을 살 때조차 몇 푼 안 되는 원고료로 노름을 했고, 해시시(대마초의 일종)에 대한 환각 경험도 했다.
벤야민은 사랑에 있어서도 하나의 이름 안에 머무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복잡한 삼각관계에 휘말려 짝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특히 선호했다고 하는데, 친구 숄렘은 “벤야민이 사유에서는 빛나는 윤리적 아우라를 보여주면서 일상생활의 것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는 비양심적, 비도덕적 요소를 보여준다”고 평가한 바 있다고 한다.
그레텔과 아도르노와 벤야민, 셋 다 서로의 관계를 절대시 하는 척했다는 평전의 담담한 문장은 그 시대 지식인들의 사랑이 얼마나 복잡하고 인간적(?)인 범부의 모습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을 결함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자기 안의 여러 사람을 하나로 정리하지 않고 살았고, 그 정리되지 않음이 그의 사유를 그토록 넓게 만들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벤야민은 그로부터 8년 뒤 피레네 산맥의 국경 마을에서 생을 스스로 마감했다. 이비사의 언덕에서 상상하던 새로운 슬롯를 그는 살아서 보지 못했다.
하지만 가장 가난했고 가장 뜨거웠던 계절, 무너지는 세계를 등지고 소파에 기대어 다음 세계를 쓰던 남자. 이비사의 언덕에 있던 그를 난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이비사 언덕의 바람은 아직도 불고 있을 것이다. 내게도 언젠가 이비사와 같은 그런 언덕이 있었고, 어쩌면 앞으로도 한두 번은 더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 과연 나는 무엇을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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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워드 아일런드·마이클 제닝스, 『발터 벤야민 평전: 위기의 삶, 위기의 비평』, 김정아 옮김, 글항아리, 2018, 8장 「망명: 파리, 이비사, 1933~1934」 중에서